평범한 남자 EP 95 (개정판)
"What would you like to drink? Sir?"(뭐 마시겠어요?)
"Beer~ Please"(맥주 부탁해요)
"Here you are"(여기요)
"谢谢" (고맙습니다.)
“不客气” (별말씀을요)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장주임을 다시 만났다. 아무렇지 않은 듯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서 주고받은 짧은 대화를 옆에 앉아 듣고 있던 다른 승객이 의아한 눈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녀는 맥주 캔을 따서 잔에 붓고는 티슈로 잔을 감싸 나에게 전해주며 상체를 숙여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이고는 빠르게 윙크를 날리며 사라진다.
“看纸巾! 少喝~”(티슈 좀 봐요~ 그리고 적당히 마셔요)
사실 벌써 두 캔째다. 난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그녀가 기내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구경하며 내 옆을 지날 때마다 맥주를 주문했다. 그녀를 괴롭히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어젯밤 클럽에서의 그녀 모습과 너무도 다른 지금의 모습에서 뭔지 모를 신비감과 호기심이 그녀를 계속 부르게 된다.
[昨晚和你玩得很开心~谢你哟~ 这是我的韩国的手机号码。010-1234-5678 Keep in touch] (어젯밤에 즐거웠어요~ 고마워요~ 한국 핸드폰 번호예요 010-1234-5678 연락해요)
그녀가 맥주잔에 싸준 티슈에는 그녀가 적은 메모와 한국 핸드폰 번호가 남겨져 있다. 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고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 그녀는 나에게 윙크를 보낸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너무도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Ladies and gentlemen, We will be arriving on Kimhae International Airport, in about 20 minutes" (승객 여러분, 우리는 20분 뒤 김해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오니…)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고 짐을 챙겨 비행기를 빠져나간다. 비행기 출구에서 배웅하는 장주임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두 손을 배꼽 앞으로 모은 채 단정한 승무원의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下次再光临!”(또 뵙겠습니다! 고객님)
“再见!”(안녕!)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비행기를 빠져나간다. 그렇게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나의 해외 출장이 마무리되었다.
[오빠~ 언제 마쳐요?]
[미안… 난 많이 늦을 거 같은데…]
[또? 같이 퇴근할까 했더니… 오빤 맨날 야근해요?]
싱가포르에서 만난 미애씨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다시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다. 미애씨와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편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 그녀의 회사는 같은 공단 안에 위치해 있었고 나의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끔씩 그녀가 퇴근시간 무렵 문자를 보내왔지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일들을 제쳐두고 나갈 수가 없다.
몇 번의 거절로 그녀의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문자 메시지에서 그녀의 표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며 사는 것이 직장인의 삶이 아니던가. 여행 중에 그녀와의 감성적인 추억은 지금 현실 속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밀려난다.
회사의 경영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은행에서 빌린 채무의 이자 상환도 힘든 수준까지 이르렀다. 무분별한 투자를 통해 만들어낸 자회사들도 하나 둘씩 엎어지기 시작했고 손발 마디 끝이 조금씩 썩어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든 썩은 손발을 살려보려 하지만 이러다가 몸까지 썩어 들어갈 판이다.
“희택! 경영정상화 방안 기획안 자료 아직 정리 안됐어?”
“예, 거의 마무리 되어 갑니다. 오늘 안으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빨리 좀 하자! 또 사장님 불호령 떨어지기 전에!”
“네… 알겠습니다”
회사의 경영악화는 의미 없는 과도한 페이퍼 워크(문서 업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경영진에서는 기획실에 경영정상화 방안 및 비용절감 등의 기획 안을 푸시했다. 썩은 손발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팀장 대행인 도과장은 자회사 정리 기획안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유 인 즉, 우후죽순으로 만들어낸 자회사는 회사 중역들이 대표이사 혹은 최대주주로 자리 잡고 있었기에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어떤 자회사를 잘라내느냐는 어느 임원의 세력을 죽이고 재산을 몰수하느냐와 같은 의미인 것이다. 도과장은 그런 위험한 기획안을 만들어 임원들의 노여움을 사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원래 위험하고 더러운 일은 자기 손으로 하지 않는 법이다. 그저 원가절감과 관련한 기획 안에만 혈안 되어 있었다.
“야~ 해도해도 정말 너무한다. 이제는 월급도 주식으로 주네”
“정말 이렇게도 되는 거예요?”
“이제 우리도 회사와 함께 사라지게 생겼네요. 쩝”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패러디한 상한대리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원가절감은 결국 직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잔업수당 폐지, 각종 복리후생 등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경영진에서는 더 강력한 원가 절감 안을 요구했고 결국 급여의 일부를 자사주로 지급하는 방안까지 나왔고 직원들의 동의 사인을 받기에 이르렀다. 직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회사를 다니고 싶으면 조용히 서명해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회사의 경영상황을 뻔히 다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 휴지조각이 될지 모를 주식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너무 위험해 보였다. 나는 자사주 매입에 관한 직원 서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물론 일부 회사 내부 상황을 잘 모르는 직원들은 회사 주가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 매수의 좋은 기회라고 얘기들 했지만, 난 이미 이 회사에 오래 몸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도과장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인을 하지 않았다.
현대인은 직장에 얽매여 의욕 없이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한다. 조건 반사적으로 시키는 일을 쳐내는 로봇과 같다. 절대적인 업무 과부하는 시간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기계도 24시간 풀가동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인간이 로봇이 되어주길 바라는 회사는 인간의 로봇화를 테스트하는 곳처럼 느껴진다.
로봇에 가까워지는 인간이 버티고 살아남는다. 육체와 영혼은 마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처럼 한번 사면 마음대로 쓸 수 있을 것처럼 부린다. 나중에 그 육체가 망가지고 영혼이 병들 때쯤 회사에서 쫓겨난다. 다시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사면된다. 인간은 죽고 법인(法人)은 영원하다.
결국 일에 얽매여 소중한 인연과 관계는 멀어져 가는 듯 보였다. 초등학교 시절 도덕시간에 배운 인간이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는 말은 다 거짓이었다. 오히려 일을 통해 자아를 잃어가는 것 같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돈이라는 허구를 쫓아가다 결국 인간이라는 실체를 잊어버린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돈이 결국 인간을 옥죄어 온다. 허구가 실체를 지배한다.
무엇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