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여자를 떼어내는 방법

평범한 남자 EP 96 (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축하합니다! 서류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메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DG Automotive -]


업무 중에 온 문자를 보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얼마 전 이력서를 넣은 회사에서 서류전형 합격 문자가 들어왔다.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핸드폰을 책상 밑으로 내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확인하는 모습이 수상쩍었는지 뒤에 앉은 상한씨가 한 마디 던진다.


"뭐 좋은 거 보길래 그리 숨겨요?"

"아.. 아무것도 아녜요"

"로또라도 걸렸어요? 같이 좀 봅시다"


상한씨는 얼마 전 둘째가 세상에 나왔다. 그는 와이프와 맞벌이를 하다가 둘째를 출산했다. 그의 와이프는 출산 휴가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는 계획을 접었다. 하나는 어떻게 해보겠지만 둘을 힘들었나 보다. 그는 회사가 힘들어지는 상황에도 육아 때문에 일과가 끝나면 도과장의 눈치를 살피다 도과장만 사라지면 재빨리 퇴근한다.


그의 상황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지호씨도 퇴사하고 현지씨는 자기 일도 제대로 못 쳐내는 상황에서 일은 계속 늘어나는데 쳐낼 사람은 없다. 인원 충원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에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상한씨도 얼마 전 대리 진급 후 나와의 관계가 서먹해졌다. 자리(직급)가 사람을 바꾼다. 그는 밀린 업무를 자신의 가정사 때문에 나에게 미루고 퇴근한다. 직급에 눌려 뭐라고 대꾸하기 힘들다.


회사는 기울어 상황에서 직원들은 자신의 이익만 챙기기 바쁘다. 온갖 핑계와 수단을 동원해서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은 피해 간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희생으로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면 서슴없이 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의 말단 남자 사원은 야근과 잔업을 피할 수 있는 그 어떠한 면책 사유가 없다.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로 기혼자는 가정사라는 명분으로 빠져나간다. 그럼 그들의 자리를 대체해 줄 인력이나 조치가 있어야 하지만 회사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냥 남겨진 사람이 다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다수의 무책임으로 인한 개인의 희생을 나 몰라라 하는 인간들의 모습에 조금씩 질려가고 있었다.


'두고 보자! 당당히 이직해서 다 떠 넘겨주고 가주마'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스스로를 추스르기를 수십 번, 매일 홀로 남아 분노와 악에 차서 업무를 쳐냈다. 분노와 악에서 타오르는 에너지가 없었다면 그 일들을 쳐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내가 꿈꾸던 그 상황을 만들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다.


대구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회사였다. 당시(2010년) 국내 조선업계는 불황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반면 자동차 업계는 해마다 최고 판매고을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덕분에 자동차 부품사들도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늘어나는 생산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사업 확장과 인력충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회사도 사세 확장을 위해 대규모 신입 및 경력 공채를 진행하고 있었다.


유명한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조선업계에 몸담고 있는 나에겐 생소한 이름의 회사였지만 구직사이트와 인터넷에 올라온 관련 기업 정보들을 미루어 봤을 때 자동차 업계에서는 꽤나 인지도 있는 중견기업인 것 같아 보였다. 더욱이 기숙사 제공 및 급여나 복리 후생이 꽤 괜찮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경북권임에도 불구하고 지원했다.


사실 당시 부산에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서비스업과 금융업을 제외하고는 제조업은 이미 대부분 지방이나 경기도로 이전해 버렸다. 남자들이 일할 만한 직장이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항구를 끼고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항만, 해상물류, 무역 관련 업체들이 있었지만 조선업의 불황은 세계 물동량의 감소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다. 배가 필요 없다는 말이다. 그 말은 세계적인 물동량 줄고 선주들이 지갑을 닫아버렸다는 것이다. 특히 부산을 통한 물동량은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당시 상하이항이 싱가포르항을 제치고 세계 물동량(1위)을 모두 쓸어 담고 있었고 이에 부산항을 거쳐갈 물동량 또한 상하이로 옮겨가는 바람에 상대적인 피해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 부산의 무역, 물류 관련 업종 또한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 동기들 중에 몇몇이 중앙동의 포워딩업체(Forwarding: 화물 수출입업체)에서 취직을 했지만 정말 생계유지만 할 수 있을 정도의 박봉의 월급을 받으며 다니고 있었다.


"대구? 정말 가려고?"

"뭐 부산은 대기업 빼고는 이 정도 급여 수준을 주는데 찾기 힘들어 그리고 기숙사도 제공하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뭐 그렇긴 하지"

"뭐 서울이나 경기도도 아니고 대군데, 주말에 집에 오고 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 뭐 대구 정도면 가능하지"


친구 귀덕이와 시내의 번화가 술집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나의 이직에 대해 녀석의 조언을 듣고 있다. 친구 중에 그나마 사무 관리직으로 회사 생활을 하는 녀석이라 얘기가 잘 통하는 편이다. 녀석은 이름 있는 금융회사에 IT 관련 일을 하고 있어 내가 있는 제조업 분야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사무직 직장인이라는 공통점이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둘만의 공감대를 만들어주고 있다.


"넌 요즘 어때?"

"나도 요즘 밤낮 없다. 금융도 이제 다 온라인으로 변하잖아 시스템 개발에 서버 구축에 몇 달째 야근이다. 죽을 맛이다."

"그래도 넌 야근수당에 주말 수당에 돈이라도 많이 벌잖아"

"우린 그런 것도 없다. 이제 월급도 주식으로 줄려는데... 씨발"

"헐~ 진짜? 진짜 회사 맛탱이 갔네"

"야~ 넌 참 은행 들어간 게 행운이다. 적어도 은행은 망할 일은 없으니"

"그런가?"


귀덕은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 중에선 가장 모범생이었다. 신실한 기독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엄한 장로 아버지와 권사 어머니의 품에서 성경 속 가르침대로 자라났다. 물론 그 가르침이 그대로 먹혀 들리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반듯해 보였다. 녀석은 친구들의 유혹과 부모의 훈계 그리고 성경 속 가르침 사이에서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만약 그런 부모와 교회의 품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지금의 녀석의 모습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유년시절 자라온 환경은 중요하다.


꼬치친구들 중에선 그나마 공부머리가 제일 나은 녀석이었다. 녀석과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나왔기에 친구들 중에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한다. 물론 녀석은 이공계열이고 나는 인문계열이라 같은 반에서 수학(修學) 한 적은 없지만 나의 아킬레스건인 수학(數學) 때문에 방과 후 야간 자율학습 중 쉬는 시간마다 녀석의 반에 자주 찾아가 일대일 과외를 받곤 했다.


세상이 정해놓은 도덕 교과서 같은 인생의 단계를 한 계단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는 것 같았다. 학창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과 동시에 가성비를 철저히 따져 서울로 가기보다 지방의 국립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통학하는 것을 선택했다. 눈이 없다시피 한 나쁜 시력 때문에 군대도 면제하고 방위산업체 회사에서 군 복무를 대체하며 돈을 벌었고 3년간 회사에서 벌어놓은 돈으로 부모님께 중형 세단도 사드리고 3년 뒤 발전된 의학 기술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눈을 얻고 돋보기 같은 안경을 벗어던졌다. 녀석은 정말 모태신앙의 은총을 받아서인지 행운이 깃든 꽃 길만을 걸어가는 듯 보였다. 내가 군에서 제대하고 나왔을 땐 군대에서 받은 2년 2개월간의 월급 중에 쓰고 남은 60만 원 남짓한 현금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것도 다른 전역병들에 비하면 많이 가지고 나온 돈이었다.


"면접은 언젠데?"

"다음 주에… 다행히 경력사원은 토요일에 면접을 볼 수 있더라"

"우리 같은 월급쟁이들이 연차 쓰는 게 쉽지 않지, 또 이런 시기엔 의심받기 십상이잖아"

"글치…"

"참~ 너 소개팅할래?"

"소개팅?"

"어~ 요즘 소개팅이 계속 들어오는데... 난 바빠서 안 되겠고 너 생각 있음 물어봐주게"


배가 불러서 먹다 남은 음식을 건네 받는 기분이다. 자기 은행의 타 지점에 일하는 동기 여직원이라며 간단한 프로필을 소개한다. 기업대출 심사팀에서 일하는 능력있고 괜찮은 여자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얘가 너 보다 연봉은 더 많을걸?!”


녀석은 남자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말을 서슴없이 날린다. 다른 녀석이었다면 욕이 날라갔겠지만 오랜 세월 함께 해온 녀석이 입이 매운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이라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솔직히 나보다 돈을 더 잘 번다는 말에 속으로는 더 호감이 생기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난 남은 음식이든 새 음식이든 가리지 않는다. 맛만 있다면 무슨 상관인가. 쓸데없는 자존심은 친구 사이에선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 그렇게 좋은 여자면 니가 하지? 왜 날 주냐"

"친구 아이가~"

"지랄! 수상한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약속 시간이 한 참을 지나도록 나타나질 않는다. [금방 도착해요]라는 문자가 온 지 30분이 지났다.


"아~ 좀 늦었죠?"

"아~ 네 괜찮습니다."

"제가 시내에서 커피는 잘 안 마셔서요 차가 있으셨음 제가 아는 커피숍으로 갈려했는데…"


미안하다는 말은 않고 자신이 늦었다는 것을 나한테 재확인시키고 있다. 그리고 생뚱맞은 차 얘기를 꺼낸다. 과거 자동차로 인한 아픈 소개팅 경험으로 친구에게 차 있다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녀는 해운대 달맞이 고개의 자주가는 커피숍 있다며 거기서 항상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그리고 보통 소개팅 때 대부분의 남자들이 차를 가지고 와서 자신을 픽업해 그곳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차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시내까지 발품을 팔고 나온 것이 언짢은 모양이다. 당시 메스컴에서 '된장녀' 라는 단어가 심심잖게 들려왔지만 실제로 내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자식을 그냥!'


그녀의 어이없는 말과 행동에 소개팅 만남이 시작도 되기 전에 울화가 치밀어 온다. 공주님을 앞에 앉혀 두고 있는 기분이다. 프린세스 피오나인가? 그럼 난 슈렉? 그녀가 정말 녹색 괴물처럼 보인다. 하필 그녀가 입은 보기 드문 녹색계통의 원피스가 나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어쨌든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라 그녀랑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귀덕 오빠한테 얘기는 들었어요, 제조업에서 일하신다고요?"

"예"

"무슨 일 하세요"

"그냥 뭐 이것저것 해요"

"예?"


그녀도 나의 이런 냉담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잠시 침묵이 흐른다. 서로 찻잔만 바라본다.


그러다 그녀가 답답했는지 다시 물어온다.


"담배 피우세요?"

"예, 왜요?"

"아니 그냥"

"한 대 드려요?"

"예?!"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녀는 전화기를 귀에 대고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오빠! 나 시내 XX 커피숍에 있는데 데리러 와줄래?"


그녀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오빠에게 픽업 요청을 하고는 고개를 숙여 계속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걷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여자인가 보다. 그렇게 차를 좋아하면 자신이 끌고 다니면 될 텐데... 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귀덕이의 체면을 봐서 그녀가 떠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 잠시 뒤 키가 멀대 같이 큰 남자가 커피숍으로 들어온다. 그는 우리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나를 혐오스럼 눈빛을 내려다보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난다. 난 천천히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손님 총 만삼천원입니다.”

“예?”


‘뭔 커피값이 뭐 이래 비싸?’


그녀가 마신 이름도 알 수 없는 커피는 내가 마신 아메리카노의 두배가 넘는다. 내가 왜 시간과 돈을 낭비해가면서 기분이 나빠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그녀도 기분이 더럽겠지만 적어도 경제적 손실은 없다. 불공평하다.


싱글 남자가 소개해주는 여자는 자신이 가지기 싫거나 아니면 싫은데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를 떼어내는 방법일 수 있다. 녀석은 나를 적절하게 이용한 듯 보인다. 녀석도 과거 나를 도와줬으니 쌤쌤이다. 친구끼리 돕고 살아야 한다.


다음에 또 내가 신세 질 일이 생기겠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