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면접

평범한 남자 EP 99 (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띠링띠링"


[1차 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이메일을 통해 최종 면접 일정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띠링띠링"


[오빠 어디야?]


하산하는 길에 거의 동시에 두 개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둘 다 반갑다. 모두 나를 찾는 메시지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준다는 것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나는 회사로부터 하나는 이성으로부터 일과 사랑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지금 나에게 그 두 가지가 찾아 들고 있다.


미애는 주말엔 보통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저녁 동호회 회원들이 함께한 식사자리에 나를 초대하겠다고 한다. 드디어 그녀는 나를 동호회에 가입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그럼 이건 신입회원 환영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녀와의 관계 증진을 위해서라도 가지 않을 수 없다. 여자를 얻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안녕하세요 전희택입니다"

"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셨네요 하하하"

“네?!”


호프집에 그녀를 포함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섞여 앉아 있다. 모두들 운동을 마치고 온 듯 트레이닝 복장을 입고 있다. 다들 나를 잔뜩 기다린 듯한 표정이다.


"자자 어서 여기 앉으시고 한 잔 받으세요"

"미애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예? 무슨 얘기를…?"

“미애랑 싱가포르에서 만나셨다고요?”

“우아! 너무 낭만적이다. 무슨 소설 속 얘기 같지 않아? Love in Singapore!”

“무슨 드라마 제목 같은데… 큭큭큭”

“나도 싱가포르 가서 배드민턴 치고 올까봐~ 큭큭, 누가 알아? 나도 거기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날지”

“넌 안돼~ 꿈 깨시지!”


그들은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신입회원 대상자를 앞에 앉혀놓고 그들만의 소설을 짓고는 드라마까지 제작할 기세다. 미애가 이미 우리 둘의 만남을 다 얘기한 듯 보인다. 그들은 그녀와 내가 이미 싱가포르에서 만난 것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가 나에 대해 어디까지 얘기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표정을 봐서는 그녀와 내가 일반적인 관계가 아닌 이성관계로 비치고 있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DB 중공업 다니신다면서요?”

“그 회사 부산에선 꽤 유명하던데, 코스닥 상장사일 걸 아마”

“코스닥이 뭐야?”

“으이그, 주식시장이잖아, 넌 배드민턴 치는 열정의 십 분의 일만이라도 세상에 관심을 좀 가져라!”

“그래? 그럼 돈도 잘 버시겠다”

“회사에서 기획실에서 일하신다면서요?”

“우아! 이거 진짜 드라마 맞는데 이거 큭큭큭”

“참! 미애가 남자를 잘 고른다니까 캬캬캬”


이제 나의 신상(身上)을 털기 시작한다. 남친 자격 청문회 아니 면접장에 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를 둘러싸고 앉은 그들은 번갈아 가며 나에게 질문을 날린다. 그녀는 모르는 척 옆에 앉아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모습니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고 있다.


"그럼 이제 저희 동호회에 가입하시는 거예요?"

"예…?! 아직 마음에 준비가…"

"몸이 오면 마음도 따라가는 법이죠 하하하"

"전 가끔 몸과 마음이 따로 놀 때가 많아서요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희택씨 유머 코드 참 맘에 든다"


유머가 아니다. 사실 나는 그녀에 대한 관심은 크지만 딱히 배드민턴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나의 몸과 마음은 간절히 그녀를 원하지만 배드민턴은 간절히 원하지 않는다. 나는 단체 운동이나 상대방과 승부를 겨루는 운동을 선호하지 않는다. 특히 구기 종목에는 젬병이다. 군대 있을 때도 축구와 족구를 못해 받은 스트레스와 얼차려가 아직도 트라우마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타인을 이김으로서 얻는 쾌감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운동을 선호한다. 등산이나 자전거같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끝까지 해내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그 과정 속에서 땀 흘리며 이런저런 생각 혹은 사색에 잠기는 것을 좋아한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시간과 노력 없이 여자를 얻을 수 없다는 사랑 공식을 알고 있다. 그녀와의 관계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그녀와 같이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평일은 밤낮없이 회사에 얽매여 있고 오로지 주말만이 그녀와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녀는 주말에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 나와 그녀가 시간을 공유하는 방법은 누군가가 다른 이의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녀는 내가 그녀의 시공간 속으로 들어오길 바라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시공간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걸 짐작하고 있다. 배드민턴은 그녀에게 삶에 일부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를 그곳에서 빼내 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그럼 셋 중 하나이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거나(그녀의 취미에 적응하거나), 호랑이를 잡아서 밖으로 나오거나(그녀를 내 여자로 만들어 빼오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도망 나오거나(헤어짐) 이 셋 중 하나다.


"다음 주부터 나가면 되나요?"

"역시~ 하하하 굳! 사랑의 힘은 강해!"

"그럼 오늘은 신입 환영회네요"

"자자~~ 우리 희택 씨의 가입을 축하하며! 건배!"


잡아 먹히든 잡아서 나오든 일단 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미애는 옆에 앉아 상황을 살피다 자신의 각본대로 상황이 전개되자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오빠~ 이제 맘 단단히 먹어야 할걸! 하하하"

"참고로 저희 미애가 우리 동호회 간판선수이자 코치예요. 트레이닝 하나는 끝내주죠, 금방 배우실 거예요"

"킥킥킥"


다른 회원들은 뭔가 아는 듯한 표정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손으로 막아본다. 다들 신입회원 가입을 기뻐하는 눈치다. 희생 없는 사랑은 오래갈 수 없는 법이다.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나만을 위하던 시공간을 그녀에게 내어 주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나에게 가져다 줄 행복감이 더 클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그녀의 남자이자 동시에 제자가 되기 위한 지인들의 공개 면접이 별 탈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드디어 최종 경영진 면접까지 왔다. 이직의 길이 쉽지 않다.


"90번부터 94번까지 입장해 주세요"


요즘 기업들은 검증된 인간만 쓴다. 가르쳐서 쓰는 시대는 저물어간다.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여 주주에게 이익을 남기는 것이 주식회사의 가장 큰 사명(使命)이다. 이 사명을 따르지 않는 기업은 사명(死命: 죽은 목숨)으로 향하게 되어 있는 것이 기업생태계이다.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직원에게 돌아갈 비용(인건비)을 줄이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논리처럼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주주나 직원 모두 회사를 이루는 구성원이지만 회사는 직원보다는 주주를 우선한다.


그래서일까? 회사는 경력직 사원을 선호한다. 그것도 모자라 서류를 통해 스펙을 확인하고 실무 면접과 외국어 면접으로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지 또 다시 검증한다. 이쯤 되면 다들 거기서 거기지만 그것도 다 뽑아줄 리 만무하다.


사람은 공급도 많고 종류도 많은 세상이다. 베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재미랄까? 이쯤되면 왠만해선 다 맛있지만 최종적으로 경영진의 입맛에 맞는 자들만이 선택 받게 된다. 문제는 그들의 개인적인 입맛까지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복불복이다.


면접장 입구 앞에 앉아있는 90번 면접자는 몸이 불편해 보인다.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힘겹게 면접장을 들어간다. 그 뒤에 나를 포함한 4명은 그의 걸음걸이 속도에 맞춰 엉금엉금 입장한다. 그의 목발 행진은 경영진들의 이목을 집중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5명의 경영진의 시선이 모두 그의 목발로 향하고 나머지 4명은 아무도 그들과 눈을 맞출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자리에 앉는다.


"90번 자네는 왜 다리를 다쳤나?"

"예~ 주말에 조기축구를 하다가 넘어져 다리에 금이 갔습니다."

“축구? 그래? 포지션이 뭔가?"

"라이트 윙백입니다"

"오 그래? 최전무 우리 팀에 윙백이 좀 약하지 않나?"

"네 회장님~ 윙백이 좀 취약하긴 합니다."

"그래? 잘됐구먼"


가운데 앉은 말상을 한 노년의 남자는 한 손에는 노란 무언가를 들고 빨아먹으며 옆에 앉은 임원과 말을 주고받는 포스가 이 회사의 최고 권력자가 분명해 보인다.


"다들 엿 드시게, 이거 진짜 울릉도 호박엿이야 참~ 맛나네, 자!"


그는 자신만 먹기 미안했는지 옆에 앉은 경영진들에게 엿을 나눠준다. 다들 엿을 하나씩 들고 빨면서 면접을 이어간다. 면접 응시자들은 어이가 없는 장면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고 앉아 있다. 모든 면접관들의 관심이 90번 면접자에게 쏠리고 있다. 이건 무슨 축구 선수 선발 면접인지 착각이 들 정도이다.


"94번 전희택 씨는 조선계열 회사의 기획실에서 근무 중이시네요"

"예"

"상장사인가요?

"예"

"매출은 어느 정도 되죠"

"4000억 정도 됩니다."

"작지는 않네요. 예 알겠습니다."

"면접을 마칠게요. 다들 퇴장해 주세요"


90번 축구선수에게 집중된 관심으로 다른 면접자들에게 할애된 시간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다른 면접자들은 극히 짧고 간단한 질문으로 면접이 마무리되었다. 나에게도 생각이 전혀 필요 없는 확인 형식의 답변만 잠시 오고 갔을 뿐이다.


면접을 마치고 나와 회사 안을 잠시 둘러본다. 일요일이라 회사 안은 조용하다. 회사 부지가 상당히 넓다. 본사 건물 뒤쪽으로 이름 모를 수목과 꽃들로 아름답게 조경(造景)이 가꾸어진 모습이다. 그 안에는 작은 산책로까지 만들어져 있다. 회사 안에 작은 공원이 들어온 모습이다. 직원들의 휴식공간까지 고려한 회사의 배려인가. 회사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간다.


작은 공원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나무들 사이로 푸른 잔디가 잘 가꾸어진 드넓은 축구장을 발견한다. 왜 경영진이 90번 면접자에게 큰 관심을 가졌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공장과 연구소 그리고 본사 건물이 그 축구장을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마치 학교 운동장 같은 분위기다.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이야? 회사야? 공원이야? 아니면 축구 경기장이야?'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이지만 좀 전 면접장에서 엿을 먹던 자는 회사의 창립주이자 최대주주 오너이고 대구경북 상공회의소 대표이자 실업축구 협회장이라고 한다. 그가 가진 수많은 지위는 그의 말과 행동에서 배어 나오는 듯 하다. 직책이 많아지고 지위가 올라가면 말과 행동의 질은 왜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나의 이직과 연애을 위한 두 가지 면접이 끝났다.

이제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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