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98 (개정판)
"으윽~ 아~ 으윽~ 아~"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일요일 아침 가족들이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는 새벽부터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배낭을 챙겨 집 앞에 산에 올랐다. 세상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조용한 새벽의 거리를 걸어 산을 올라가는 초입에 접어들었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다. 정신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몸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온 몸이 찌뿌둥하다. 오르기 전에 온몸의 근육을 깨워야 한다. 뭉쳐있던 근육들이 늘어지면서 찌릿한 통증이 온몸을 엄습한다. 얕은 신음이 연거푸 터져 나온다.
새벽 숲 속 고요함을 좋아한다. 옅은 안개가 숲 속 바닥에 깔렸다. 늦가을의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든다. 조금씩 속도를 올리며 올라가는 동안 뜨거워진 나의 몸에서 내뿜는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차가운 숲 속의 공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벌컥벌컥"
산 중턱까지 올라왔다. 뜨거워진 몸을 진화하기 위해 수분을 공급한다. 산은 나의 노력의 대가로 조금씩 세상 밑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멀리 보이는 낙동강의 물줄기와 그 강과 맞닿은 드넓은 바다가 밝아오는 하늘 아래에 펼쳐진다.
몸의 열기가 식으며 흘렸던 땀들이 체온까지 뺏어가려 할 때쯤 다시 몸을 움직인다. 이른 새벽 인기척 없는 산 속에서 한참 동안을 홀로 걸었다. 마침내 처음으로 멀리 어렴풋이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중년과 노년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남성이 바위에 걸터앉아 올라오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난 그의 옆을 스쳐 올라간다.
"아이고~ 젊은 친구가 새벽부터 참 부지런하네"
"예~ 수고하십니다~"
그는 스쳐 올라가는 나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본다. 나는 그의 칭찬 섞인 말에 힘을 얻어 더 속도를 올려 올라간다. 깔딱 고개에 접어들었다.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다는데서 유래한 듯 보인다. 그 가파른 경사를 쉬지 않고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간다. 결국 욕심이 화를 부른다. 깔딱 고개를 채 다 오르기도 전에 다리에서 경련이 온다.
"악~!"
땅바닥에 주저앉아 다리를 부여잡는다.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다리에서 온몸으로 엄습한다. 더 큰 통증이 밀려올까 온 얼굴을 찌푸린 채 꼼짝없이 그 자리에 동상처럼 멈춰있다. 내려다본 아래에는 좀 전의 그 중년의 남성이 거북이처럼 천천히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지 등산 스틱에 힘을 실어 올라오는 모습이다.
"젊은이, 괜찮아요?"
"아 네… 쥐가 난 거 같아요"
"아이고 어디 봅시다"
"아~~악"
그는 등산 스틱을 한쪽에 내려놓고 쥐가 난 나의 한쪽 다리의 들어 올리더니 무릎을 펴고 발목을 내 몸 쪽으로 밀어 근육을 당긴다. 순간 다시 한번 큰 고통이 밀려오더니 이내 사라진다.
"젊은 친구가 너무 욕심을 부렸구만"
"아... 네 고맙습니다"
"빨리 가는 것보다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해요"
"네..."
"주변에 변해가는 잎사귀도 보고 하늘도 좀 바라보고 왔던 길도 한 번 되돌아보고 그렇게 가도 늦지 않아요"
"..."
통증이 사라지자, 그는 옆에 잠시 앉아 가방 안을 주섬 거리더니 새빨간 사과를 하나 꺼내 내게 건네고는 자신도 한 입 베어 문다. 그를 따라 베어 문 사과는 좀 전의 통증을 잊게 하는 달콤한 과즙을 내어준다. 어린 시절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나면 간호사가 건네주던 사탕 같은 느낌이다.
"자~ 다시 가봅시다"
난 정상까지 그의 속도에 맞춰 동행을 했다. 같이 걸어올라 오면서 대화가 이어진다. 그는 얼마 전까지 암덩이와의 힘겨운 사투를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며 회사와 함께 성장하며 부장 자리까지 올랐다고 한다. 회사가 커가며 자신도 회사가 커져가는 만큼 커져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밤낮도 국내외도 가리지 않고 회사를 위해 일했다고 한다. 회사는 그에 합당한 승진과 더 많은 급여로 그의 노력에 보답했다고 한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한 희생은 물질로 채워지는 듯 보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떴을 때 병상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그러네요 먼바다까지 잘 보이네요"
그와 나는 정상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본다. 어느덧 태양은 자신의 몸을 다 드러내어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태양 빛을 받은 그의 얼굴엔 평안한 미소가 퍼지고 있다. 그 표정은 여태껏 내가 직장에서 보아온 그 어떤 동료나 상사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난 이제 이쪽으로 내려가야네, 젊은이! 조심히 내려가요. 서두르지 말고 더디 가도 방향만 잃지 않으면 된다네"
"예 조심히 내려가세요! 아저씨, 감사합니다."
그는 한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내 눈에서 멀어져 간다. 한참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여태껏 속도를 늦추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