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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Feb 15. 2020

글은 사대부의 밥이 옵니다

 망민필위 (忘民必危), 영화[천문]을 보고난 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


   우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법을 잘 알지 못한다. 법은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우리는 왜 법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헌법 제1조 조차도 영화를 통해서 대중에게 알려질 정도이다.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은 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법법법" 하면서 정작 법을 모른다. 자신은 몰라도 내 혈족, 지인 혹은 선후배는 법을 아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영화 <변호인>

  그래서일까 옛날 과거급제와 같이 사법고시 패스는 서민이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였다.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법고시 통해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스토리가 유행처럼 퍼졌다. 법조인이 정계로 나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비쳤다. 내 뇌리에 남는 그런 류의 드라마는 보통 딸 가진 부자 기업가들이 법조인 혹은 의사를 사위로 맞이하는 스토리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돈은 권력과 생명연장의 꿈까지 가져간다. 법관과 의사가 되는 것은 커다란 부를 단기간에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법관과 의사가 남자의 선망의 직업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법은 과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인가?


   법은 아는 자만 보호받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법이 스스로 우리를 찾아와 도와주지 않는다. 알면 이용할 수 있지만 모르면 있으나 마나 한 것이고 몰라서 피해를 입는 경우만 생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서민은 누구도 자신이 권력이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영화 "변호인"은 그런 우리에게 우리도 권력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법은 국민 아래 있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 법은 국민 위에 굴림하고 있으며 그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들은 극소수의 정치인들이다. 서민들은 무슨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집행되는지에 무지하다. 자신이 벌금을 내고 구속을 당하면 그제야 그런 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형국이다.


  물론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정치인들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은 국민에게 있지만 정치인들은 자신들을 말과 글 그리고 영상매체(언론)를 통제 혹은 매수(買收) 통해 국민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포장한다. 결국 무지에 갇힌 국민은 그들이 원하는 사람을 뽑은 것 같지만 그 모습은 그들이 권력을 가지기 전까지의 모습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권력을 가진 자(정치인)들은 국민을 무지(혹은 정보의 차단)에 가둬두고 다스렸다.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은 원하면서 국민이 똑똑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지만 사공이 하나면 대박 아니면 쪽박이다. 어떤 사공이냐에 모두의 운명이 달려있다. 무엇이 나은가? 사공이 많아 의견이 분분하고 속도가 늦어지도라도 정보와 생각의 공유를 통해 최적의 길을 찾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현재 코로나19 (우한폐렴 공식명칭)사태로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와 언론과 정보의 차단(만리방화벽)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바이러스의 최초 공개자 '리원량' 의사의 사망으로 그 불만에 불이 붙어 분노의 물결이 일고 있다. 네트워크 그물망으로 촘촘히 연결된 세상 속에 이제 국민을 무지 속에 가둬둔다는 것은 과거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故) 리원량 의사

법조인도 알 수 없는 법


  알려고 해도 너무도 정교하고 복잡해진 법은 법조인들조차도 해석이 달라질 정도이다.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에 맞춰 해마다 바뀌고 더욱 디테일해진다. 세상 모든 일을 법망 안에 가두려는 일은 끝이 없어 보인다. 도망가고 가두고 도망가고 가두고를 반복하며 법은 더욱 정교하고 방대해진다. 인간이 만든 법이지만 인간이 통제하기 힘들어지는 수준에 이른다. 아마 미래에는 AI가 법을 검색하고 판단하고 적용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인간의 법 해석과 판단 착오로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불상사가 없으려면 비참하더라도 같은 인간보다 AI에게 맡기는 것이 더 믿을만하다.


권력은 경기와 상관없이 부를 쌓는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최고 권력자(대통령)들이 법정에 서는 이상한 나라이다.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어차피 죄인이 될 거라서 일까? 명예가 실추될 거면 돈이라도 챙겨야 한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법을 뜯어고치기 바쁘다.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법을 바꾼다. 그 새로운 법전의 글자 뒤에 숨겨진 복잡한 경제적 논리와 파급효과를 국민들이 알리 없다. 국민들을 위한다니 마냥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부가 경제 상황과 상관없이 계속 축적될 수 없다. 국민들은 가난해질 때 그들이 부유해진다면 그건 음모일 수 있다.


     권력을 부의 축재(蓄財)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듯 보인다. [PD수첩 - 2020 집값에 대하여 3부]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집값을 잡겠다는 부동산 정책은 수없이 개정과 수정을 반복하였다. 그동안 그 정책을 만든 자들의 부동산 자산가치는 계속 오르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그들은 성인군자가 아니다. 자신의 밥그릇까지 줄여가며 백성을 위할 만큼의 성품을 가지진 않았다. 만약 그들의 재산을 건드리는 자가 있다면 왕이라도 가만 두지 않는다.

영화 <천문>

세종 : 홀로 서있는 조선을 꿈꾸는 것뿐이오.

영상 : 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취미를  대하시듯 할 일이 아닙니다.

세종 : 이 글자는 백성을 위함이요.

영상 : 글은 사대부의 밥이옵니다. 밥은 곧 권력입니다. 그 권력을 백성들에게 나눠준다면 조선의 사대부들은 전하를 등질 것이옵니다. 사대부의 지지 없이 전하가 꿈꾸시는 나라를 만드실 수 있겠습니까?

                                                                                            - 영화 <천문> 중에서 -


   과거 백성들에게는 글이라는 것은 자신과 상관없는 것이었다. 글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 고매하신 양반들이 글을 읽고 알려줄 것이라 생각했다. 말은 사라지지만 글은 사라지지 않는다. 백성의 말과 생각은 역사에 남아있지 않다. 오로지 왕과 신하 그리고 재력가들의 말과 생각만이 역사에 기록되어 현재의 우리에게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권력자들의 보고 느낀 백성들에 대한 주관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만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주체인 민중의 수많은 소리는 사라졌다.


   세종대왕의 업적이 위대한 것은 바로 그 권력을 백성에게 나눠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영화 "천문"에서 극 중 세종이 영상대감과 독대하는 장면이 잊히질 않는다. 왕은 결국 백성이 만들어준 것처럼 보일 뿐 사실 권력을 가진 신하들이 세운 것이다. 왕이 신하들의 이권을 침해하는 일은 자신의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이다. 백성을 위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신하들의 충심이 백성을 향했을 때 가능하다. 군신의 관계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는 쉽지 않다. 과거 노무현 정권 때 그의 국민을 향한 정의로움은 무모함에 그치고 말았다.


  세상은 사사로운 정의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위대한 왕으로 기록된 것은 신하와 백성 사이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했던 임금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눈부신 발전과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왕이라고 세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왕(정권)이 바뀌면 신하도 바뀐다. 왕은 자신과 같은 뜻을 품은 자들을 곁에 두려 한다. 그 과정에서 피바람이 불고 혼란이 야기된다. 그 과정 속에서 희생되는 것 또한 백성들이다. 누가 누구를 통치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왕과 신하와 백성이 합치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힘들다.

영화 <천문> 백성과 임금

올바른 신하들이 세상을 바로 잡는다.


 결국 중간의 역할이 중요하다. 세상 통치의 실무를 맡고 있는 신하들(정치인)의 올바른 가치관이 왕을 바로 세우고 백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신하들은 자기 밥그릇 싸움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과거 당쟁의 역사, 남북의 이념 전쟁, 동서의 분열 모두 그런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권을 위해 조장하고 만들어 낸 것이다.  공부(시험)만 해서 공무원이 되는 나라는 공부밖에 모르다 권력을 맛본 인간들이 정치를 한다. 오랜 기간 학업(=학력)의 보상으로 얻어진 것이 권력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도리와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 사람을 모르고 다스리려 하니 나라가 어지러운 것이 아닐까?  


   세종(왕)과 장영실(백성)의 만남이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우리(백성)가 원하고 필요한 것을 신하(권력자)라는 대리인의 기만(欺瞞)을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민필위 (忘民必危) ㅡ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망각하는 순간 국가는 사라진다.

                                                                                            - 글 짓는 목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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