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시즌 2-8 (개정판)
"야~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다들 한자리에서 미팅을 다하고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다들 이미 인사들 했겠지만 이쪽은 이번에 입사한 전희택 사원입니다. 중국 쪽 사업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라 구대리 혼자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거 같아 충원했어요. 지금 사원이지만 경력으로 입사해서 올해 상반기 인사 때 대리로 진급할 예정입니다. 참 그리고 구대리도 이번에 과장 진급 케이스지?"
"예 그렇습니다만, 그 때 돼봐야 아는 거 아니겠습니까 부장님 하하하"
"이 자쉭! 네가 회사에 날아오는 매출이 얼만데 과장 안 달아주면 되긋나?"
금요일 아침에는 팀 회의가 있는 날이다. 해외영업팀 특성상 해외 출장자가 많아 팀원이 다 같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다. 팀의 리더인 부장의 모습을 입사하고 닷새가 지나서야 처음 보게 되었다.
최지원 부장, 광대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얼굴살이 빠진 모습이 나의 사수인 구대리와 대조적이다. 거무칙칙한 피부에 아담하고 깡마른 체구에서 그의 몸 상태가 양호하지는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 몸에서 느껴지는 연약함과는 달리 그의 눈빛은 강렬하고 표정에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는 모습이다. 그는 구대리의 빈정대는 듯한 대답에 더 이상 군말이 없도록 쐐기를 박는 답변을 날려준다. 구대리는 그의 확신에 찬 말에 대꾸 없이 고개를 숙이며 입가에 얕은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고 고봉래씨는 언제 오지?"
"신입사원 교육이 이번 주까지니까 다음 주부터 정상 출근할 겁니다."
"그래? 봉래씨는 일단 담당 미정이니까 주차장이 당분간 팀 내 *OJT(On-the-Job Training)를 좀 담당해주고."
"아~ 부장님~ 밑에 얘들도 많은데… 왜 제가…"
"주차장이 그런 건 잘하잖아 애들 살살 길들이기 하하, 그리고 나머지 팀원들 출장도 잦고 업무 캐파가 많이 차 있으니 당분간만 부탁해"
"... 예 알겠습니다"
주차장은 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마지못해 대답을 한다.
"그리고 다음 주쯤 국내 영업 신입 2명 하고 우리 쪽 희택씨랑 봉래씨가 같이 영업부 OJT 교육을 4주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그 동안은 부서 내 다른 업무는 일체 시키지 않도록!"
"예 4주 동안요?"
"그래 그리고 OJT 강사는 대리급 이상 현역들이 돌아가면서 할 예정이다. 교육일정이랑 강사배치는 국내 영업팀 정과장이 기획 안을 만들고 있다니까 다들 협조해주고"
처음으로 영업부에 전체 OJT 교육과정이 신설되는 분위기다. 자동차 산업의 호황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성장한 회사는 매출의 증가 속도와 규모의 성장에 따라 직원 수도 대폭 충원하고 있었다. 문제는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성장이 더디다는 판단을 한 모양이다. 회사 내부지침으로 신규 채용 인력들에 대한 철저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지시했다. 물론 기존 직원들에게도 고과 평가에 사내 및 사외 교육 이수에 대한 가점을 부여하는 형태로 참여를 독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새로 유입된 피가 기존의 피와 잘 융화되고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하면 그 회사는 발전을 거듭하지만 만약 기존의 피가 새로운 피를 바이러스로 받아들이고 거부반응을 보이면 서로 죽이는 형국이 벌어진다. 결국 전쟁터로 변해버린 회사는 조금씩 죽어가기 마련이다. 회사의 흥망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대한민국의 많은 기업들이 마찬가지였겠지만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역동적인 산업 성장기를 이끌어오던 주역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짙어지고 있었다.
DG 오토모티브도 당시 2세 경영체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던 시기였다. 사장과 전무로 취임한 두 아들은 이전까지 대구 지역 향토기업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PR(Public Relations)과 IR(Investor Relations) 그리고 인사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즈음 대구경북의 인원으로만 채워져 있던 대부분의 직원들은 전국 방방 곳곳에서 모여든 타 지역의 새로운 인력들과 섞이고 있었다. 지방 중견 기업 치고는 나쁘지 않은 인사 및 복리후생(연봉) 조건 때문인지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인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급성장하는 자동차 산업의 인력은 신규 인력만으로 대체하기 힘들었고 타 산업분야의 인력(조선, 기계, 전자 등)들까지 끌어들이는 듯 보였다.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구대리! 이번엔 부사수랑 좀 잘해봐 알겠 지?"
"아~ 참 부장님도~ 누가 들으면 제가 이상한 사람인줄 알겠네요"
“너? 뭐 정상은 아니잖아 하하하”
“하하하”
“큭큭큭”
“아~ 부장~님!”
"아~ 그래 알았어 미안! 미안! 다음 주에 신입 오면 다들 시간 맞춰 회식 한번 하자고, 그럼 각자 해산! 구대리는 잠시 남고"
최부장과 구대리만 회의실에 남아 뭔가 밀담을 나눈다. 나는 자리에 돌아와 앉은 후 쳐다본다. 회의실 안에 서서 최부장과 얘기를 나누던 구대리와 눈이 마주친다. 여태껏 보았던 것과는 다른 뭔지 모를 고민에 휩싸인 듯한 표정이다.
"어~이! 이제 제품이 눈에 좀 익어? 시간 있을 때 잘 봐놔"
입사 첫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구대리는 나의 이름이나 직급이 아니 ‘어~이!’라는 다소 생소한 호칭을 만들어 주었다. 주차장이나 구대리는 나에게 간단한 데이터 취합 업무나 잔 심부름을 제외하고 특별한 일을 지시하지 않는다.
다만 입사 둘째 날 구대리는 나에게 분해되어 있는 자동차 헤드 램프(Head Lamp) 샘플을 하나 가져왔다. 그는 램프의 각 부분 명칭 및 용도 등이 설명되어 있는 PPT(Power point) 파일을 보내주고 그것들을 숙지하라는 말을 하고는 내가 특별히 말을 걸거나 묻지 않는 한 신경을 쓰지 않고 본인의 업무만 했다. 자동차에서 따로 떨어진 헤드램프는 마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눈알처럼 이상하고 신기했다. 그런데 그것도 매일 보고 있으니 그 흥미도 금세 사라져 버렸다. 독학은 자유롭지만 지겹고 효과가 떨어지는 법이다. 각 부품의 명칭과 설명은 기초지식이 전혀 없는 나에게는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이제 집에 가봐!"
"예?!"
"오늘 금요일이잖아, 집에 내려가 봐야지"
"아~ 네! 먼저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주말 잘 쉬고~"
"오~ 구대리님 초반부터 부사수 너무 챙기시는 거 아닙니까? 하하"
"아~ 이거 왠지 닭살 돋는데... 하하하"
"그니까요 구대리님 같지 않은데요"
“하하하”
뒤에 앉아서 있던 유과장과 송대리의 말에 팀원들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린다. 그 웃음 속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해석하고 싶지만 나의 나와바리인 부산에서 불금을 보낼 생각에 의미해석은 뒤로 미뤄둔 채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들뜬 마음과 함께 서둘러 사무실을 나온다. 옆 부서인 국내 영업팀의 몇몇 인원들이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나와 눈이 마주친다.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인지 엄폐(掩蔽)인지 모른 자세를 취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가속페달을 밟으며 속력을 올려 고속도로를 내달린다. 엔진의 소음과 진동이 뼛속까지 전달되며 불금의 흥분이 고조된다. 집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설레고 즐거웠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첫 주말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