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와 더 많은 급여

평범한 남자 시즌 2-7 (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띠리 리리 띠리 리리"

"어~이~ 첫날인데 집에 들어가!"

"예?! 예"


일과시간이 종료되는 벨이 사무동에 울려 퍼진다. 입사 첫날의 배려인지 나의 사수인 구대리는 내가 하던 취합 업무를 자기에게 주고 먼저 퇴근하라는 아량을 베푼다. 주차장은 사수인 구대리가 베푼 아량이 맘에 들지 않는지 우리 쪽으로 눈을 한번 흘긴다. 그래도 사수와 부사수 사이의 관계에 끼어들어 찬물을 끼얹고 싶진 않은 모양이다. 자신에게 꾸벅 인사하며 사무실을 나가는 나의 모습을 말없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흘겨본다.




"일찍 오셨네요"

"어~ 난 새벽에 다시 나가봐야 해, 잠시 눈 좀 붙이러 왔어"

"예?! 새벽에요?"

"응 야간 도로주행 테스트가 있어서"

"그게 뭐예요?"


룸메이트 은택 형은 자동차 램프에 적용할 적외선 센서를 연구개발 중이라고 한다. 야간에 적외선 센서를 통해 도로와 보도에 사람과 사물을 인식해 사고를 방지하는 기술이라고 한다. 얼마 전 센서의 시제품이 제작되어 실제 도로 상황에서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고 한다. 그는 요즘 매일 새벽 서리가 내린 조용함 밤거리로 향한다. 퇴근 후 저녁에 기숙사로 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간다고 한다. 그래도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출근은 해야 한다.



"형~ 뭐 좀 먹고 자요, 제가 간단히 볶음밥이라도 할게요"

"오~ 볶음밥? 나야 좋지~ 땡큐! 땡큐!"

"근데 다른 한 분은 언제 들어와요?"

"민혁이? 걔는 오려면 아직 멀었어"

"왜요?"

"양산설계는 뭐 퇴근 개념이 없지, 내가 나갈 때쯤 들어오려나?"

"..."


은택형은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한다. 나도 첫날의 긴장 때문일까? 피곤이 밀려온다.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에 스르륵 잠이 든다. 얼마쯤 잤을까? 이불을 덮지 않은 몸 위로 한기가 내려온다. 한기는 아파트 복도로 나 있는 창문 틈새로 스며들어오고 있다. 방바닥은 뜨끈하고 방 안의 공기는 차갑다. 내려오는 냉기와 올라오는 온기가 팽팽하게 싸우다 새벽쯤 되어 냉기가 승기를 잡은 모양이다. 얼굴까지 내려온 냉기에 입김이 나온다.


"으... 얼굴 시려~ 창문에 커튼이라도 해야겠는데..."


핸드폰을 열어 본 시간은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다.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수압에 화장실로 향한다.

안 방 미닫이 문 안에서는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린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룸메이트의 숨소리만 듣고 있다. 조용히 미닫이 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본다. 베란다 밖의 달빛이 방 안으로 비춰 들어 희미하게 방안의 풍경이 확장된 나의 동공 안으로 들어온다. 룸메이트는 방바닥 좌식 의자에 앉은 채로 옆으로 꼬꾸라져 있다.

그의 앞 작은 좌식 탁자 위에 놓인 노트북은 화면이 꺼져있지만 전원 불빛이 미세하게 점멸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전원을 끄지 않고 컴퓨터를 하다 잠이 든 모양이다.


허리가 ‘ㄱ’자로 접혀서 자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나는 좌식 탁자에서 다리를 빼내어 몸을 일자로 누인다.

침대 위에 있는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를 들어 베개를 아래로 밀어 넣는다.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을 해맑아 보인다. 하루 종일 놀다 지쳐 잠든 아이 같은 모습이랄까? 많이 피곤했는지 입가에는 옆으로 흘러내린 침 자국이 보인다. 짧은 머리에 유독 새치가 많아 어둠 속에서도 보일 정도이다.


'서른에 이 정도면 마흔 되면 백발 되겠구먼...'


그의 컴퓨터 마우스에 손을 대는 순간 화면이 켜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확대된 3D 설계도면이 나타난다.

집에 와서도 일을 하다 잠든 모양이다. 컴퓨터 화면의 불빛에 방 안이 환해졌다. 좌식 탁자 옆에는 먹다 남은 감자칩과 맥주캔이 보인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렇게 많길래 집에서까지 도면을 보고 있는 거야?'


"어~ 아쒸~ 그만 그만 좀 제발..."


그는 몸을 한번 뒤치락거리면서 잠꼬대를 한다. 뭘 그만 하라는 건진 모르겠지만 꿈속에서도 일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그의 일상은 모든 순간이 일로 채워져 있는 것 같다.


"달그락! 달그락! 끼익~ 쿵!

“으으으 추워~"

"어~ 형님 오셨어요?"

"어라! 안 자고 있었네"

"예 일찍 잠들어서인지 새벽에 깼네요"

"민혁이 또 꼬꾸라져 자고 있었나 보네"

"네, 밖에 많이 춥죠?"

"오~~ 장난 아니야"


은택형은 얼은 손을 비비며 방바닥 이불속으로 손을 밀어 넣는다. 옆에 감자칩을 발견하고는 몇 개 집어먹고는 점퍼만 벗고 그대로 침대 위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잘 주무시라는 말과 함께 미닫이 문을 닫고 나의 방으로 향한다.방안에 서있으니 상체에서 느껴지는 한기가 밖의 추위를 짐작케 한다. 왠지 모르게 올해 겨울은 유난히도 춥게 느껴진다.


"오! 안녕! 희택씨! 난 송중건 대리야~ 유럽담당! 잘 부탁해"


훤칠한 키에 훤칠하게 벗겨진 이마가 인상적이다. 그는 생기 있는 말투와 함께 손을 내밀며 인사한다.

팀원들 대부분은 뭔가 불편하고 경계심 섞인 태도 아니면 무관심과 귀찮니즘의 두 가지 반응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래서인지 반갑게 활짝 웃으며 맞아주는 그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벗겨진 머리 때문인지 대리 직급이지만 부장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12-


가족사진 옆에 놓인 십자가와 성경 책 속 문구가 적힌 달력이 그가 신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혹시 나에게 전도의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일까 다른 팀원들과는 다른 밝은 표정을 가지고 있다.


"송대리~ JD차종 네고 언제 끝낼 거야?"

"휴~우~ 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차장님도 다 아시면서..."

"최선의 결과보다 최고의 결과가 중요하다! 알지?"

"아~ 너무 하시네요~"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날아가~"

"간다고 해결될 거면 벌써 갔죠"


주차장의 한마디에 그의 환한 표정은 금세 일그러지며 자리에 앉아 컴퓨터 속 자료를 훑어본다. 신앙으로 다져진 평정심도 일과 현실 앞에서는 소용없어 보인다. 잠시 뒤 그는 컴퓨터를 바라보며 씩씩거리며 머리를 움켜쥔다. 더 이상 빠질 머리도 없다. 혹시 저 머리는? 여기서 일하면서 저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소름 돋는 상상이 밀려온다. 룸메이트의 새하얀 새치와 손대리의 탈모, 이노총 대리의 시커먼 팬더 눈덩이, 그리고 매일 잠 못 이루며 밤이슬을 밟는 룸메이트 형 이 모든 상황들이 앞으로 나에게 펼쳐질 모습 중에 하나가 아닐까하는 두려운 생각이 밀려든다.


직장인은 어딜 가나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 경중에 차이가 있으나 자신이 처한 환경이 가장 힘들 뿐이다. 남이 힘든 건 내 알 바가 아니다. 어차피 힘들다면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한다. 어딜 가나 힘드니까 돈으로나마 보상받아야 억울하지 않다.


결국 직장인들은 연봉이라는 숫자로 자신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다. 남들 10년 동안 벌 돈을 5년 안에 버는 직장인이 있다면 그는 성공한 직장인이다. 대기업 직장인이 시간당 수입이 가장 많은 직장인이며 그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나 또한 그런 생각에 이직을 결심한 것이고 나의 연봉도 올라갔지만 내가 받아야 할 스트레스는 변함없거나 더 많아질 것이다. 다만 매달 통장에 찍히는 더 많은 급여에 위로 받을 뿐이다.


그렇게 직장인은 더 많은 급여를 향해 더 많은 스트레스를 감내(堪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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