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시즌 2-6 (개정판)
적당히 살이 오른 볼과 정확히 5:5로 나눈 가르마를 한 머리끝이 이마 안쪽으로 굽이친다. 3자를 앞으로 엎어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차려 입은 듯 보이는 정장이 옷맵시가 나지 않는다.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어져 매듭이 한쪽으로 치우쳐있고 셔츠는 헐렁한 것이 한 치수 커 보인다. 정장구두가 아닌 갈색 캐주얼화는 각 잡힌 정장 바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구고관대리] 명판이 적힌 내 옆 책상에 노트북 가방을 던지듯이 놓고는 짝다리를 짚고 팔꿈치를 책상 파티션 위에 걸친 채 나를 내려다본다.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눈은 웃고 있는데 입은 굳게 다물고 있는 모습이 인자함과 근엄함을 다 가지고 싶은 표정이지만 보는 나로서는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오~ 드디어 온 것인가? 하하하"
"구대리~ 빨리 CR자료 내놔~ 니 옆에 부사수한테 주면 돼"
"예?! 그걸 왜 얘한테 줍니까?"
"내가 취합하라고 했어"
"아~ 차장님~ 무슨 입사 첫날부터 일을 시킵니까?"
"그런 게 어딨어! 바빠 죽겠는데, 아~ 참! 부장님은?"
"하루 더 있다가 오신답니다"
"일은 잘 해결됐고?"
"뭐 부장님 성격 아시잖아요"
"오케이!"
구대리는 컴퓨터를 켜고 폴더를 뒤적거리더니 엑셀 파일을 열어 능숙한 손놀림으로 데이터를 정리한다. 10여분쯤 지났을까?
"어~이 희택이라고 했나?
"예!"
"중국 CR 자료 메일로 보내 놨어"
"아~ 예~ 감사합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그가 보내준 자료는 열어보고 나서 내가 왜 그의 부사수가 된 건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자료가 방대하다. 차종 수도 많고 매출도 다른 해외 담당자들 것 보다 훨씬 크다. 그 혼자서 해내는 매출이 상당하다. 전체 해외공장 매출의 절반 가량이 중국에서 발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말은 매출액만큼 존재감이 크다는 뜻이다.
“아~놔! 출장 동안 바빠서 씻을 시간도 없네!”
그는 세수를 하고 왔는지 앞머리가 젖어있다. 자리에 앉아 책상 위에 놓인 핸드크림을 짜서 손등으로 비빈다.
그의 손이 유난히도 하얗고 고운 건 다 이유가 있어 보인다.
"부산에서 왔다며?"
"예"
"뭐 하러 여기 여까지 왔데? 부산에 일할 데 없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구대리님은 대구 분이신가 봐요?"
"여기 다 대구야 너 빼고"
"난 아닌데…"
"아 맞다! 이대리님은 경남이네 어~이! 이거 쏘리 합니다"
그는 이대리 쪽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보인다. 이대리는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가락을 움직이며 귀는 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나 보다. 그는 시계를 보더니 노트북을 덮고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회사 점퍼를 입고 노트북 가방을 들고 나갈 기세다.
"이대리님 아직 CR 자료 안 주셨는데요"
"아! 놔~ 바쁜데…"
"이대리님! 우리 부사수 일 좀 하게 해 주세요"
이대리는 짜증 섞인 소리를 내며 다시 자리에 앉아 노트북에서 자료를 찾는다.
"희택 씨야~ 보냈어~ 근데 CR양식에 옮길 시간이 없네, 내 데이터 보고 정리 좀 해줘 쏘리~ 차장님! 저 대구 공장 프로젝트 미팅 좀 갔다 올게요"
그는 허둥지둥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그가 보내준 자료는 정말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그는 인도 지역 담당이다. 차종과 차종별 제품단가만 나와 있다. CR금액은 내가 산출해야 한다. 년간 예상 판매대수로 년간 매출을 산출하고 별도의 엑셀시트(sheet)에 정리된 차종별 CR율(가격 인하 비율)을 적용해서 금액을 뽑는다. 그리고 회사의 년간 사업계획에서 정한 각 나라별 적용 환율을 적용해서 원화로 환산하여 집계한다.
"어이~ 희택 사원! 잘 돼가나? 밥 먹으러 가자!"
"예 알겠습니다"
"아~ 벌써 밥 때가 됐어?"
"식사하러 가시죠 차장님"
"어… 그래 가야지"
주차장은 우과장 말에 대꾸만 하고 계속 노트북만 쳐다본다. 구대리는 주차장 뒤에서 우과장과 함께 서있는 나에게 인상을 쓰며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아~놔! 차장님은 꼭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일하는 척하신다니까, 일도 없으믄서"
"예?! 그게… 무슨…"
“뭐 그런게 있어, 너도 시간이 지나믄 알게될꺼야”
본사 건물 안에 구내식당이 있다. 식당은 이미 직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줄이 이미 길게 늘어섰다. 남색의 회사 점퍼 행렬의 긴 띠가 두 개로 나눠져 있다.본사 건물 식당은 사무직만 이용한다. 생산직은 공장동에 마련된 구내식당을 이용한다. 사무직과 생산직은 밥도 따로 먹는다. 두 무리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어쩌면 이렇게 분리된 환경이 만들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전 회사에서도 느끼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두 그룹간의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대기업은 아마 서로의 존재를 알기조차도 힘들 것이다.
"어~이! 넌 뭐 먹을 건데? 정식? 특식? 오늘 특식이 마파두부네 난 특식"
"그럼 저도 특식 먹겠습니다"
"일부러 따라먹을 필요 없어~ 난 이런 걸로 눈치 안 줘 누구처럼..."
"아~ 예"
"오~ 희택씨!"
"아~ 형님!"
해운대에 사는 룸메이트 형이다. 정식을 먹는 줄에 서서 나를 발견하고는 나의 이름을 부른다.
월요일이라 부산에서 바로 회사로 출근한 모양이다. 적진에서 동지를 만난 듯한 느낌이랄까?
낯선 환경 속에서 지인을 그것도 동향(同鄕)의 형을 보니 그 반가움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크다.
그는 저녁에 기숙사에서 보자며 손을 흔들고 앞으로 나아간다. 오늘 정식 메뉴는 인기가 없어 보인다.
줄이 빠지는 속도가 특식보다 훨씬 빠르다.
"누구?"
"아~ 네 기숙사 룸메이트 형이에요"
"부서가 어딘데?"
"선행연구팀이요"
"꿀 빠는 파라다이스에 계시구만, 돈만 써 재끼는 녀석들... 돈은 우리가 버는데 쟤네들은 쓸 줄 밖에 몰라"
"예?! 무슨 말이신지?"
"뭐 그런 게 있어 차차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린 선행하고는 별 볼 일 없어"
"뭐 하는 부서인가요?"
"뭐하냐고? 과학하시는 분들이지 하하하"
"과학이요?"
"잘 생각해봐 뭔 뜻인지"
그가 던지는 말은 뜬금없는 것들이 많다. 나는 그가 던지는 단어들로부터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들을 유추해내야 한다. 그는 그의 언중유골(言中有骨)을 빨리 캐취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는 부사수인 나에게 자신의 성향을 빨리 파악하라는 무ㅁ언의 압박을 가한다. 그리고 자신은 다른 상사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려 하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은 어딜 가나 똑같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첫 만남에서 좋은 첫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자신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중요한 건 그 다른 점이 좋은지 나쁜지는 중요치 않다. 다만 그것이 나와 맞냐 안 맞냐가 중요할 뿐이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다면 같이 있는 시공간은 고통의 연속이 될 뿐이다. 그는 어떤 부류이며 내가 맞출 수 있는 자인가?
그것이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