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시즌 2-10 (개정판)
"달그락달그락 기이익"
"어! 아~ 안녕하세요 오... 오셨네요, 월요일 바로 출근하실 줄 알았는데...."
일요일 해가 넘어가고 저녁이 다되어 도착한 기숙사, 현관문을 힘겹게 따고 들어가자 반쯤 열린 안방 미닫이 문 사이로 룸메이트와 낯선 여성이 눈에 보인다. 둘은 나의 등장에 다소 당황한 모습이다. 여자는 급히 풀어진 셔츠의 단추를 채우고 옷 매무새를 바로 잡는다. 한 손으로 앞으로 흘러내린 귀 뒷머리를 넘기며 어색하게 인사한다. 나는 안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안녕하세요 이제야 뵙게 되네요, 전희택입니다."
"아~ 네 강민혁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입사하고 제대로 그의 얼굴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매일 늦게까지 야근을 해서인지 출근이 늦은 편이어서 나와 마주칠 일이 없었다. 둘은 방 안에서 피자를 시켜먹은 모양이다. 두 조각 남은 피자와 콜라가 보이고 노트북에는 알 수 없는 영화가 재생되고 있다. 나는 둘의 오붓한 데이트를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쪽은 제 여자 친구예요, 참 저녁은 먹었어요?"
"아.. 아뇨 아직"
"피자 좀 먹을래요? 우린 이제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나가시게요?"
"여자 친구 집에 데려다주고 와야 해서요"
"그래요? 그럼 있다가 돌아오시면 맥주 한잔 할래요?"
"맥주요? 그럴까요?"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간단히 한잔 하면서 하하"
"그래요. 그럼 맥주는 제가 오는 길에 사 올게요"
"OK~ 그럼 난 안주를 준비할게요"
그는 일에 절어 사는 줄 알았는데, 나름 연애사업도 진행 중이다. 사실 나이보다 좀 많은 새치만 빼면 나름 준수한 외모를 가졌다. 여자들이 보기에 모성본능을 자극할만한 귀염상이다. 그는 더욱이 서울 사람이라 그의 성격과는 상관없이 말투에서 느껴지는 단정하고 바른 인상이 경상도 여자가 호감을 느끼기에 충분해 보인다.
나도 경상도 남자지만 서울 여자를 만나면 아무 이유 없이 호감이 느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일까?
그만큼 말투에서 느껴지는 상대방의 첫인상을 무시할 수 없다.
남녀 간의 만남에서 첫인상은 아주 중요하다. 첫 만남의 5~7초간의 탐색전에서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이 결정된다고 한다. 외모(생김새, 패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처음 건넨 말투와 행동 또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그 꾸며진 첫인상에 속아 서로 맞지 않는 악연을 시작하거나 혹은 좋은 인연을 놓치기도 한다.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다. 나 또한 그런 시각적인 유혹에서 빠지지 않으려 사람을 만날 때 특히 이성의 경우는 3번 이상 만나봐야 한다는 나름의 철칙을 세우고 있었다.
"대구 여자예요 이제 1년쯤 됐어요 하하"
"여자 친구 미인이던데요, 역시 대구 미인이라더니"
"미인까지는 아니고요, 참! 동갑인 거 같던데 말 편하게 해요"
"그.. 그럴까? 그럼"
"오~ 이 부침개 정말 맛있네"
"그래요? 더 있으니 많이 먹어"
"자~ 원샷!"
기숙사에서 조촐한 주안상(酒案床)이 차려졌다. 안주는 김치부침개와 3분 요리 미트볼이다. 때마침 창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술 마시는 최적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는 DG 오토모티브에 신입 공채로 입사해서 이제 3년이 다 되어 간다고 한다. 그도 올해 나와 같이 대리 진급 케이스이다. 갑갑한 서울 생활이 싫어 지방으로 왔다는 그는 정말 일만 하다가 3년이 훌쩍 지났다고 한다.
집이 멀어서 명절이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냥 대구에 있었다고 한다. 어차피 토요일도 근무를 해야 하기에 어디 갈 생각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여자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회사와 기숙사만 오고 가며 주말에도 텅 빈 기숙사에 홀로 남아 게임이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때우는 히키코모리 같은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우연히 회사 동료의 소개로 그녀를 만나고 난 후부터 기숙사와 회사가 아닌 제3의 장소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녀의 성격이 활달하고 적극 주도형 스타일이라 소심 피동적인 그와 잘 맞았다고 한다.
그는 그냥 그녀의 육성(肉聲) 네비게이션 지시를 받아 장소를 옮겨 다녔고 그녀가 내미는 손을 잡았으며, 그녀의 기습으로 첫 키스를 당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그는 그게 편하고 좋았다고 한다. 그전까진 자신이 왜 일을 하는지 모른 체 남들이 다 다하니까 그저 직장 선배들을 따라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고 일을 해야 할 목적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어 보인다.
"맨날 야근하는 거 같던데..."
"양산설계는 정말 답이 없어, 뭐 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놈의 고객 새끼들이 어찌나 달달 볶는지..."
"...."
"너도 뭐 조금씩 알게 될 거야, 고객인지 웬수인지..."
"웬수?!"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는 커리어와 여자 친구 때문에 참고 일하고 있다고 대놓고 말을 한다.
그는 술기운 때문인지 동갑인 내가 편해서인지 올해 진급을 하고 나면 기회를 봐서 몸값을 올려 이직할 남모를 야심을 들어낸다. 양산설계의 많은 선배들이 그렇게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그 빈자리는 지금 자신과 같은 중간 설계인력들이 메우고 있다고 한다. 매년 신입사원들을 뽑아서 넣어주지만 설계의 특성상 경험과 역량이 갖춰지지 않은 인력은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사고만 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리고 그런 신입들의 역량이 올라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 도우미 역할까지 자신 같은 중간 직원들이 떠안아야 하는 몫이었다.
야근과 특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민혁은 그 악순환을 끊는 유일한 방법은 탈출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탈출할 때는 전리품을 챙기고 나와야 하는 법이다. 그것을 위해 참고 견디는 것이다. 내가 이전 회사를 탈출했던 것과 같이 그도 탈출을 꿈꾸고 있다. 과거의 내가 내 앞에 있다. 직장인은 그렇게 탈출과 탈출을 거듭하며 물질의 보상을 쫓는다.
그 탈출의 끝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