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의 가장 중요한 능력

평범한 남자 시즌 2-11 (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고봉래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전희택입니다."

"경력으로 입사하셨다면서요. 말 편하게 하세요 선배님!"

"저도 뭐 신입이랑 다름없어요, 앞으로 잘 지내봐요"


그는 하악이 많이 발달한 듯한 얼굴형이다. 그를 보고 처음 머릿속에 떠올린 건 오리너구리다. 웃을 때 드러나는 덧니가 오리너구리가 입을 벌리면 저런 모습일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장난스런 모습과는 달리 울룩불룩하게 솟아오른 두툼한 가슴 근육이 싸움닭의 앞 가슴살을 연상케 한다. 특유의 대구 사투리가 구수하다. 다른 선임들이 쓰는 사투리와는 다르게 나에게 친근하다. 아마 직급에서 짓누르는 압박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생활 이후 전 직장에서 중국 파견 때 빼고는 여태껏 막내 생활만 해서인지 후임 사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이! 신입과 경력 둘이 단합회라도 하냐?"

"퉁퉁!"

"오~ 봉래? 장난 아닌데... 물뽕 아니네~"


구대리는 사무실 한 편에서 얘기를 나누던 우리에게 다가왔고 그는 권투 하는 자세를 취하며 봉래씨의 두툼한 가슴을 장난스레 툭툭 건드린다. 봉래씨는 그 순간 몸을 더 부풀리며 자신의 근육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려 한다. 구대리는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혼잣말로 뭐라고 구시렁거리면서 자리로 돌아간다.


"야~ 너희 둘이 오늘부터 단체 OJT 입소하는 거 알지?"

"9시부터 시작이니까? 필기구랑 저기 있는 램프 샘플 들고 발리(Bali)로 가!"

"예 발리요?"


발리는 회의실 이름이다. 1층 사무동의 회의실마다 각각의 명칭이 있다. 모두가 휴양지의 이름이다. 발리 이외에 하와이, 푸켓, 몰디브, 보라카이가 있었다. 불현듯 왜 그런 이름을 정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열심히 일하면 너희도 그곳에 갈 수 있다. 뭐 그런 의미일까? 우리 해외영업부는 왠지 모르지만 항상 발리를 자주 이용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발리를 거의 매일 드나든다. 언젠간 진짜 발리를 갈 날을 꿈꾸면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 당시 발리는 허니문 코스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국내영업팀 여중고입니다!"

"전 고고헌입니다. 얘기 들었습니다. 형님!"


회의실에는 이미 두 명의 국내영업팀 신입이 자리 잡고 있다. 작은 체구에 아기자기한 이목구비와 하얀 피부 그리고 남자치고는 유난히도 붉은 입술이 이름처럼 여자같이 여린 모습이다. 그런 자신의 외모와는 달리 목소리와 행동은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자신의 외모에서 풍기는 연약함을 감추려는 것인지 언 매칭한 외모와 언행에 다소 헷갈린다. 그의 옆에는 몇 가닥씩 삐져나온 턱수염이 뽑기도 그렇고 면도를 하기에도 애매한 모습이다. 그냥 뽑는 편이 나을 듯싶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보거스는 내 친구'의 주인공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여중고씨와는 달리 서글한 말투와 처음부터 서슴없이 내뱉은 형님이라는 호칭에 나에 대한 적의가 전혀 없는 듯 보인다. 나 또한 그의 허술한 듯한 행동과 말투에 편안함이 느껴진다.


봉래씨는 이미 그들과 2주간 진행된 신입사원 연수교육을 통해 이미 친해진 듯 보였다. 봉래씨가 나이가 제일 어리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처음 입사한 회사였지만 나머지 둘은 이미 다른 회사에서 짧게나마 직장생활을 경험하고 왔다. 다만 그 기간이 나처럼 길지 않아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신입으로 입사했다. 제조업에선 동종 혹은 관련 업계에서 최소 2~3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들의 경력은 2년이 채 되지 못해 신입으로 재입사 했다. 그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야~ 다들 자리에 앉아~"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난 국내영업팀 장보석 부장이다. 뭐 신입들은 내를 봤으니 알겠고, 경력! 니는 내가 처음 이제?"

"예!"

"앞으로 자주 볼게 될 거다"

"옙!"


번쩍이는 머리가 회의실의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이 난다. 반사된 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기름이 흐를 정도로 반들반들한 두피는 그의 머리가 벗겨진지 오랜 세월이 지났음을 알려주고 있다.


"전무님께서 첫 시간은 내보고 하라네, 참 전무님은 내만 찾는다니까 허허"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전무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는 자동차 헤드 램프 샘플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다 놓는다. 자신은 램프의 기본 구성에 대한 교육을 할 거라고 한다. 손가락으로 램프의 곳곳을 가르키며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검지 손가락으로 램프의 투명한 렌즈 안쪽의 전구(Bulb)를 가리킨다.


"어~이 경력!"

"예!"

"이게 뭐꼬?"

"그게..."

"거~ 느그들 밤에 운전하다가 열 받으면 깜빡깜빡 켜데는거 있잖아!"

"아~ 쌍라이트입니다"

"쌍라이트?! 나~ 참 무식하게시리, 앞으로 어디 가서 이런 말 쓰지 않도록! 램프 영업하는 사람이 쌍라이트가 뭐꼬? 하이빔(High Beam)이다. 알겠제?"

"옙!"

"그럼 그 옆에는 뭐겠노?"

"로... 로우 빔(Low Beam)?!"

"그래! 로우빔 아이가! 멀 그래 망설이노 하이 나왔으면 로우겠지, 이 두 개가 램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주행등이다. 알겠제?"

“넵!”


그는 구수한 사투리를 과도하게 섞어 쓰면서 램프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그의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긴 해도 나름 교육효과가 크다. 약간은 공격적이고 강약 있는 사투리가 이럴 땐 학습의 집중력을 올려주는 것 같다.

긴장을 늦출 수가 없기 때문일까? 그의 말투가 은연중에 상대방의 긴장 상태를 지속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학창 시절 동네 골목길을 지나다 깡패들한테 붙잡혀 먹잇감이 되었을 때는 최대한 그들이 원하는 대답과 행동으로 그들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게 해야 빨리 풀려나는 법이다. 괜히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질문이나 헛소리를 하다간 안 맞을 것도 되려 맞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게 약자가 강자 앞에서 취해야 할 가장 전형적이고 보편적인 자세이다. 주입식 교육은 가장 빠른 학습 효과를 발휘하지만 예상하는 것 이상의 효과는 없다.


우리 넷은 다시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모든 학생은 칠판과 선생을 바라보고, 선생(선임)의 말을 듣고 대답하고 받아 적고를 반복한다. 매 시간마다 선생만 바뀔 뿐 그 방식은 변함없다. 그들도 그렇게 배워왔고 우리도 그렇게 배우고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가르칠 것이다. 누가 빨리 많은 것을 기억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것이 산업사회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