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시즌 2-12 (개정판)
"반갑다! 난 대구 3 공장 공장장 최익현부장이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우리 공장에 온 걸 내가 환영까지는 못하겠고 장부장이 하도 부탁을 해서 뭐 안 도와줄 수도 없고 해서 휴~ 어쨌든 일주일 동안 생산라인에서 말썽 피지 말고 조용히 배우고 가도록!"
"옙 알겠습니다"
램프 생산라인의 체험학습이 시작되었다. OJT의 일환으로 일주일은 이론 수업을 하고 나머지 일주일은 공장에서 실습을 하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일주일간의 이론 수업이 끝이 나고 4명의 교육생은 각기 다른 공장의 생산라인에 투입되어 램프가 생산되는 과정을 직접 몸소 체험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와 국내영업팀의 고헌씨는 대구의 한 A/S 전용 램프 공장의 생산 라인에 투입되었다. 나머지 둘은 대구의 또 다른 램프 공장으로 실습을 나갔다. 우리를 맞이한 공장장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맞이했고 첫날 회의실에서 1시간 정도 간단한 공장 소개를 한 후 내 또래 쯤으로 보이는 생산팀의 직원에게 우리를 버리듯이 떠넘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3공장 램프 조립반 반장을 맡고 있는 최고속 반장입니다. 공장장님 지시로 오늘부터 일주일간 두 분의 공장실습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궁금한 점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항상 저를 찾아주시면 됩니다.”
최고속 반장은 우리를 데리고 공장의 자재 입고부터 완제품 납품까지의 전 공정을 보여주었다. 그의 친절한 안내와 설명 덕분에 짧은 시간에 램프의 생산 공정에 대해 대략적인 개념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보는 제조업의 상세 공정은 이전의 조선소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또 다른 산업 현장을 나의 머릿속에 새겨주었다.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30분 가량의 전 생산 공정 라인 투어가 끝이 나고 고헌씨는 플라스틱 사출 라인으로 투입되었고 나는 램프 조립라인으로 투입되었다. 그리고 체험 학습이 아닌 '체험 삶의 현장'이 시작되었다.
"삐삐삐~ 삐삐삐~ 삐삐삐~"
"아따 뭐 하는교? 경고등 또 켜졌네~"
"아~ 죄... 죄송합니다"
"다 큰 사내가 이래 구멍에 딱딱 못 맞춰가 어따 쓰노? 스크루 하나 박는데 이래 느리가 우얍미꺼?"
나는 전동 스크류 드라이버를 손에 들고 램프의 부품과 부품을 스크류로 조립하는 공정에 투입되어 벌써 두 시간째 스크류를 박고 있다. 한 손으론 스프링 와이어에 매달린 전동 드라이버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스크류 통에 담긴 작은 스크류를 집어 드라이버에 끼우고 부품과 부품의 체결(Joint)되는 구멍에 대고 드라이버를 아래로 누르면 압력에 의해 자동으로 드라이버가 스크류를 체결된다. 마치 야동을 보며 딸딸이(자위행위)를 칠 때의 연속 동작을 연상케 한다. 이 동작을 하루 종일 해야 한다. 어깨가 결리고 손목이 아파온다. 나의 소중이를 다룰 때와는 동작만 같을 뿐이지 그 기분은 완전 다르다. 육체의 쾌락이 아닌 고통만 더해간다.
"최반장님! 이 알람은 우리 때문이 아닌 거 아시죠?"
"네네, 알았으요!"
"저기! 아재요! 반제품 밀려있는 거 보이죠! 빨리 좀 하이소!"
"예~예 알겠습니다"
내 앞 공정에 서 있는 노란 완장을 차고 있는 어머니뻘쯤 되는 아주머니가 최고속 반장에게 소리친다. 이 아주머니가 이 조립라인의 조장인듯 보인다. 모든 조립라인에는 형사들이 범인을 쫓을 때 차에 붙이고 달릴 때 보던 비슷한 사이렌 등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 조립라인에 달린 사이렌은 오늘 가장 바쁘게 번쩍거리며 울어댄다.
조립라인에서 공정과 공정 사이에 정체시간이 몇 초 이상 지속되면 자동으로 울린다고 한다. 첫 알람이 울리고 다시 속도가 정상궤도로 올라오지 않으면 벨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거나 자리를 비운다거나 하면 바로 티가 나게 된다. 모든 조립 라인 위에는 그날의 목표량과 현재 달성량이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조립 라인 간의 경쟁을 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라인에게는 내가 모르는 뭔가 페널티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아주머니가 처음 보는 나에게 그렇게 버럭버럭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와~ 어머니! 손이 엄청 빠르시네요"
"이건 아무것도 아냐! 양산라인 아줌씨들한테 비할바가 아니지"
양산라인은 한치에 실수 없이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하기에 가장 숙련된 작업자들이 투입된다고 한다. 그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반복 운동을 한치에 오차도 없이 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A/S 조립라인보다 더 많은 시급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A/S라인 아주머니들은 양산라인을 부러워한다고 한다. 그리고 양산이든 A/S라인이든 각 조립 공정 별로 매일 할당량 달성률을 집계해서 매달 1등 조립라인에게는 별도의 포상이 이뤄진다고 한다. 포상이라고 해봐야 각종 식료품 세트나 작은 가전제품들이지만 가정 주부들에게는 그것도 감지덕지(感之德之) 아니겠는가? 반면 꼴찌 라인에게는 원치 않는 패널티가 주어진다.
일 년에 한 번 공장의 각 생산 공정마다 생산 실적이 우수한 팀과 인원을 선발해서 포상을 실시한다. 생산직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내가 실습하고 있는 조립라인에서는 "베스트 조립라인"을 뽑아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그리고 연중 한 번 사내 조립 콘테스트 개최해서 '베스트 조립왕'을 선출한다.그날은 무슨 학교 운동회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한다. 사내에 실력 있는 램프 조립 달인 아주머니들이 각 공정별 조립 시합을 펼치고 가장 빠르고 완벽하게 조립하는 아주머니에게 4인 가족 기준의 4박 5일 해외여행 패키지 티켓을 지급하고 유급휴가를 보내준다고 한다.
공장의 모든 아주머니는 그날의 영광을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不撤晝夜) 속도를 올리고 있다. 조립라인에는 코를 찌르는 파스 냄새가 가실 날이 없다.
마치 인간이 로봇이 되려는 듯이...
* 양산라인 :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의 생산라인, 즉 신제품 생산 라인
* A/S라인 : 단산된 제품의 생산라인으로 제품의 생산량이 양산라인보단 현저히 떨어지고 수리보수용 부품으로 공급되기에 품질이나 납기가 양산 제품보다 까다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