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시즌 2-15 (개정판)
"어~이! 주말은 잘 보냈어?
"네 뭐 그럭저럭 잘 보 보냈습니다"
"주말에 뭐 했는데?"
"예~ 대구 시내 나가서 동성로 구경했는데요”
“거까지 뭐하러 갔데?”
“대구에 미인이 많다고 해서 구경 좀 하려고 하하 기대를 많이 하고 나가서 인지… 제가 보기엔 뭐 그렇게 미인이 많은 거 같진 않던데요"
"야! 미인은 다 서울 갔어! 너 같음 여기 있겠냐?"
월요일 아침 출근과 동시에 구대리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옛말에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인재나 미인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야 그 진가를 드러내는 법이다. 결국 인재나 미인은 사람들의 인기와 추앙을 받아서 먹고 사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대구에는 더 이상 미인들이 넘쳐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연예인 중에 인물 꽤나 있는 자들은 대구경북 출신이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유일하게 종편까지 사수한 드라마 '풀하우스'의 송혜교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럼 여기 대구에 남아 있는 자들은 서울로 가지 못한 2인자들의 무대인가? 사실 서울로 가지 않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자신의 터를 옮기거나 모험적인 행동을 잘하지 않는다. 집이 제일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사실 모험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법이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속에 적응해야 하고 그 속에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수많은 상황에 더 많이 노출되기 마련이다. 모험은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 더 쉽게 접근한다. 물론 가진 것이 아주 많은 사람들도 한다. 그들은 위험을 회피하고 만회할 수 있는 돈과 권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가진 게 없는 자들은 어차피 여기나 저기나 별 반 차이가 없다면 모험을 걸어보는 게 낫다. 성공도 실패도 하지 않는 삶은 모험이 없는 삶이 아닐까? 사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을 느낀다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쩌면 여기 분지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아는 사람들 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부산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고는대구사람을 만나본 적은 거의 없다. 가끔 전라도 사람이나 경기도, 강원도 사람을 만난 적은 있어도...
"어~이! 발표 준비는 잘 돼가나?"
"예, 하고는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네요"
"뭐 본 데로 들은 데로 말하면 되지, 뭐가 그리 어렵노?"
"예 그렇죠…"
보고 들은 것만 말 할거면 발표회를 할 이유가 있을까? 신입사원들이 보고 들은 것은 기존에 선배 직원들이 수도 없이 보고 들은 것들일 것이다. 그것을 또 다시 신입사원들로부터 듣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건 모두에게 시간낭비일 뿐이다.우리가 보고 들은 것이 틀린 것이 있는가 확인하려는 것일까? 그럴 거면 각 부서의 선임에게 제출하고 확인만 받으면 될 일이다. 난 OJT교육간 보고 들은 것들로 떠오른 생각과 의문들이 머릿 속에 가득하다.
다른 신입 사원들은 OJT 일지와 현장에서 찍은 사진 등을 활용해 자신이 보고들은 것들을 어떻게 보기 좋게 꾸밀까에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OJT 교육 발표회라기보다 PPT 경연대회를 준비하는 것 같아 보인다.
내용보다 내용을 담는 틀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다.
사실 회사에서 EXCEL과 PPT(Power Point)만 잘해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 모든 업무시간의 대부분은 이 MS(Micro Soft) OFFICE를 다루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한다. 차라리 대학에서 MS OFFICE 학과를 개설하는 것이 기업의 인재 채용과정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쓸데없는 전공과목의 수업 내용은 회사에 들어가면 모두 새로 배워야 한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 때문에 기업에서 새로 배우는 내용에 혼선만 가중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기업들 사이에서 "쓸만한 인재가 없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기업에서 선호하는 현업 맞춤형 인간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대학이 기업 맞춤형 인간을 찍어내는 공장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은 말 그대로 학문을 하는 곳이지 기업 인력 양성소가 아니다. 그럴 거면 기업에서 대학을 만들어야 맞다. 더욱이 기업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대학에서 가르치기에는 현업과 동떨어진 고리타분한 대학교수한테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혼란은 정석과 편법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업은 지나간 과거를 담아놓은 교과서에 적힌 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산업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지만 교과서는 해가 바뀌어도 그대로다.
그렇기에 현업과 학교의 괴리는 갈수록 멀어진다.그 변화에 발맞춰 시스템과 사람도 변해야만 살아남는 것이 기업생태계이다. 그 변화 속에는 수많은 편법과 생략이 수반된다. 정공법은 세간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대기업의 표준화된 공장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실제 산업생태계의 밑바닥을 지탱하는 중소기업들에게는 크게 해당사항이 없다.
효율과 속도 앞에서 그 모든 것들은 간과되기 십상이다. 핵심기술과 자체 유통(판매) 망을 가지고 있지 않는 중소기업은 효율과 속도로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해야만 기술과 유통망을 가진 고객에게 낙점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저의 OJT발표를 마치며 이번 OJT 교육 간에 보고 들은 것 중에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 선배님들께 여쭙고 싶습니다."
다른 세 명의 신입사원의 발표가 끝나고 나의 OJT 발표가 진행되었다. 그전에 세 명의 신입사원에게 없던 나의 마지막 멘트에 다들 주의가 집중되는 모습이다. 나의 발표자료를 사전에 검토했던 주차장과 구대리는 PPT에 없던 느닷없는 시나리오에 당황한 표정이다. 물론 영업본부장인 이 전무가 자리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표정이다.
"허허! 역시 경력사원이라 뭔가 다르구만, 그래 뭔가? 말해보게"
영업본부장인 이웅재 전무는 대회의실 중앙의 최상석에 앉아 기대 있던 등을 좌석에서 떼어내며 앞으로 몸을 숙여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 두 손을 모은다.
엄지와 검지로 금테 안경을 한번 추켜올린다.
"첫 번째 질문은 생산조립라인에 굳이 사람을 배치시킨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제가 보기엔 단순 반복 작업이 대부분인데 자동화 로봇으로 라인으로 구축하면 되지 않습니까?"
"하하하"
"하하하"
"허허허 방금 자네가 그 말을 하고 여기 팀원들이 자네를 보고 웃은 이유가 뭔지 아나?”
“잘…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대 말이 틀리지 않아, 사람이 할 일은 아니지, 그런데 말이야. 안타깝지만 로봇보다 쌀 때까진 사람이 해야 되지 않겠어? 언제까지 일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처음에 그 말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고 그 말을 거꾸로 해석하고 나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비싸지면 로봇으로 대체된다는 말이다. 지금도 임금투쟁을 하며 파업을 하고 거리로 나서는 노동자들은 어쩌면 스스로를 더 빨리 로봇과 대체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로봇으로 변해가는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던 아주머니들의 손동작이 아직까지는 이용가치가 있어 보인다. 그게 언제까지 일진 알 수 없지만…
"경력! 그 다음은 뭐야?"
이전무 옆에 앉아있던 반짝이 장부장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쏘아붙이듯 나에게 묻는다.
"아~ 예! 그 다음은 제가 제품원가계산을 하면서 느낀 점인데요, 제품 원가 계산 표준에는 자사가 취하는 이윤율이 명기되어있던데요, 모든 제품이 똑같은 이윤을 취한다면 영업맨이 하는 일은 뭔가요? 그냥 계산서만 작성하는 건가요? 수주매출의 증대뿐만 아니라 이윤 증대도 영업의 역할로 알고 있습니다. 고객이 지급하는 이윤이 왜 정해져 있는 것인가요? 협의가 불가능한 것인가요, 그리고 왜 이윤이 계산서에 명시되어 고객에게 제출되는지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하하하"
"하하하"
"음… 허허허. 단순하지만 뼈가 있는 질문이네, 그런데 다른 신입사원들은 왜 그런 의문이 없지?"
"희택씨가 다른 업계에 있다 와서 잘 모르나 본데... 그건 차차 알게 될 거야, 처음부터 너무 많은 걸 알려고 들지 말고"
장부장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무라듯 나에게 쏘아붙인다.
"장부장! 사실 세상에 정해진 건 없지 않겠나, 다만 사람이 거기에 익숙해져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바꾸려고 하지 않을 뿐이지"
"예?! 저… 전무님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 영업도 영업이 아니야 허허허"
이전무와 장부장 둘이 나누는 대화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순 없지만 이 전무의 힘없는 웃음 속에는 오랜 세월 현업에서 영업맨으로 뛰어다니며 경험했던 과거를 떠올리는 모양이다. 그가 보기에 과거에 빗대어 볼 때 지금의 영업 여건이 좋아졌는지는 몰라도 재미는 없어보인다. 영업도 표준화되고 정형화되고 규격화됨으로서 영업맨의 자율 재량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영업도 생산 조립라인의 그 아주머니들처럼 단순 반복적으로 계산서나 찍어내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자! 다들 수고했어요, 처음으로 진행한 신입, 경력사원의 OJT 발표가 나름 성과가 크네요, 앞으로도 계속 이 같은 과정을 지속 발전시켜나가도록 해보세요. 장부장! 최부장! 내 말 잘 알겠지?"
"옙! 전무님!"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현업의 대리 과장차장들도 바쁘다고 매너리즘에 빠져 일만 하지 말고 전희택 사원처럼 뭔가 의문도 가지고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해봐요 알겠죠?”
“넵!”
“옙!”
"이런 말이 있어요. 듣는다고 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며, 이해해도 동의하는 것이 아니며, 동의해도 실천하는 것이 아니며, 실천해도 지속하는 것이 아니다. 배움은 시작일 뿐입니다. 모두가 배움에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이전무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움이 나를 변화시키느냐는 것이다. 변화 없는 배움에만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배움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