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시즌 2-21 (개정판)
"헉! 좆됐다!"
어제 너무 무리한 탓일까? 견적 마감 때문에 밤 12시가 다되어 퇴근했다. 결국 아침에 늦잠을 자고 말았다.
확인한 핸드폰에 구과장의 부재중 전화가 보인다. 아침에 자출(자전거 출근)로 나의 기숙사 근처를 지날 때 내가 없어 전화를 한 모양이다. 씻는 둥 마는 둥 기숙사를 뛰쳐나왔다. 현관에 그의 신발이 보이지 않는다.
"어? 벌써 출근했나 보네, 징~하네 몇 시간 자고 출근한 거야? 좀 깨워주던지 하지 짜쉭! 아침부터 구 과장한테 한 소리 듣겠구먼"
은택형이 미국 출장을 가고 민혁과 둘이 기숙사에 있다. 어젯밤에 12시가 넘어 들어왔을 때도 그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야근은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려는 듯하다. 민혁은 보통 가장 늦게 출근한다. 항상 내가 제일 먼저 나가고 그 다음 은택형이 기숙사를 나선다. 오늘은 내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가장 늦게 나온 거 같다.
차에 오르자마자 속도를 올린다. 회사 앞의 양쪽 도로에는 이미 출근한 차량들로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아놔! 늦게 나오니 주차할 곳이 없네"
하는 수 없이 회사에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빈자리를 발견하고 주차한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거리와 속도를 계산해 봤을 때 이 속도로는 지각을 면치 못할 거라는 수학적 판단이 내려지고, 백팩 가방의 끈을 당겨 등짝에 타이트하게 붙인다. 육상 모드로 전환하고 속도를 올린다.
"삐용~삐용~삐용~"
아침부터 공장들로 둘러싸인 공단도로 사이를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여러 대의 경찰차가 쏜살같이 내 옆을 지나간다.
"헉~헉~헉"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좀 전에 봤던 경찰차 들과 119구급차가 회사 정문에 정차되어 있고 주변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뭐지?"
나는 일단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문인식기에 손가락을 올린다. 간만의 차이로 지각을 면했다. 무슨 일인지 구경을 하고 싶지만 더 지체하면 구과장의 갈굼이 길어질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 좀 늦었습니다"
"어~이 전대리 이제 자출 안 하려고 아예 전화도 안 받데?"
"그런 게 아니구요"
"아니긴, 하기 싫음 얘기를 해라~ 뒤에서 딴소리하지 말고~ "
"전대리~ 니 룸메가 강민혁 대리라고 하지 않았나?"
"예 맞는데요 왜요?"
"헐~ 대박!"
"못 봤냐? 걔 좀 전에 실려나가는 거? 심장마비래!"
"예!?"
나의 또 다른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윤채준대리가 묻는다. 그가 맡고 있던 차종의 설계담당이 민혁이었다.
그는 아침에 출근해 EO(Engineering Order :설계변경서) 자료를 요청하려고 양산 설계팀에 전화를 했다가 이 황당한 소식을 접했다. 민혁은 어젯밤에 기숙사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사무실에 엎드린 채 생애 마지막 밤을 보냈다. 아무도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그냥 피곤해서 엎드려 자는 줄로 알았다. 아침에 출근한 동료직원이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그는 그렇게 아무런 도움도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주검으로 변해버렸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야근을 퇴근 후 술과 야식 그리고 니코틴으로 버텨왔다.운동이라고는 쉬는 시간 담배 피우러 가나는 그 짧은 거리를 걷는 것 이외엔 숨쉬기가 전부였고, 키보드 앞에 구부정해진 허리와 움츠러든 어깨는 그의 숨쉬기를 돕지 않았다. 그 생활을 3년 가까이 해오면서 가슴에 알 수 없는 통증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했다.
최근 그 통증이 자주 나타났다. 가끔 방 안에 앉아 같이 야식을 먹다 얼굴을 찡그리며 가슴을 움켜쥐듯 매만지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젯밤 사무실에서 그에게 찾아온 통증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홀로 남겨진 사무실 다들 그렇게 일을 하며 쪽 잠도 자는 것이 예삿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아무도 그의 쪽 잠을 방해하려 하지 않았나 보다. 잠은 집에서 자는 것이다. 회사에서 자는걸 왜 깨워주지 않았을까 아무도...
야간에 사무실을 순찰 도는 경비 아저씨도 불 켜진 설계팀 사무실을 그냥 지나쳤다. 뭐 항상 직원들이 한 두 명씩은 남아서 밤을 지새우다 보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외롭게 홀로 사무실에서 영면(永眠)에 들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의 빈소를 찾았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표정이 없다. 어머니는 동생으로 보이는 어린 여성의 부축을 받고 힘겹게 일어서서 나의 조문을 맞이한다. 얼마나 울었을까 충혈된 눈과 눈가에 흘러내린 눈물자국이 선명하다. 이젠 더 이상 울 힘도 없어 보인다. 넋이 나간 모습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절을 하고 난 후 바라본 영정 사진 속의 그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미소를 짓고 있다. 그도 저런 미소를 짓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저 미소를 사라지게 만든 것일까?
"식사하시겠어요?"
"예 감사합니다."
빈소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래도 그의 빈소를 잠시나마 지켜주고 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빨간 기름 방울이 둥둥 떠있는 소고깃국과 몇 가지 밑반찬이 나왔다. 저녁을 먹지 않고 와서인지 허기가 밀려온다. 미안한 생각 속에서도 숟가락은 밥을 말고 있다.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허기는 채워야 한다. 장례식장 안은 허기를 채우는 식객인지 조문객인지 모를 사람들로 붐빈다. 여기도 돈을 주고 밥을 먹는 식당이랑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카드나 포인트 결재가 아닌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자가 적힌 하얀 봉투에 현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그리고 밥값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여러 사람이 모인다. 마치 친척과 지인들의 만남의 광장처럼 보인다. 빈소 안은 오랜만에 만나는듯한 사람들이 악수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주선해 주는 것인가? 그렇게 인간은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어 희택아 왔어?"
"어 너희들 왔구나 여기 앉아라"
꼬마 근재와 덩치 온수가 찾아왔다. 검은 정장을 받쳐 입은 모습이 마치 꼬마 보스와 보디가드 같은 모습이다. 그들은 자리에 앉고는 소주병을 들어 잔에 붓고는 나에게도 한잔 건넨다.
"참!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루아침에 사람이 사라지다니"
"너희들 봤냐?"
"뭘?"
"영정사진 속 민혁이 얼굴!"
"영정사진은 왜?"
"회사에서도 기숙사에서도 못 봤거든"
"무슨 말이야?"
"그 웃는 표정 말이야"
"..."
"씨발! 이 망할 회사 사람 잡을 줄 알았다"
둘은 슬픔보다는 분노가 가득하다. 회사를 향한 분노는 그를 향한 슬픔을 잊게 한다. 지금은 분노보다는 슬픔을 맞이해야 하는 순간인데도 말이다. 장소와 상황에 맞지 않는 감정은 너무 앞서 가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빠르게 성장해왔다. 현재를 바라보지 않고 미래와 앞만 보고 간다. 지금의 감정과 행복이 아닌 미래의 아직 오지도 올지도 모를 기쁨과 행복을 위해 지금을 내어준다. 민혁이도 아마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현재를 견뎠을 것이다. 그 고통이 크면 클수록 맞이할 미래는 더 행복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원하던 미래는 과거 속에 묻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