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이유

평범한 남자 시즌 2-24 (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터가 좋지 않아! 거기를 벗어나야 해"

"예? 그게 무슨 말이예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자네의 기를 막고 있어”

“그럼 어떻게 해야죠?"

"일단 지금 있는 곳은 안돼, 일터랑 삶터가 너무 가까워 떨어져야 해! 출입문이 동쪽인

집을 찾아! 그럼 무슨 변화가 생길 거야"


답답한 마음에 용하다는 철학관을 찾았다. 도인처럼 하얀 개량 한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머리를 길게 길러 뒤로 묶은 중년의 한 남자가 작고 네모난 밥상 같은 테이블을 앞에 두고 앉아있다. 나는 룸메이트의 민혁의 죽음과 회사에서의 과중된 업무와 힘든 관계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도 정신이 이상해 지거나 아니면 몸이 망가지거나 둘 중 하나는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해왔다. 회사에는 대부분 정신이 이상하거나 아니면 몸이 이상한 두 부류의 사람들만 모여있는 곳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오고 있는 듯 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고 그 불안감은 술로 달래야만 잠에 들수 있었다.

습관처럼 계속되는 야근과 야식과 야음(夜飮)은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지만 하지 않으면 정신이 견디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심신이 미약해질수록 무언가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커진다는 것을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것 같다. 나 또한 지금 그 상황에 놓여있는 듯하다. 이 지독한 중독성 의존을 끊어내야만 한다.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건가요?”

“일단 환경이 바뀌면 변화가 생길 수 있어”

“실은 제가 직장에서 힘든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 생년월일이 어떻게 돼?”


다행히 얼마 구과장의 생일이라 그의 생일을 기억할 수 있었다. 도인은 다시 자신의 앞에 놓인 한자로 적힌 책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 간다. 고개를 빼꼼이 내밀어 그가 적는 것을 쳐다본다.

한자와 한글이 뒤섞여 도식화된 그림 같이 보인다. 그가 설명하기 전까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음… 터만 문제가 아니구만…”

“예?! 그럼?”

“그 자의 사주가 너를 잡아먹는 형국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의 운을 그 자가 가져간다는 뜻이야”

“예?!”


그의 말에 놀란 나는 현재의 나의 상황과 적절히 맞아떨어지는 듯한 그의 말에 믿음이 갈 수 밖에 없다. 그는 양산에서 꽤나 이름난 역술인이다. 꼬치친구인 동구가 소개해준 곳이다. 동구네 집은 오래도록 불교를 믿어온 집안이다.그의 가족은 해마다 신년사주를 보러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최소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해야만 만날 수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사람의 사주팔자에 낀 운을 찾아주고 액운(厄運)을 쫓아주기로 유명하다. 그는 결국 나보고 이사를 가라는 말을 길게 늘여서 30분 동안 얘기하고 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기숙사에 들어오고부터 좋다 할 기억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있었다면 점을 보러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점쟁이나 역술인들은 찾아오는 자들의 심리를 잘 꽤 뚫어보는 심리치료사 가까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불안하고 힘든 심리상태를 잘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직업이니까 말이다. 다만 의학적이 아닌 심령적인 비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 때문에 그것에 대한 인식에 찬반이 나뉜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자도 심리치료사 자격증이 있는게 아닐까?


“일단 지내는 곳을 옮겨봐, 그럼 터 때문에 막혀있던 기운이 풀리면서 변화가 생길거야”

"이사를 가고도 계속 그러면 어쩌죠?"

"그럼 그때 다시 찾아와, 자~ 5만원이야"


시계를 보니 입장한지 30분이 채 못되었다. 5만원이면 그의 시급은 거의 10만원이다. 정말 짭잘한 직업같다. 밖에는 근심이 드리운 적잖은 사람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내가 다시 이곳을 찾아왔을 땐 부적이 쓰거나 굿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을까? 그땐 5만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그렇게 사람의 간절한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번다. 일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장 이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기숙사로 올라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기숙사 주변의 부동산을 검색하고 방을 보기로 결정했다. 풍수지리학적인 요인들은 들어도 모르겠고 일단 민혁의 아픈 기억과 기숙사 아파트의 우울하고 답답한 느낌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저기 출입구가 동쪽인 원룸을 찾고 싶은데요"

"출입구가 동쪽이요?"

“네~”

“나 참! 별 사람 다 보겠네”


부동산 중개인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리고 그가 현재 비어있는 원룸들의 출입구의 동서남북을 기억할리 만무하다. 일단 몇 개 나와 있는 빈 원룸으로 가보자고 한다. 나는 그의 차에 올라타서 이동하는 동안 핸드폰에서 나침반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한다.


"아~ 여긴 출입문이 북쪽이네요"


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원룸 중앙에 서서 스마트폰의 방위 앱을 쳐다보고 말한다. 중개인은 방은 구경도 않고 폰만 들여다보고 말하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다른 곳으로 가보자고 한다.


"여기는 남서쪽이네요"


중개인은 이제 출입문만 열어주고 방안으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나는 다시 앱을 켜서 확인하고 원룸을 나온다. 또 다시 움직인다.


"근데 참 왜 동쪽이어야 하는 거죠?"

"그게 설명하기가 좀..."

"참~ 부동산 일 10년 넘게 하면서 출입구 방향만 보고 집을 찾는 사람은 처음이네요"


나도 처음인건 마찬가지다. 어쩌겠는가 이사를 하는 목적이 주거환경의 개선보다는 심신의 안정을 위한 것이다 보니 미신이라도 믿어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어! 여긴 약간 남쪽으로 치우치긴 했어도 그나마 동쪽이네요"

"그럼 이방으로 하는 건가요?"


나는 그제서야 방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방이 꽤 넓다. 짙은 고동색 장판에 갈색 벽지 그리고 천장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감돈다. 천장에 한 쪽 구석에는 물자국도 보인다. 미닫이 문으로 구분된 주방과 주방과 연결된 작은 베란다에 세탁기와 건조대가 있다.3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앞은 커다란 무덤이 솟아있다.


"저건 뭐예요?"

"저거 무슨 청동기 시대 고분(古墳)이라고 하던데..."

"고분이요?"

“예, 무슨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던데… 근데 뭐 관리하는 사람도 없고 보시다시피 울타리 같은 것도 없어서 사람들이 무덤 위에도 올라가고 그래요”


커다랗게 솟아 오른 여러 개의 무덤들로 보아 과거 영향력 있던 권력자의 가족들이 묻힌 모양이다. 덕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른 골목의 원룸들과는 달리 북쪽으로 탁 트인 전망이 있어 나쁘지 않다. 다만 원룸이 좀 오래되어 벽지나 바닥 그리고 가구들이 색이 바래 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전에 맞벌이하던 신혼부부가 쓰던 방이에요 그래서 침대도 더블이고, 학교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조용하기도 하고, 여기 주변은 학생들보다 출퇴근 직장인들이 더 많은 편이에요, 주차는 여기 앞에 무덤가 주변에 공터 많으니까 거기 하면 되구요"

"여기 얼마예요"

"삼십오! 관리비 3만 원 있고, 전기, 가스비는 별도예요"

"어후~ 비싸네요"

"에이 이 정도면 싼 거죠 여기 신축은 40만원 다 넘어요"

"좀 싸게는 안될까요?"

"그럼 사글세로 해요”

“사글세라면?!”

“1년에 2개월 싸비스, 일시불로 10개월치 내면 돼요"

"음... 그럼 그렇게 할게요, 오늘 바로 입주 가능해요?"

"예?! 오늘요?”

“괜찮죠?”


바로 계약서를 썼다. 빨리 그 기숙사를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그 길로 기숙사로 가서 짐을 쌌다. 짐이라고 해봐야 좁은 방에 있는 옷가지와 이불 그리고 몇 가지 개인 물건들이 전부다. 기숙사에서 차로 15여분 떨어진 곳이다. 15분의 시간 10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이지만 기숙사가 있는 곳과 원룸이 위치한 대학가는 완전 다른 세계였다. 대학가 근처 원룸 촌이라 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바벨(Babel)하우스?! 바벨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한데… 어디서 들었더라…”


이삿짐을 옮기면서 그제서야 입구에 위에 적힌 원룸 건물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귀에 익은 단어이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특이한 건 이 원룸 건물만 유일하게 4층이다. 주변 원룸은 대부분 3층짜리 건물이라 주변에서 가장 높다. 논밭으로 둘러싸인 기숙사 아파트와는 완전히 달라진 주변 환경이 나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


[인간에겐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빅터프랭크 [죽음의 수용소에서] -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사내 도서실에 비치되어 있던 빅터 프랭크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읽었던 문구가 떠오른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인간이 살아갈 이유이다.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비할 바는 아니지만 고통의 크기와 강도는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만약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고통을 겪었다면 지금의 나의 상황은 고민이 대상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항상 현재보다 나은 환경을 꿈꾸며 살고 현재보다 열악해진 환경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빅터 프랭크가 수용소를 벗어날 그날의 기대를 품고 하루하루를 견디었던 것과 같이 나도 지금 그 실락 같은 기대를 믿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왔다. 이로서 나는 변화의 기대를 기대하며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언제까지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 새로 이사 왔나 보네?”

“아…네 안녕하세요”

“난 옆집에 사는 세리라고 해, 가끔 보면 인사나 해요, 뭐 잘 보긴 힘들겠지만”

“아 네~~ 반갑습니다. 전 희택이라고 해요”

“직장인?”

“예 회사 다녀요”

“그래? 그럼 동료들이랑 심심할 때 한 번 놀러와, 그럼 난 먼저 출근 해봐야해서 빠이!”


몸에 달라붙는 짧고 타이트한 붉은 원피스에 검은 가죽재킷을 입은 그녀는 계단을 내려오다 짐을 들고 올라가던 나와 마주쳤다.또각거리는 구두굽 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다. 그녀의 얼굴 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원피스 아래 하얀 허벅지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검은 팬티였다.

나는 흠칫 놀라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Paradise]


그녀가 건네준 명함에는 새까만 바탕에 금색으로 ‘천국’이라는 영어단어만 쓰여있다. 뒷면에는 모서리에 조그맣게 연락처만 적혀있다. 짙은 화장에 노란색에 가깝도록 밝게 염색한 머리, 명함이 아니더라도 한 눈에 봐도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특유의 직업정신 때문일까 낯선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는 말과 태도가 오히려 나에게 편안하게 느껴진다. 보통 한국 여성들은 이런 상황에서 낯선 남자와 대면하면 먼저 말을 걸기는커녕 흘기듯이 쳐다보며 서둘러 그 장소를 피해가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사람과 마주치면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는 것이 바른 생활이라고 배웠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해야 할까? 이제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눈을 마주치지 말고 되도록 빨리 피하여 개인정보와 안전을 지키라는 교과서에 없는 새로운 생활 규범이 정착화 되는 듯 하다. 뭐 타인을 해코지하려 해도 뭘 알아야 하는 거니까? 해코지를 당하지 않으려면 서로 모르면 되는게 맞는 것일 수도 있다.


그녀가 좁은 계단에서 내 옆을 스쳐내려간다. 나는 그녀와 닿지 않으려 이삿짐과 몸을 벽에 바짝 붙인다.

그녀는 야릇한 향수 냄새만 남기고 사라진다.


“삐이빅! 부릉!”


자동차 시동소리에 계단 중간에 있는 창문을 통해 내려다본 그 곳에는 하얀색 BMW 3시리즈 차량이 무덤과 원룸 건물 사이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다. 3층까지 계단으로 짐을 올리느라 진땀을 뺐다. 방안에 짐을 쌓아놓고 베란다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해가 지고 있다. 커다란 고분들이 낮게 기울어진 태양빛을 받아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다.


'내일의 태양은 오늘과 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