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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pr 16. 2020

성장보다 안정이다

21대 총선에 바라보며

   21대 총선이 끝났다. 결과는 여당의 압승(180석/300석)이다. 코로나의 역병 속에서도 이례적으로 높은 투표율(66.2%)을 기록(28년만에 최고)하며 국민들의 정국(政局)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국민은 이제 정치가 나와 무관하다는 생각을 지운 듯 보인다. 지금의 내가 잘살고 못살고는 내 삶의 의지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가 속해있는 정치적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총선 결과를 보면서 옛날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에서 보던 삼국시대의 지도 하나가 떠올랐다. 백제의 전성기 시절의 지도와 총선 결과 지형도가 너무도 닮아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동서의 양대진영은 중앙정부인 한성(서울)을 장악하던 시기와 더불어 가장 강성한 세력을 떨쳤다. 지금은 바로 백제의 부흥기를 보는 듯하다.

21대 총선 결과와 백제의 부흥기

친중과 친북의 역사


  백제는 과거 지리적인 특성으로 황해와 맞닿아 중국과의 해상 교역이 가장 활발했다. 삼국 중에서 가장 빠른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문화와 예술을 가장 화려하게 꽃 피운 국가이다. 그것이 널리 중국과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배경에는 삼국 중에서 가장 넓고 광활한 곡창지대를 가진 지형적인 이점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의식주가 해결되면 그 다음 문화가 번성하기 마련이다. 산으로 뒤덮인 신라와 척박하고 추운 북쪽의 동토(凍土)를 가진 고구려와는 달리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다. 태백산맥과 소맥산맥으로 둘러싸인 신라와는 달리 북쪽으로 뚫린 평탄한 길(경기도)은 고구려와의 교류를 활발하게 일으켰을 것이다. 친중과 친북의 역사는 과거부터 시작되었다.


삼국 시대의 부활


 동서로 갈라 여야로 갈라 싸움은 똑같고 사람만 달라 ~~♬ 

                                                                                 - 싸이 환희 중에서 -  
                                                                                

  싸이의 환희 랩 가사 속의 내용이 이렇게 와 닿을 수가 없다. 남북으로 둘로 갈라진 분단국가로 보이지만 사실 이곳은 삼국시대로 되돌아 갔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좁디좁은 한반도에서도 남북과 동서가 나뉘어 있다. 남한도 몸은 붙어있지만 마음과 정신은 분리되어 있다. 외세(나당 연합)의 개입을 통한 삼국의 무력통일 후유증이 적지 않은 듯 보인다. 


  신라는 애초에 삼국을 통일할 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다. 능력도 안 되는 녀석이 동네에서 힘센 형님을 끌어들여 뒤를 봐주게 하고 허울만 좋은 짱이 된 것이다. 그런 형님이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줄 리 만무하다. 당나라는 옛 고구려와 백제 땅에 여러 개의 도독부(都督府)를 설치하고 한반도를 삼키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때부터 한반도는 중국의 속국처럼 그 독립성을 잃어가는 듯 보였다. 

남북 분단의 시작 (발해와 신라)

   통일신라는 명목상의 통일일 뿐 사실상 북쪽의 한민족을 품지 못한 불완전한 통일이었으며 흩어진 북쪽의 한민족은 발해라는 나라를 만들었지만 그곳은 우리와 중국의 역사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변방의 역사가 되었다. 물론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역사왜곡 등으로 그 중요성이 재 부각되고 있다. 통일신라와 발해는 한반도에서 남북의 갈라짐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역사는 그렇게 또 반복된 것이다. 


  성장에 굶주린 보수


   신라(경상도)의 보수진영은 과거 한국의 현대사를 이끌어온 주역들의 텃밭이다. 경상도는 지리적 여건 때문인지 척박함과 곤궁함을 이겨낸 처절하리만큼 강인한 성향을 보인다. '안되면 되게 하라' 그 무대포적인 성향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빠른 경제 성장을 주도했다. 적지 않은 희생과 불평등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국가의 부와 위상이 올라온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장은 편중되었다. 권력의 지역사랑은 경제와 손잡게 마련이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 과정에서 그 발전의 비중이 동남쪽으로 치중되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1968)을 시작으로 수많은 사회간접자본이 동남쪽으로 치중되었다. 기업과 공장도 같이 몰려들어 많은 부가 동쪽으로 치우치게 되었다. 나 또한 경상도 출신이지만 여태껏 여행을 제외하고는 일이나 생계를 위해 전라도를 갈 일이 전혀 없을 정도로 같은 한국 땅이지만 나의 삶과는 동떨어진 곳이었다. 

심판보다 안정

  안정을 원하는 진보 


   "심판보다 안정을 택했다" 이번 총선의 결과를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어쩌면 '코로나 19' 사태가 궁지로 몰렸던 진보 진영에게는 구세주가 된 것인지 모른다. 죽음 앞에선 누구나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저성장의 시대는 정권의 문제가 아닌 전 시대적인 문제이며 이제는 부의 축적보다는 안전과 안정의 안분지족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바이러스의 재앙 앞에서 우리가 깨달은 것은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죽음은 공평하다는 것이다. 격리되어 있는 무료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작은 것에 감사하고 가족과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지며 그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먼지와 매연으로 가려진 푸른 하늘이 반갑고 그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이 궁핍한 여유가 마냥 싫지만은 않다.

코로나로 지친 의료진

국민들은 지쳤다.


  역병의 혼란을 이겨내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대한민국은 또다시 정권 심판이라는 피바람으로 다시 또 혼란을 맞이하고 싶진 않은 모양이다. 국민들은 지쳤다. 경기침체와 역병으로 피폐해진 국민은 그 속에서 나름의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환경이 바뀌고 바뀐 상황이 지속되면 인간은 그 속에서 적응해나가기 마련이다. 왜 먹고 살기 힘들어지지? 하며 정치인과 세상을 욕하다가도 모두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속되면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시대의 흐름을 정권 교체로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전 세계가 저성장과 바이러스로 침체와 고통 속에 빠져든 이 시점에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것이다. 또 집안 싸움만 거세질 뿐이다. 궁핍할수록 서로를 위해 주고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른다. 


  세계는 저성장과 역병의 위기를 겪으면서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그 변화는 외형적인 것뿐만이 아닌 개개인 내면의 가치관과 인식의 변화도 같이 할 것임이 분명하다. 


   이제 인류는 내적 성장이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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