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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an 04. 2021

2021년을 맞이하며

2020년을 보내며

 또 한 해가 지나갔다.


 멜버른(Melbourne) 로드트립을 마지막으로 19년을 마무리하고 교회의 예배당에서 맞이한 2020년이었다. 고대했던 연말 브리즈번 여행은 결국 재 확산되는 코로나 19로 인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되돌아본다.


  호주에서의 생활이 1년이 넘어가며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작년 연말 번진 산불의 여파가 채 식기도 전에 다시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가 호주에도 엄습했고 이곳의 일상은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드라이버가 되다.

 

  바이러스가 퍼지며 일상이 무너졌다. 락다운이 실시되며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일이 사라지고 생계를 위해 시작한 택시는 나의 생활의 밤낮을 바꾸어 놓았다. 택시를 운행하며 늦은 밤 시드니의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택시를 하며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코로나 19로 수많은 워킹과 학생들이 호주를 떠나 한국으로 돌았갔다. 많은 사람들을 공항으로 실어 나르며 생활을 위한 돈을 벌었다. 위기 속에도 기회가 있음을 깨닫게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락다운으로 짐(Gym)과 수영장이 폐쇄되고 집에서 시작한 줄넘기는 또 다른 운동겸 취미 생활을 만들었다. 

Skipping rope

 

  요리사가 되다


  언텍트 시대가 도래하며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요리를 만들어 먹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전부터 비싼 외식비 때문에 외식을 잘하지 않았지만 코로나 19로 본격적인 요리의 세계로 입문하기 시작했다. 매일 해 먹는 음식은 여러 가지 도전을 시도케 하였고 새로운 맛과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들이 아쉬워 유튜버를 해볼까 수많은 영상을 찍기도 했지만 유튜버는 찍는 것보다 편집과 업로딩이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포기해버렸다. 무엇보다 이것이 내가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끔 SNS에나 올리며 요리 실력을 자랑하는 것에 그쳤다. 


  요리하며 그 음식들을 사는 셰어생들과 나누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한 음식을 다른 이와 나눠먹으면 기쁨이 배가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FOOD MAKER


  글 짓는 목수로 돌아가다.


  렌터카를 빌려 콜택시를 하며 호주의 도로 상황과 운전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기동력이 업그레이드된 나는 일을 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되었고 다시 목수일을 시작했다. 주중엔 목수일을 주말엔 콜택시와 딜리버리를 병행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워킹과 학생들이 떠나간 호주는 사람이 귀해졌다. 그만큼 사람이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다. 빈집들도 넘쳐나고 렌트비와 셰어 비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으면 사람이 귀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Shopfiting (West Ryde)

 샵 피팅(Shopfiting : 실내 인테리어)을 하며 다시 목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땀 흘리며 일하며 다시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낮에는 망치를 밤에는 펜을 드는 일상을 시작했다.


읽고 쓰고 일하며


  팔공 남자를 마무리하고 시즌 2를 쓰기 시작했다. 일과 일상에 치여 매일 쓰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썼다. 그 시즌 2도 어느덧 마무리로 향해가고 있다. 또 다른 무언가를 쓸것이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시드니의 곳곳에 위치한 공원을 찾아다니며 자연 속에서 사색하며 글을 썼던 기억들이 한 가득이다.

Writing (Parramatta Park)

  전자책을 정기 구독하며 독서를 병행했다. 오디오북을 이용해서 차 안에서 일하는 도중 틈틈이 독서를 했다. 작년처럼 서평을 많이 적진 못한 것이 좀 아쉽다. 일하며 읽고 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행복은 가까이에


 시드니의 공원들을 찾아다녔다. 시드니의 곳곳에 자리한 한적하고 드넓은 공원은 산책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를 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하얀 줄기와 가지의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즐비한 공원에서 커피 한잔과 김밥 한 줄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목표를 이루고 물질적 풍족이 가져오는 행복은 일시적일 뿐이지만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이 쌓여 행복한 삶을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관계 속으로


"작가가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사람들도 그가 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중에서 -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사색하며 혼자 하는 시간에 익숙해져 갔다. 굳이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관계 속으로 들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혼자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잊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멀어지는 것은 지금은 과거의 기억들과 상상으로 글을 채워가고 있지만 나중에는 그것들이 사라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성 있는 이야기는 진정성 있는 삶 속에서 스며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과거 헤밍웨이나 톨스토이 같은 위대한 작가들은 그들의 파란만장 삶 속에서 글감을 찾아내었고 그것들이 전 세계의 사람들의 공감과 감동을 선사했다.

Philippine sisters

  주변에 사람들에게 조금씩 관심을 가지시 시작했다. 진심이 우러난 타인에 대한 관심은 그 사람의 관심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그런 관심들이 쌓이고 쌓여 세상이 인간다워진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중에서 -


  과거 이해관계 섞인 피상적인 관계들을 부여잡고 스트레스받던 때는 그런 관계들이 삶을 좀 먹고 있었지만 벗어날 수 없기에 버텨내야만 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 관계에 지쳐 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고통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 번뇌가 생기는 것도 맞지만 관계 속에서 사랑도 싹트게 마련이다. 무미건조한 무관심의 세계보다는 희로애락 (喜怒哀樂)이 있는 관심 있는 세계가 삶을 풍족하게 하고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식구들

   내 주변에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속적인 대화와 만남을 가지면 닫혀있던 사람들도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교회의 목장 식구들과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관심이 지속될수록 관계는 돈독해졌고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가진 것이 많을 수록 욕심도 많아진다.


  올 해도 두 번의 이사를 했다. 호주 와서 벌써 여섯 번째다. 한 곳에 정주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건 모두 내 의지와는 다른 무언가에 의해서였다. 이사를 할 때마다 삶이 무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호주에 왔을 때 하나의 캐리어와 백팩이었던 짐들이 어느새 한 차도 모자랄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처음엔 없으니 필요를 느끼지 못하던 것들이 생겨나니 필요가 생겨졌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평소 필요 없는 것들을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미련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그렇게 물질에 익숙해져 쌓아 두며 무거워진 짐 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내가 가진 것만큼...


아듀(adieu) 2020, 감사(thanks) 2021!~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의 재확산으로 비록 화려하거나 의미 있는 곳이 아닌 조용한 곳에서 맞이하고 있지만 다가올 새해에 대한 부푼 기대감은 바이러스의 두려움보다 크다. 또 어떤 일들과 인연 그리고 어떤 시련과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나는 다시 또 기억하고 성장할 것을 믿는다. 요즘 매일 식구들과 오감사(five thanks) 일기를 나누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들을 지워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2021년은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을 지워내고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Royal Nation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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