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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pr 20. 2020

남이 가족이 되는 방법

팔공 남자 시즌 2-28

"아 머리야~"


  간밤에 먹은 술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C는 돌아오지 않았다. 미숙과의 원나잇이 성공한 모양이다. 냉장고를 열어 생수 한 통을 다 들이켰다. 쓰린 속을 잠재우기 위해 찬장에 있는 라면을 꺼내 뜨근한 국물로 속을 푼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술기운도 다 씻겨 내려간 기분이다.


"아 이제 좀 살겠네"


 C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문자를 남겨놓고 원룸 방을 나선다. 수많은 원룸 건물들이 골목 양쪽으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 작은 건물 한층에만 원룸이 4~5개씩이 있다. 문 옆에 문이 다닥다닥 붙어 공간 효율성을 과도하게 극대화 한 느낌이다. 알을 낳기 위해 좁디좁은 철창에 갇힌 닭들이 사는 축사 같다고나 할까? 인간도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하는 공간 속에 갇혀 무언가를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 C발! 이건 또 뭐꼬?"


  간밤에 골목에 세워둔 내 차 보닛 위에 어떤 놈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화액과 뒤섞인 찌짐 반죽을 쏟아냈다. 차에서 고약한 냄새가 올라온다. 차를 씻어내려 C 녀석의 원룸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원룸 비번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비번을 여러 번 누르는 모습을 옆 원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젊은 여성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흘겨본다.


'아~ 이 망할 기억력!'


  속으로 혼자 중얼거린다. C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다. 포기다. 그냥 차에 시동을 걸고 골목을 빠져나간다.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내 차를 쳐다보며 얼굴을 찌푸리며 손으로 코와 입을 막는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골목을 빠져나가 근처 가까운 세차장을 찾았다. 일요일 아침 세차를 하려는 사람들로 셀프 세차장이 북적인다.


   샤워 건으로 물을 분사하고 솔 막대기에 거품을 묻혀 말라가고 있던 찌짐 반죽들을 씻어낸다. 기왕 찾은 세차장 실내 세차까지 하려 차문을 다 열고 진공청소기에 동전을 넣으려는 찰나였다.


"저기요!"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낸 빨강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하고 삼킨다. 그녀는 셀프 세차를 해본 적이 없는지 나에게 샤워 건을 어떻게 쓰는지 물어온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그녀의 원피스와 깔맞춤이라도 한 듯한 빨간 머스텡이 그 형롱한 광택을 잃고 먼지에 뒤덮여 있다.


"교외로 나들이 갔다가 먼지를 뒤집어썼네요, 괜찮으심 저거 어떻게 쓰는지 좀 알려주실래요?"

"아~ 네 뭐 그러죠"


  그녀의 애마 옆으로 가서 샤워 건 작동 기계 앞에 서서 그녀에서 설명을 한다. 주변에 세차를 나온 수컷 승냥이들의 부러운 시선이 느껴진다.


"아~악! 뭐야 자기야! 어딜 쏘는 거야!"

"앗~ 미안 자기야!"


  옆 칸에 커플로 보이는 남녀는 협심하여 세차를 하고 있다. 남자가 쏜 샤워 건에 맞은 여자가 순간 비명을 지르며 남자를 쏘아본다. 그는 머스텡 걸(Girl)에 한 눈을 팔다 자신의 여자를 물에 젖은 생쥐 꼴로 만든 모양이다.


"이건 500원 동전을 넣으시면 작동하고요, 이 버튼으로 우선 전체적인 샤워를 하고...."


  나는 세상 다 가진 다정한 남자가 되어 그녀에서 혼신을 다해 설명한다. 설명하는 중간중간 그녀의 깊은 가슴골로 시선이 옮겨가는 나 자신이 부끄럽지만 나도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다. 수컷의 본능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작동하나 보다. 나는 설명도 모자라 직접 나의 오백 원을 투하하고 시범동작까지 선보인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군요~ 정말 고마워요! 이제 제가 해볼게요"

"예 별말씀을..."


  아쉬움을 뒤로 한채 내 차로 돌아간다. 내가 퇴각하자 다른 승냥이들이 기회를 노리려는 듯 그녀의 행동을 예의 주시한다. 무슨 세렝게티 초원의 하이에나들 속에 암컷 가젤 한 마리 같다고나 할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실내 세차를 마무리하고 세차장을 빠져나갈 때쯤 또 다른 하이에나가 자신의 차는 내버려 두고 가젤 옆에 붙어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 어디 갔지?"


  지갑이 사라졌다. 차 안 콘솔박스 안에 놓아두었던 지갑이 없어졌다. 혹시나 해서 가던 차를 세워 차 안과 가방도 모두 뒤졌지만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분명 세차장에서 벌어진 일임이 틀림없다. 온갖 생각들이 밀려온다. 차문을 열어놓은 사이 머스탱 걸에게 한 눈이 팔려 내차에 누가 접근하는지도 몰랐다. 순간 미녀 사기절도단 추리 소설 시나리오가 떠오르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아침부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 아버지~ 저의 죄가 무엇이온데 이리 고통을 주시나이까?'


  다시 교회 예배당을 찾았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내가 회계하지 않음으로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 손 모아 기도를 해본다. 찬양과 기도를 하고 나니 치밀어 오르던 분노가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오! 희택 형제님 또 오셨네요! 전 다시 오실 줄 알았어요"


   안 에스더(시즌2-22 참조), 그녀가 또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이제 구면이라고 자연스럽게 나의 팔을 잡아당긴다. 그녀는 아까부터 뒤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이번엔 내가 가젤이 되었다. 뭐 결국엔 하이에나와 가젤의 입장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


"밥 먹고 가야죠"

"괜찮아요"

"오늘 특식인데"

"특식이요?!"


  또 넘어가고 말았다. 예배가 끝나고 식당은 교인들로 북적인다. 그녀는 소몰이하듯 나를 지하식당으로 몰아간다. 그녀의 말대로 산해진미(山海珍味)까진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음식들이 군침을 돌게 한다.


"오늘 무슨 날인가요?"

"예 예수님이 살아 돌아오신 날이죠 하하"

"예?!"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 날을 기뻐하며 음식을 나눈다. 그 죽은 자가 베풀었던 은혜를 그들도 따라 하려는 듯 보인다. 그가 했던 것을 따라 하는 것이 그들이 신앙을 유지하는 방법인 듯 보인다.


  마더 테레사의 "먼저 먹이라"라가 떠오른다. 자고로 음식은 인간을 모으고 마음을 전하는 가장 빠르고 순수한 방법이다. 음식에 독을 넣지 않는 이상 음식을 같이 한다는 것은 식구(食口)가 됨을 의미한다. 바로 가족이라는 뜻이다. 남이 가족이 되는 방법이 바로 음식을 같이 하는 것이다.


  예수든 부처든 뭐든 간에 일단 먹이고 얘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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