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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31. 2020

사람과 사람이 멀어진다

호주에서 코로나19 겪으며...

"콧물이 코로나 오면 코로난가요?"


   웃픈 아재 개그로 글을 시작해본다. 코를 훔치는 소리에도 지하철 안의 모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사실 적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 관련 기사나 글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서 다들 조회수에 굶주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역시 코로나 관련 주제는 세간에 관심을 끌기 딱 좋은 시기이다. 여기 브런치에도 연일 코로나 관련 글들로 도배가 되고 있다. 그래서 나도 써본다. 조회수 가 오르려나... 나도 어쩔 수 없는 똑같은 인간이다.

Scott John Morrison

   이곳 호주도 연일 스콧 모리슨(Scott John Morrison : 호주 총리)의 대국민 발표로 코로나의 위세를 느낄 수 있다. 매주 발표하는 호주 정부의 역병 대응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앙의 시작 - 불길 속으로


  호주에 온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호주의 재앙은 내가 온 시기와 때맞춰 따라오는 듯했다.(내가 재앙을 몰고 다니나? ^^;;) 내가 오고 여름이 시작되었다. 극심한 폭염 속에 호주 대륙이 바짝바짝 말라가기 시작했다.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었다. 호주 대륙의 물기를 모두 빨아올릴듯한 폭염 속에 물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수도 공급이 끊기는 지역이 늘어가고 정부는 비상경보를 발령한다. 호주의 맑은 하늘과 공기에 매료되어 여기가 바로 청정지역이구나하던 기분도 오래가지 않았다. 


   바짝 바른 숲과 초원은 불쏘시개가 되었다. 화마가 호주를 뒤덮었고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화산재처럼 산불에 타고 날아온 나무 재가 나부끼고 있었다. 집 밖은 항상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산불은 그칠 줄 모르고 퍼져갔고 불길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호주 정부도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군대가 동원되고 해외에서 소방지원까지 오고 난리법석도 아니었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의 새해를 알리는 불꽃축제도 취소되었다. 불이란 단어는 입에도 담기 힘들 정도로 민감한 말이 되어버렸다. 


 불길 속에 휩싸인 호주대륙


재앙의 연속 - 역병의 착륙


   다 타버린 호주 대륙에 또다시 재앙이 닥쳤다. 코로나님께서 어김없이 호주 대륙에도 착륙하셨다. 착륙인지 입항인지 알 수도 없다. 하여튼 태평양인지 인도양인지 모를 그 넓은 바다를 가뿐히 건너오셨고 육지에 발을 디딘 바이러스는 번식을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란 말이 호주와 제법 잘 어울린다. 재앙은 계속된다. 전 세계의 대유행은 여기도 피해 갈 수 없나 보다. 호주는 유행에 좀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좀 뒤에 왔을 뿐 오지 않는건 아니다. 여기는 이제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세간에는 호주는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추위 속에서 더 맹렬한 번식을 한다는 신빙성 있는 말인지 모를 소문들이 떠돌고 있었고 다들 그렇게 믿었다. 

호주 코로나-19 확진자 현황 (3/31)

  3월 31일 기준으로 4,557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호주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난주(3/26~)부터 음식점, 펍, 클럽, 카지노, 실내체육관등 등 대중이용시설들에 대한 대대적인 셧다운을 선포했다. 거리가 한산하다. 요즘 거리에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라곤 배달하는 우버 잇츠(Uber Eats) 같은 배달 자전거와 오토바이뿐이다. 음식점은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기 때문에 다들 가택연금상태로 배달음식만 시켜먹는 모양이다. 어제는(3/29) 사람 간 모임(Public gathering)에 대해 2명 이상 모일 수 없도록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가족 및 공동주거인 제외) 나의 유일한 낙이었던 수영장도 셧다운을 벗어날 수 없었다. 물 속은 안전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본다. 통제의 끝은 어디일까?

수영장 셧다운 ㅜㅜ


모라토리엄(Moratorium) 선언


  호주 정부의 셧다운 정책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으로 내몰렸다. 문제는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악명 높은 호주 대도시의 높은 주거비용(렌트비, 셰어 비)으로 호주의 시민이나 영주권자가 아닌 워킹이나 학생 등의 수많은 이민자들이 거리로 내몰릴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일부 한국인은 이런 상황을 미리 파악하고 떠난 이들도 적지 않다.  

  

  호주의 의료체계는 미국 못지않게 열악하다.  만약 이민자로 여기서 코로나에 걸리게 된다면 어떠한 조치도 받지 못하고 자가 격리될 것이 뻔하다. 아니 같은 주거 공간에 있는 사람들(셰어, 렌트)에 의해 강제 퇴거당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코로나에 감염되는 순간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웃긴 건 호주 정부가 코로나 확진자가 밖에서 돌아다닐시 적발되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발표를 내놓아서 이건 뭐 병에 걸린 것도 억울한데 징역살이까지 해야 될 판이다.


  그래서일까 호주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임차인(세입자)에게 강제퇴거를 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다. 즉 렌트비(월세)를 내지 않아도 쫓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다소 황당한 일이지만 호주 정부 입장에서는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퍼뜨릴 바이러스가 더 걱정인 모양이다. 가택연금의 무료화를 실시했다. 물론 정부의 취지는 우린 줄 돈 없으니 임대인(집주인)과 임차인이 잘 상의해서 해결책(유예 혹은 할인)을 마련하라는 무책임한 태도이다. 


  나 또한 일거리가 줄어 수입이 바닥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집주인과 협의를 통해 셰어비를 인하했다. 다행히 관대한 집주인을 만나 한숨 놓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 이제는 하늘길도 막혀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권은 이미 동이 났고 앞으로 또 언제 귀국행 항공편이 편성될지도 미지수이다. 


사재기와 여가생활 별개 (좌: 호주마트 진열대, 우: 시드니 본다이비치)

오지(Aussi) 애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호주 정부의 이런 강경책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반응은  가지로 나뉜다하나는 '극성나머지 하나는 '태연'이다이런 보이지 않는 재앙 속에서는 태연보다는 극성이 낫다역병의 발원지답게 이곳 중국인들의 반응이 제일 빠르다그들은 일찌감치 생필품 사재기와 마스크 공수 등 전시체제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 외 다른 동양인(한국일본대만베트남 등)들도  대오에 합류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유독 오지(Aussi: 현지 호주인들을 부르는 말) 사람들은 달라 보였다. 유럽(영국)에서 넘어온 핏줄을 이어받아선지 초반 유럽의 태연한 일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자가 격리 독려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 감염보다도 비타민D 합성이 더 중요해 보인다. 수많은 오지 사람들이 해변에서 몰려들어 평상시와 다름없는 태연한 모습이다. 오히려 마스크를 낀 동양인들을 손가락질하며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내비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가 있지 마스크는 자신의 안전인 동시에 타인에 대한 배려인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이 멀어진다.


   며칠 전 교회의 목장 모임을 온라인 단체 화상 미팅으로 대체했다. 교회의 예배당도 이미 셧다운에 돌입했고 모든 예배가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교인들 간의 만남도 핸드폰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이어지기 시작했다. 격리된 생활이 일상화될수록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체온을 느끼는 일은 줄어들 것이고 일상화는 정상화로 바뀌어 갈 것이다. 역병이 사람들의 행동과 생활습관을 바꾸어 놓고 있다. 

온라인 만남의 일상화

   지금은 내가 아닌 타인은 바이러스로 간주된다. 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 간 전파로 전염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간의 교류가 사라지게 된다. 오프라인의 일상은 더 빠른 속도로 온라인으로 옮겨갈지도 모른다. 집으로 숨어든 사람들은 우버 잇츠(Uber Eats)를 시켜먹으며 넷플릭스(Netflix)를 시청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 역병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이 역병이 우리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변화는 사람과 사람이 더 멀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인류는 통제할 수 재앙 앞에 다시 또다시 심판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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