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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pr 25. 2020

삶을 대하는 가장 올바른 자세

팔공 남자 시즌 2-29

“哇! 今天我们有大饱口福了呀”(와! 오늘 우리 먹을 복이 터졌는데)

“真的!紫菜包饭也有,这我最喜欢吃的"(정말! 김밥도 있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这大叔怎么在我们的桌子上吃饭呢?”(이 아저씨 왜 우리 자리에서 밥 먹고 있는 거야?) 

“我也不认得,我也第一次见到他呀,安姐带过来的" (나도 몰라 나도 처음 보는데, 안 에스더 언니가 데리고 왔어)

"我会听懂~”(다 알아들어요)

"헐!"

"你...你是中国人?” (다... 당신은 중국사람이에요?)

"我不是,我是韩国人"(아니 난 한국사람인데)

"에?! 정말여? 즁궁말 자라시네요"


  내 앞에 앉은 앳된 모습의 여학생 둘은 내가 당연히 못 알아들을 줄 알았나 보다. 뒤에서 음식을 담아오던 그녀가 내가 중국 학생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말한다.


"와~ 희택 씨 중국말도 할 줄 알아요?"

"예 조금요"

"와 대단하네요. 얘네들은 저희 목장 아이들이에요 귀엽죠? 여기 대학교 다니는 중국 유학생인데... 제가 영대 앞에서 전도했어요 서로 인사해요"

"你好~ 我叫貂蝉,我们是嶺南大學留学生”(안녕하세요 저는 띠아오챤이예요 우리는 영남대 유학생이에요)

“你好~ 我是孙香,你在哪儿学中文的呀?”(안녕하세요 저는 쑨샹이에요)

“我也以前在中国留学过?”(나도 이전에 중국에서 유학했어)

“真的吗? 在哪儿?”(정말요? 어디서요?)

“武汉”(우한)

"헉!"


  띠아오챤이 움찔하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안 에스더는 옆에서 뭔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신기한 듯 우리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她是武汉来的 我是北京人”(얘는 우한에서 왔고, 전 베이징 사람이에요)

“武汉? 真的吗?” (우한? 정말?)

    

  띠아오챤은 아직까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만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둘의 중국어 발음이 완전히 다르다. 베이징은 북방이고 우한은 남방에 속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중국의 보통화(표준어) 정책으로 젊은 사람들은 다들 보통화를 구사할 줄 알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자기네 고향 사람들과 이야기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물론 베이징은 수도이다 보니 방송매체에 자주 노출되어 보편적으로 많이들 알아듣지만 우한은 좀 특색 있는 억양과 발음을 가지고 있어 외지인들은 좀처럼 알아듣기 쉽지 않다. 




 처음 우한에 도착했을 때가 기억난다. 


  당시 나의 중국어는 고급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한 수준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꽤나 괜찮은 중국어 발음 때문에 처음 만나는 중국인들이 한국인인 줄 알고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시도때도 없이 중국어 회화교재의 MP3 파일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다닌 보람이 있었다. 아기들이 매일 엄마의 말을 들으며 따라하듯 나의 발음은 MP3 속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국인의 발음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 발음은 권설음(捲舌音:혀끝을 윗잇몸 또는 경구개 쪽으로 말아 올리면서 내는 소리)이 많이 섞인 중국의 북방 언어와 가까웠다. 처음에 그 발음을 구사하려 어찌나 혀를 말아댔던지 나중엔 혀에서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 입안에 알사탕이 하나 들어있는 듯한 발음을 구사하기까진 지겨운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나의 노력이 여기선 통하지 않는다.


"워야오취후화쯍쉬판따쉐 我要去华中师范大学”(화중사범대를 가려는데요)

“서머? 什么”(뭐라고?)


  혀를 힘들게 말아 구현한 나의 완벽한 발음을 알아듣지 못한다. 몇 번을 반복해서 물었지만 택시기사의 고개를 갸웃거리며 "션머"(什么)도 아닌 '서머'를 외쳐댄다. 이곳은 권설음이 사라진 곳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혀를 말아 올리며 알사탕을 머금은 발음을 하는 사람은 없다.

  



"으째 못 보던 사람이오"

"어! 어서 와요 최 씨 아주머니!"


   말투가 낯설다. 그녀는 분명 연변에서 온 조선족일 것이다. 음식이 한가득 담긴 접시를 내 옆자리에 놓고 앉는다. 이윽고 그녀의 옆에는 딸로 보이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딸이 같이 자리한다. 에스더는 그녀에게 나를 소개하고는 중국말을 할 줄 안다는 말까지 덤으로 전달한다.


"중국말할 줄 아라요?"

"예 조금"

"이야~ 잘 됐소 여기 완전 중국 목장인데"

"我听他说话,他说得很有地道”(들어봤는데, 중국어 정말 잘하는 거 같아요) 

“기래?”


  앞에 있던 쑨샹이 말을 거든다. 그녀의 말대로 안 에스더의 교회 목장 모임 멤버들은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일부러 중국 사람들만 모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이민자나 외국인들을 도맡아 목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그녀가 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놈의 중국의 인연은 어딜 가나 끊기질 않는구나~' 


"하나님께서 희택 씨를 우리에게 보내셨나 봐요 하하하 많이 들어요"

"헐... 우걱우걱"

"맛있게들 들고 계세요? 제가 좀 늦었네요"

"어 왔어 자기야~"

"어~ 안녕하세요 희택 형제님 맞으시죠? 김요한입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환영해요 저희 교회에 오신걸"


  또 다른 낯선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뜯고 있던 닭다리를 입에 물고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반듯한 모습의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손을 내민다. 닭다리를 들고 있던 기름 묻은 손을 바지춤에 닦고는 그의 손을 잡는다. 안 에스더의 반응으로 보아 그녀의 남자인 듯 보인다. 둘은 얼마 전에 약혼한 사이라고 한다. 


'역시 마음씨 고운 여자는 임자가 있구먼'


  둘은 이 교회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오다. 그의 끈질긴 구애 끝에 그녀의 결혼 승낙을 얻어냈다고 한다. 큰 키에 준수한 외모, 그리고 영남대 근처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장이다. 그의 잘생긴 외모 때문에 그를 찾는 여대생 손님들이 끊이질 않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때문에 일부로 교회에 나오는 몇몇 여대생들도 있을 정도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에게 크게 꿀릴 게 전혀 없어 보이는데 그녀에게 여러 번 딱지를 맞았다는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다들 그의 농담 섞인 짧은 연애스토리를 들으며 재미있어한다.  그녀는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상황을 종료시키려 하는 듯하다. 그의 얘기를 듣고 나니 그녀가 더 궁금해진다. 단순히 그녀의 눈이 높아서 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그녀만의 매력이 있는 것일까? 호기심이 커질수록 관심도 커지기 마련이다. 


"에스더 집사님 눈이 많이 높으신가 봐요?"

"아?! 아녜요 자기는 왜 그런 얘기를 해서는..."

"언니 얼굴이 빨개졌어요"

"하하하"

"하하하"

  

  안 에스더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의 희생으로 다들 웃음꽃이 피었다. 다들 모처럼의 진수성찬과 새로운 식구의 추가로 기분이 들떠 보인다. 나 또한 그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맛있는 음식을 같이 하니 아침부터 있었던 언짢은 일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비 온 뒤 하늘이 개이듯이 삶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연속이다. 그러니까 나쁜 일이 생겼다고 괴로움에 좌절할 필요도 없고 좋은 일이 생겼다고 그 행복이 영원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냥 매 순간에 충실하며 그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삶을 대하는 가장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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