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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y 12. 2020

모두가 웃을 수 없는 곳

팔공 남자 시즌 2-30

"어이~ 전대리 퇴근 하자!"

"아직 견적 작성할게 많아서요"

"아직 다 못했나? 아놔~ 너 나랑 라이딩하기 싫어서 일부러 일 늦게 하는 거 아니제?"

"..."

"난 먼저 간다. 낼 보더라고 참 글고 중국공장 케파분석 자료 낼까지 고객한테 보내야는거 알제?"

"네..."

"차장님 먼저 가볼게요"

"어? 어..."


  구 과장은 내가 그와 같이 퇴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면서 던지는 그의 말이 야속하게만 들릴 뿐이다. 그는 사무용 노트북 전원을 끄고 라이딩용 쫄바지와 클릭 슈즈를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잠시 뒤 그는 '또각또각' 클릭 슈즈와 바닥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마치 현역 사이클 선수처럼 나타나더니 이내 사무실을 가로질러 퇴장한다. 남아있는 팀원들은 멀어져 가는 그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전대리 CF 차종 입찰 견적은 다 돼가나?"

"예 지금 하고 있는 중입니다."

"구 과장은 요즘 무슨 업무하노?"


   사실 나도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최근 대부분 신차종의 제품가 및 투자비 견적은 내가 다 도맡아 하고 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려 그와 되도록 말 섞거나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괜히 그의 심경을 건들려 감당하기 힘든 갈굼을 당하고 싶지 않다. 그의 갈굼은 순식간에 나의 멘털을 붕괴시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요즘 일을 하다 가끔씩 훔쳐본 그의 컴퓨터 모니터엔 영어로 도배된 해외직구 사이트 화면이 띄워져 있고 자전거 관련 용품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오예! 득템! 전대리 니도 하나 같이 구매할래?" 


   가끔씩 가성비 좋은 물건을 찾았는지 조용히 탄성을 내뱉으며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결재한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공동구매를 권유한다. 그는 정말 자전거 마니아가 되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아예 모니터에 보안필름을 씌워 옆에서 보면 뭘 하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그가 뚫어지게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다 지갑을 꺼내면 또 득템을 했구나 하는 짐작만 할 뿐이다. 


"전대리 요즘 힘들지?"

"아닙니다. 뭐 다들 고생하는데요 뭐"

"구과장님 요즘 일 안 하시지?"

"..."

"전대리가 좀 이해해"

"무슨 말인지?"


  미주 담당인 윤대리와 해가 저문 등나무 휴게소 서서 자판기 커피와 구름과자의 나눠 피며 머리를 식히고 있다. 그는 나의 어깨를 한 번 다독이며 뭔가 아는 듯한 표정으로 얘기한다. 그리고 주변의 잠시 두리번거리고는 얘기한다.


"구과장님 자전거에 집착하는 게 다 이유가 있어"

"예?"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구 과장은 결혼 6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2세가 없다. 딩크족이 아니다. 간절히 원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케이스다. 부부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말 못 할 그들만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의 아내는 두 번의 유산을 경험했고 최근 또 한 번의 사산(死産)을 겪었다고 한다. 사산 이후에 그의 아내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중국 출장길에 올랐을 때 아내는 자살기도를 했고 다행히 때마침 방문한 장모가 그녀를 발견해서 병원으로 옮겨 생명을 건졌다. 내가 입사 전 구과장은 넘쳐나는 일 때문에 밤낮없이 회사에 남아 일을 했다고 한다. 그 일을 겪고 난 후부터 그는 칼퇴근을 시작했고 한동안 중국 출장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처지를 잘 아는 최부장과 주차장은 그에게 잔업과 출장을 강요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중국 파트의 인원 충원을 긴급하게 추진한 것이다. 회사는 미리 사람을 뽑아주지 않는다. 탈이 나고 나서야 수습을 해준다.


  이후 그는 폐인이 되어가는 아내를 보살피며 힘든 시간을 보낸 듯 하다. 워낙 개인적인 일을 밖으로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라서 회사에서 티를 내지 않았지만 아내의 자살 기도 이후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에겐 뭔가 그 상황을 잠시나마 잊어버릴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자전거가 된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도 거기에 같이 끌려들어 간 것이다. 


"그래서 부장님이나 차장님이 그가 항상 일찍 퇴근해도 별 말 않는 거야? 뭐... 뭐라 해도 들을 구과장님도 아니지만 큭큭"

"아 그랬군요"

"뭐 거 때문에 전대리가 희생하는걸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쩝..."

"..."


   가족의 소중함은 가족을 잃어버림으로써 가슴 아프게 깨닫게 된다. 아이를 잃고 아내까지 잃어버릴 뻔한 충격은 회사 일을 뒷전으로 미뤄버렸다. 그는 무엇이 소중한지 깨달은 것이다. 그런 큰 상처를 아는 주변 사람들도 그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이 나에게는 썩 좋지 않아 보인다. 그가 던져놓은 수많은 업무들로 매일 밤 머리를 싸매고 컴퓨터와 씨름해야 한다. 


   그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내가 아픔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의 불행을 통해 타인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봐야 할까? 내가 매일 밤 남아 그가 던져놓은 일들을 처리함으로써 그는 아내 그리고 자전거와 함께 하는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구과장님 뭔가 달라진 거 같지 않아?"

"예 뭐가요?"

"요즘 얼굴에 생기가 돌잖아"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가끔씩 농담도 던지고 혼자 흥얼거리는 일이 잦다. 그러다가도 나의 고객 제출 견적서에서 실수를 발견하고는 저승사자로 돌변한다. 차라리 냉탕이면 거기에 적응할 텐데 이건 뭐 하루에도 온탕과 냉탕을 몇 번씩 오고 가는 게 미친놈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거 비밀인데... 사실 구과장님 와이프가 다시 임신을 했나 봐"

"아..."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 다들 쉬쉬하고 있어, 이번에도 잘못되면 큰 일이니까."

"아 그렇군요"

"전대리가 아마 많이 힘들 거야, 어쩌겠어 전대리밖에 없으니"


  그는 근래에 아무 이유 없이 연차를 쓰고 있다. 다른 직원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연차를 한 달새 몰아서 4번이나 쓴 것이다. 그것은 다 와이프와 뱃속의 아기를 보살피기 위한 것이었다. 덕분에 나의 배속에도 뭔가가 자라고 있는 듯하다. 운동부족과 오랜 착석 근무로 '피하지방'이라는 놈이 자라나고 있다. 아랫배만 볼록 튀어나온 모습이 마치 쿵푸 판다를 연상케 한다. 최부장과 주차장은 구 과장에게 특별 면책권을 부여한 듯 보인다. 그럼 그 책임과 과업은 내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그날까지... 그럼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새 생명을 꽃피우는 고귀한 희생인 것인가? 그 영예로운 사명이 왜 난 달갑지 않은 것일까?

    

  회사는 누군가가 웃을 때 다른 누군가는 울고 있다. 모두가 웃을 수는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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