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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y 13. 2020

갑을 관계는 바뀔 수 있다

팔공 남자 시즌 2-31

"다들 이곳 중국 상해까지 CF차종 원가절감 TF(Task Force) 활동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금일부터 모레까지 3일간 이곳 H사 중국 글로벌 소싱 센터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한국 자동차의 중국 전략 SUV 차종의 양산 전 원가 절감 아이디어 도출을 위한 전 협력사 워크숍에 참석했다. 수많은 1차 협력사의 영업 및 설계 담당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자동차의 CF차종 총괄 프로젝트 매니저가 회의장 앞에서 PPT 화면을 띄워놓고 앞으로의 일정과 계획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원가절감 워크숍이 시작된다.


"다들 보셨겠지만 회의장 밖에는 티어 타운(Tear Down: 자동차를 각 부품별로 분해 및 해체)된 차량 두대가 있습니다. 각기 차종은 현재 중국에서 년간 판매량이 가장 높은 일본 차종과 중국 로컬 차종입니다. 여기 참석 담당자들께서는 자사의 CF차종과 두 경쟁 차종의 담당 부품을 비교해서 원가절감 아이디어 및 자사 제품을 포함한 3개사의 제품의 비교 원가 자료를 작성하셔서 일정 안에 제출하셔야 합니다. 아울러 관련 제출 자료는 대외비로 외부로 절대 유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드립니다."


'아놔~ 씨발 요구사항이 갈수록 많아지는구먼'


 고객사는 협력사를 이용해서 경쟁사의 자동차의 원가를 분석한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협력사 직원들에게 아웃 소싱해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한다. 협력사는 부품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협력사 직원은 고객사의 각종 조사 및 페이퍼 워크 용역업무까지 제공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협력사의 고객 접점에 있는 부서들의 직원들의 업무의 반이상은 대부분 고객 내부 자료를 만드는 일로 채워진다. 대기업은 부족한 내부 맨파워를 협력사 직원들을 통해 메꾼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은 굳이 비싼 정직원을 많이 채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웃소싱은 제조생산 뿐만 아니라 페이퍼 워크 비롯한 관리용역까지 포함된 것이다.


"와~ 처참하게 분해됐구먼"

"안녕하세요! DG오토모티브 전희택입니다."

"누구?"

"아 네~ 접때 북경에서 CG차종 입찰 때 뵈었는데요"

"아! 구과장 부사수? 경력이라고 했던? 와~ 이제 구과장은 부사수 내보내고 안방에서 쉬나 봐 하하"

"아... 네 하하"

"저 이쪽은 저희 CF차종 설계 담당자 조고훈 부장님입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회의장 밖에 놓인 자동차는 마치 부위별로 해체된 고기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분해되어 있다. 자사의 경쟁사인 한국 오토모티브의 영업 담당인 양부장도 참석했다. 그는 혼자 참석했다. 설계와 영업이 두 명씩 팀을 이뤄 참석하는 TF 활동에서 그는 고객사의 계열사 특권인지 혼자만 참석했다. 양부장과 우리는 두 차종의 램프 앗세이(Ass'y: Assembly 조립품)를 들고 회의장의 테이블로 간다.


"반갑습니다. 북경에서 온 독고사 과장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 제가 전장파트 TF를 담당하게 됐습니다. 뭐 저랑 일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깔끔하게 일하는 걸 좋아해서요 일정 안에 잘 마무리해주시길 바랍니다. DG 오토모티브는 뭐 알아서 잘하겠죠? 양부장님이 문젠데... 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부장님~"

"아~ 또 왜 그러십니까 고객님~ 부담스럽게시리 하하"


'앗~ 좆됐네 X발! 고 과장이 얘기했던 개새끼다'


  고 과장이 가장 싫어하는 독사 같은 놈이다. 공교롭게 이름도 비슷하다. 독고과장은 우리를 대할 때와는 달리 양부장의 눈치를 살피며 굽신거리듯 말한다. 


  한국 자동차와 한국 오토모티브는 모회사와 계열사의 관계이지만 사실 그 이면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한국 자동차가 고객사이긴 하지만 한국 오토모티브는 한국 자동차의 최대주주이다. 두 회사의 직원은 거의 동등한 레벨이라고 보면 된다. 급여 수준이나 복리후생도 비슷하다. 두 회사 간에 인사이동도 이뤄지기 때문에 서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애매하고도 껄끄러운 사이이다. 

  양 부장도 한국 자동차로 입사했지만 지금은 한국 오토모티브로 옮겨왔다. 고객사 담당자라고 계열 협력사 직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제 상황이 뒤집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계열사 직원의 직급이 높다면 더욱 그러하다. 언제 어떻게 자신 위에 얹힐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저기 저희는 내부 중요한 일정 때문에 내일 오전에 귀국해야 되는데요"


  또 한 팀의 열외가 보인다. 회사 점퍼를 입고 앉은 다른 협력사와는 달리 검은 슈트를 아래위로 쫙 빼입은 두 남자가 이의를 제기한다. 그들 앞 테이블에는 회사에서 제공한 듯한 똑같은 최신형 맥북이 놓여있다. 그들은 자동차의 전장 시트 협력사이다.  당시 그 회사는 자동차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현 정권의 가장 큰 수혜기업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고작 몇백억 도 되지 않던 매출의 작은 시트 업체에서 조 단위 거대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겨우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 대기업 못지않은 급여조건과 복리후생에 협력사 직원이라면 한 번쯤 꿈꾸는 그런 회사였다. 그들은 정권의 힘을 등에 업고 고객사도 안중에 없는 듯 보였다. 오히려 고객사가 그들의 눈치는 보는 형국이랄까? 역시 권력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가 보다.


"아~ 이렇시면 곤란해요, 저희가 사전에 일정을 공지했는데 이러면 어떡합니까?"

"뭐 저희라고 어쩌겠습니까? 본사에서 들어오라고 하는데요"

"그럼 절감안과 비교 원가 자료는 어떡합니까?"

"그건 저희가 귀국 후 작업해서 메일로 회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놔! 휴~"


  독고과장은 한 숨을 내쉬며 총괄 프로젝트 매니저와 눈을 맞추더니 매니저의 어쩔 수 없다는 제스처에 수긍의 의사를 전달한다. 그의 반응을 확인한 시트 협력사 두 직원은 맥북을 덮고 짐을 챙겨서 회의실을 나간다. 다른 협력사 직원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그들의 퇴장을 바라본다.


"아유~ 씨발! 뭐 저런 놈들이 다 있어! 지들이 고객이야? 뭐야!"


  독고과장은 분에 차오른 표정으로 그들의 퇴장을 확인하고 한바탕 욕을 내뱉는다. 뒤집힌 갑을 관계로 차오른 화가 백도 힘도 없는 우리에게 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든다.


  세상엔 영원한 갑을 관계는 없다. 갑을 관계는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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