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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10. 2020

바람 잘 날 없는 곳

팔공 남자 시즌 2-37

"야~ 다들 빨리 울산항 6 부두로 튀어가!"


 전사에 비상이 걸렸다. 영업팀에도 울산항 부두로 집결해서 램프 조립에 투입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울산항 부두 야적장에 헤드램프가 장착되지 않은 한국 자동차의 수출용 "A" 모델 차량 수백 대가 RORO선(자동차 적재 선박) 적재를 위해 대기 중이다. 


  얼마 전 "A" 모델 차량의 헤드램프 부품인 아웃 렌즈(Out-Lens)를 외주 생산하는 자사의 협력업체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지속적인 단가 인상을 요청했지만 자사 외주구매팀에서는 협력사의 요청을 계속 무마해왔다. "A"모델 헤드램프 앗세이의 고객 납품 단가 낮게 책정되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구매본부장이 승인을 해주지 않은 것이다. 아웃 렌즈를 생산하는 협력사는 선 생산 후 단가결정의 업계 관행을 따라 일단 렌즈를 생산 공급해 왔다. 예상보다 낮게 책정된 가단가(임시 공급 단가)로 인해 적자에도 불구하고 양산을 강행했고 이후 정단가(실제 결정 단가)의 인상을 요청했지만 구매팀의 정단가 인상 불가 통보로 업체 사장의 분노가 폭발해 버린 것이다.


  업체 사장은 현재 단가로는 공장 운영이 어렵다고 자사에 하소연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정단가로의 인상과 미수된 납품대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하고 자사 구매팀의 답변이 없자 납품을 중단하고 아웃 렌즈 금형을 숨겨버렸다. 아웃 렌즈 공급이 중단되자 램프 앗세이를 완성차 라인에 납품할 수 없게 되었고 자동차 라인이 멈추는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고객사의 경고가 날아들고 회장부터 사장 그리고 관련 임원들이 고객사에 불려 갔다.


"야~ 다들 뭣들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당장 금형 찾아와!"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고객사에서 불려 가 호되게 한 소리 들은 모양이다. 구매본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경찰에 신고해 그 업체 사장을 수배하기에 이르렀다. 기본적으로 자동차 부품 금형은 1차 협력사의 자산이다. 예외적으로 완성차에서 금형투자비용을 일시불로 지급할 경우는 완성차의 자산이 되지만 일반적으로 완성차는 수천억에 달하는 신차 개발 비용을 그들이 처음부터 모두 부담하지 않는다. 협력사의 납품단가에 금형 및 전용설비 비용을 묻어서 수년에 걸쳐 분할 상각 해서 지급한다. 그래서 1차 협력사들은 신차 개발에 적지 않은 투자비를 감당해야 한다. 물론 신차 판매가 호조를 보인다면 투자비용이 빨리 회수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언제 돌려받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협력사들은 완성차의 인기 차종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비인기 차종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한다. 차칫하면 투자비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1차 협력사는 그런 부담을 그 아래 2차, 3차 업체로 전가시킬 수밖에 없다. 물론 2,3차 업체들은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에 개발비를 감당하진 못하기 때문에 금형을 받아 위탁 생산하고 1차 협력사에서 요구하는 단가에 부합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협력사 사장은 졸지에 자사의 금형을 훔친 절도범이 되어 버렸다. 구매팀 담당 직원들은 경찰을 대동해 협력사의 공장을 급습했다. 공장 문은 쇠사슬과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었다. 중장비를 동원해서 공장문을 부수고 진입에 성공했다. "A" 모델의 금형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사출동 옆에 금형 보관소에는 수많은 금형들이 쌓여있다. 그 협력사는 오랜 기간 자사의 부품을 위탁 생산해왔고 과거부터 생산해왔던 단산된 수많은 부품 금형들이 가득 뒤섞여 있다. 금형 명판도 다 떼어져 금형을 열어보지 않고서는 어떤 제품의 금형인지 알 길이 없다. 구매팀 직원들은 공장 천장에 달린 모노레일 크레인을 이용해 모든 금형을 하나씩 들어내 확인하는 작업을 했고 24시간 훌쩍 지나서야 "A" 모델 금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업체 사장은 작심하고 해당 금형을 명판도 떼어내고 창고 가장 깊숙이 숨겨놓았던 것이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긴급 금형 호송 작전이 실시되었다. 국가 수출 역군인 자동차 산업의 파워 때문일까 여러 대의 경찰차들은 금형을 실은 트럭을 앞뒤로 에워싸고 사출공장으로 이동했다. 사출공장에서는 금형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바로 사출과 동시에 조립을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완료했다.


"와~ 차들 봐라!"

"뭐해  빨리 램프 앗세이 옮겨!"


  광활한 부두에는 수천 대의 "A"모델 차량이 눈알이 빠진 채 흉측스러운 모습으로 눈알 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고 그 앞에는 거대한 RORO선이 자동차를 집어삼키려고 입을 쫙 벌리고 있다. 며칠 동안 램프 공급이 중단되어 완성차 야적장에 적재공간이 모자라 결국 눈알이 빠진 채 부두로 옮겨왔다. 해외에서는 "A" 모델 차량 예약판매가 밀려 물 건너 올 날만 기다리고 있다. 영업팀 직원들은 헤드램프 앗세이를 각각의 차량 앞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완성차의 조립 직원뿐만 아니라 자사의 생산팀, 품질팀들 수많은 인원들이 달려들어 램프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참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요"

"그니까요"

"어이 거기! 잡담 말고 빨리 하쇼, 하여튼 DG오토모티브 문제 많다니까!"


   봉래씨와 헤드램프를 차량 앞에 놓을 때였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램프를 조립하는 완성차 라인 직원이 우리에게 한 소리 한다. 당시 별 다섯 개의 우수협력사로 지정되어 있던 DG오토모티브는 이번 사태로 4 스타 강등당했고 부두 야적장 비용 및 고객사 손실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경영진은 사태의 원인 규명을 지시했고 영업본부의 고객사 납품 가격 네고 문제와 구매본부의 외주협력사 관리 소홀을 문제 삼아 두 본부 수장에게 3개월간의 감봉처분의 징계를 내렸다.


  그 사건 이후 완성차에서는 대대적인 금형 관리 실태 조사에 착수했고 수많은 협력사들은 금형 관리 대장 작성과 금형 실사(실물 확인)로 엄청난 비용과 맨파워를 투입해야 했다. 나 또한 중국 차종의 금형 현황 자료 작성으로 일주일 가량을 밤샘 작업을 해야 했다.


  어쨌든 이런 우리의 노력으로 이번 달 우리나라의 대외 무역수지는 분명히 흑자를 기록했을 것이다. 


  자동차 업계는 잠시도 바람 잘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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