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Jun 11. 2020

유부남과 총각은 분리된다

팔공 남자 시즌 2-38

"야~ 사람이 달라 보이는구만"

"쟤 K 맞나?"

"미주도 완전 딴 사람 같은데 큭큭"

"이건 완전 변신이구만"


  햇살이 부서지는 해운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결혼식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수많은 결혼식장을 들락거렸지만 오늘은 좀 특별하다. 가장 오랜 시간 알고 지낸 가까운 벗의 결혼은 의미가 남다르다. 신랑과 신부는 우리가 알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둘이 하나가 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려 한다.


  K는 작년 추석 때 했던 말을 계획대로 실천했다. 절대 빈말은 하지 않는 녀석이다. K는 그랬다. 계획한 것은 어떻게든 계획대로 만들어 갔다. 그는 자신이 계획한 것에 방해가 되거나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잘라내는 성격이다. 사실 그가 계획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는 적잖이 소원해졌다. 친구들과의 연락과 만남은 뜸해졌고 일과 연애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그는 나와는 달리 멀티태스킹에 능숙했고 과장 승진과 결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거머쥐었다. 우정이 기회비용이 되었기에 나머지 넷이 가지 못한 길을 가장 먼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가 가족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달은 듯 보였다. 식장을 가득 메운 하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웃고 있는 둘의 모습은 나와 나머지 3명의 꼬치친구들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고 있다.


"역시 K가 먼저 가는구만"

"당연한 거 아니긋나? 설마 니가 먼저 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제 큭큭"

"야 우리도 이제 심각하게 결혼을 생각해봐야지 않긋나?"

"결혼은 개뿔... 여자도 없는데..."

"신부 친구들 중에 이쁜 애들 좀 있던데..."

"아서라~ 미주가 잘도 소개해 주겠다"

"왜?!"


   K의 와이프가 된 미주는 신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결혼 전 우리에게 미주를 소개하려 만난 자리에서 다들 그녀는 우리들이 범접하기 힘든 여자라는 것을 직감했다.  술과 담배에 절어 저속한 농담을 주고받는 우리들을 바라보는 모습은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미주는 우릴 쓰레기로 생각할 걸 큭큭"

"왜?!"

"몰라서 묻냐?"


  우리는 우리들만의 단톡 방이 있다. 남자들만의 단톡 방이 다 그렇겠지만 여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즐비하다. 온갖 욕과 음담패설들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뭐 일반적인 여자들은 그 정도까진 이해할 수 있겠지만 미주에게는 일반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정타는 K 몰래 우리의 단톡 방에서 오고 간 각종 야동과 음란한 사진을 본 이후론 우리를 보는 눈빛이 바퀴벌레 보듯 변했다. 


"그래... 안 되겠지..."

"친구들한테 바퀴벌레를 소개해 주고 싶겠냐?"

"아놔~ K 그 녀석은 핸펀 관리를 어케 해가지고는..."

"하여튼 이제부터 그런 건 K 없는 단톡 방을 통해서 보내자규"


 결국 유부남이 된 K 몰래 총각들만의 비밀 톡방이 만들어졌다. K가 있는 단톡 방은 대화가 뜸해졌고 K는 그게 자신 때문인지 모르고 있다. 


"야~ 많이도 먹었네!"

"어~이! 새신랑 왜 이리 늦게 왔어!"

"와~ 얼굴 좋네~ 결혼하니 좋냐?"

"이제 상투도 틀고 어른이네"

"자! 자! 술 한잔 받아라!"


  K와 미주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타났다. 꼬치친구들을 위해 해운대 식장 근처의 한정식 집에 별도로 피로연 자리를 예약했다. 둘의 늦은 등장에 친구들은 이미 낮술에 거나하게 취해버렸다. 미주는 우리를 바라보며 한결같은 이중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K의 팔꿈치로 쿡쿡 찔러댄다. 그러자 녀석은 받은 술을 마시지도 않고 식탁에 올려놓는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데?"

"몰디브"

"오~ 몰디브 가서 모히또 한잔 하는 거야? 큭큭"

"좋겠다. 난 언제 해외여행 한번 나가보노?"

"넌 여권부터 만들어라. 일만 하지 말고"


  해외여행은커녕 비행기도 한 번 타보지 못한 J는 입맛을 다시며 부러운 눈으로 둘을 바라본다. 당시 신혼부부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신혼여행지가 몰디브가 급부상하고 있었다. 다른 많은 신혼 여행지는 이미 사람들의 떼가 묻어 각종 상업시설과 유흥시설들로 장악되었지만 몰디브는 그렇지 않았다. 직항 비행기가 없어 경비행기로 갈아타서 들어가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고도 갈려고 하는 건 세상과 단절된 천해의 자연을 만킥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야! 시간이 너무 지체돼서 먼저 가봐야겠다. 비행기 시간 때문에..."

"야~ 너무한 거 아니가 오자마자 가냐?"

"오빠들 정말 미안해요~ 저희 신혼여행 갔다 와서 다시 한번 봐요"

"에이~"

"내가 계산은 다 해놓고 갈게 먹고 가라 갔다 와서 보자"

"그... 그래 잘 댕기 오고"


  둘은 서둘러 자리를 뜬다. C은 술이 취해 이미 뻗어서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D는 술과 안주가 아쉬웠는지 K가 계산을 하기 전에 잽싸게 소갈빗살과 술을 더 주문한다. J는 배가 부른 지 한 손으론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고 한 손으론 이쑤시개로 이빨에 낀 고기를 떼어내고 있다. 나는 떠나가는 둘을 바라보며 소주잔을 들이켠다.


  연애할 때도 소원하던 K와의 관계는 유부남이 된 지금 더 멀어질 거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린 시절 없으면 죽을 것 같던 벗과의 우정도 시간의 흐름 속에 변해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유부남과 총각은 분리된다. 

작가의 이전글 바람 잘 날 없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