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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14. 2020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팔공 남자 시즌 2-39

"구과장~ 출발!" 

"예! 이사님~"

"어이~ 전대리 나 먼저 간디 낼까지 RC차종 페이스리프트 설계원가 자료 제출하는 거 알제?"

"예..."

"오케이 수고!"

"차장님 그럼 전 이만 휘~ 휘~"


  구과장은 견이사의 뒤를 따라 쫄쫄이 복장으로 클릭 슈즈를 또각거리며 따라나간다. 견이사도 자전거 마니아다. 견이사의 영업본부 발령은 구과장에게는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견이사는 해외영업 팀장 대행을 맡은 주차장보다 구과장과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한다. 구과장은 견이사 라인을 잡은 듯 보였다. 그는 일주일에 세네 번은 견이사와 퇴근길 라이딩을 같이 한다. 그는 견이사의 라이딩 페이스 메이커가 되었다. 주차장은 팀장대행이 되었지만 어찌할 수 없는 구과장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더욱이 얼마 전 구과장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를 얻었다. 그는 퇴근시간이면 어김없이 칼같이 집으로 향한다. 견이사는 그런 그가 당당히 칼퇴근할 수 있는 더 확실한 명분이 되었다. 


"야~ 전대리! 중국 공장 신규 예상 차종 포함해서 5개년 예상 매출 자료 작성해서 보내 놓고 퇴근해 알았지?"

"예? 저 RC 페이스리프트 설계원가 자료 때문에 그것까지 하기가 좀..."

"야~ 그럼 누가 하냐?"

"예..."

"내가 하까?"

"아... 아닙니다"


  오늘도 언제 퇴근할 수 있을지 묘연해진다. 차라리 라꾸라꾸 침대라고 가져다 놓고 여기서 자는 게 나을 듯싶다. 주차장은 구과장에게 풀지 못하는 짜증을 나에게 풀고 있다. 다행히 오늘은 같이 하는 야근 동료 아니 선배가 하나 있다.


"휴~ 이노무 람파다(Lampada) 브라질 공장 때문에 미치겠구만..."

"이과장님 퇴근 안 하십니까"

"어?! 어~ 난 퇴근은 글렀다. 담배나 한 대 피러 가자"

"일 많으신가 봐요?"

"인도에 브라질까지 나보고 맡으라고 하니 죽을 맛이다. 브라질은 뭐 금형비만 처리하면 되는 건지 알았는데 일이 생각보다 복잡하네, 또 주차장한테 낚였어"


  이노총과장, 그는 인도 파트를 맡고 있는 영업본부의 최고령 총각이다. 그도 구과장과 이번에 같이 과장으로 진급했다. 나의 사수인 구과장보다 한 살이 더 많지만 구과장은 빠른 생일을 핑계 삼아 그와 친구처럼 말을 놓고 지낸다. 그는 주차장이 해외영업 팀장대행을 맡으면서 그가  맡고 있던 브라질 업무까지 떠안게 되었다. 


  한국 자동차가 브라질로 진출하면서 램프 협력사인 자사에게 현지 투자를 요청했지만 현지의 열악한 환경과 투자여건 등으로 현지 진출을 거부했다. 그건 자사뿐만 아니라 여러 대다수의 협력사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남미 지역은 위험부담이 컸다. 그 까닭에 한국 자동차는 현지 브라질 회사를 이용해서 부품을 공급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품 양산은 현지 협력사를 이용하더라도 그 부품을 찍어내는 금형설비는 국내에서 지원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자사가 브라질 현지에서 생산할 램프부품 금형을 제작해서 현지 협력사에 인계해주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문제는 현지의 공장 설비 및 생산조건이 국내와 많이 다른 까닭에 금형 이관 이후에 생산라인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완성차에서는 현지 양산 공급 불안정이 금형설비 문제에 있다는 핑계로 투자비용 지급을 보류한 것이다. 자사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현지에 자사 엔지니어를 파견해 현지 생산 안정화 작업 및 현지 직원 교육까지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는 비용이 발생했다. 이과장은 투자비 견적에 예상치 못한 비용을 반영하지 못했고 경영진에서는 그 비용을 고객사(완성차)에 청구해서 회수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걸 호락호락 지급할 고객가 아니다. 이과장은 그 비용 회수 건으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중이다.  


"봉래씨 부사수로 붙여주지 않았어요?"

"아~ 그 핏덩이한테 이걸 우찌 맡기냐? 인도 업무만 조금씩 시키고 있어" 

"과장님이 고생이 많으시네요"

"뭐 너도 만만치 않은 거 같은데..."

"네?! 하하 뭐 전 원래 하던 일인데요 뭐"


  그는 일본 현지의 "M"중공업에서 근무하다 온 나름 해외파 인력이다. 일본에서 살다와서일까 꽤 도수가 높은 네모난 안경에 항상 정리되지 않은 머리가 오타쿠를 연상케 한다. 경력 대리로 입사해서 당시 초창기 인도공장 영업을 맡아서 공장의 안정화에 큰 역할을 했다. 그 덕에 현재 인도공장은 매출과 수익성이 많이 올라온 효자공장이 되었다. 


  당시 경영진에서는 이과장을 현지 주재원으로 파견할 생각이었지만 이과장은 현지에서 비자가 만료된지도 모르고 체류하다 출입국관리국에 걸려서 현지에서 영구 추방을 당하는 바람에 그 계획이 무산되었다. 이과장은 장기 출장 중에 업무 때문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핑계를 둘러댔지만 내 생각에는 그가 인도로 가지 않으려 회사의 의도를 미리 간파하고 했던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는 회식자리에서 상사들의 심심찮은 현지 파견 얘기에 항상 해외 오지에서 노총각으로 쓸쓸히 늙어죽기 싫다는 변명으로 그들의 동정심을 유발했다. 사실 얼마 전 인도 현지 공장 출장을 다녀온 봉래씨의 말로는 정말 극한의 오지체험을 다녀온 것 같다는 말에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과장님 결혼 안 하세요?"

"야~ 너까지 왜 그러냐?"

"예?!"

"아~ 참 이노무 대한민국은 다들 왜이리 남에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지..."

"죄송합니다."

"아니~ 뭐 너한테 하는 얘기는 아닌데... 그런 넌 왜 결혼 안 하냐?"

"네?! 그러고 보니 제가 할 말은 아니네요 하하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쓴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는 일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서인지 여기 와서 한국사람들의 오지랖에 적지 않은 혐오를 느꼈다고 한다. 처음 입사했을 땐 윗사람들이 그런 말과 행동을 보일 때면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 몰라 꽤나 당황했다고 한다. 지금은 뭐 능글능글한 능구렁이가 다 되었다.


"너 퇴근 좀 해라!"

"해... 해야죠"

"니 덕에 구과장 요즘 신난 거 같더만 큭큭큭"

"..."

"구과장 너 오기 전에는 맨날 죽을 상이었는데... 너 오고 나서 일이 술술 풀리나 봐 라인도 생겨, 애도 생겨 맨날 휘파람 불고 혼자만 신났어"

"그... 그런가요?"

"걱정된다 정말..."

"뭐가요?"

"담배 있냐?"


   그는 자신의 빈 답배갑을 확인하고는 나에게 담배를 한대 빌려 불을 붙인다. 


"사실 말이야..."


   그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너가 벌써 세 번째야!"

"예? 무슨 말이에요?"


   내가 입사하기 전에 구 과장의 부사수로 2명의 신입사원이 스쳐지나갔다고 한다.

   첫 번째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외국어대학의 중국어 동시통역학과를 나온 여자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여자라는 것 때문인지 구과장이 꽤나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를 가르쳤다고 한다. 하지만 인내는 결국 더 큰 폭발의 원인이 되고 말았고 그의 한 번의 폭발에 그녀는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위에서는 거칠고 보수적인 자동차 영업에 여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그는 별다른 질책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한국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중국 남자였다. 인사팀에서는 향후 중국 로컬 영업까지 고려해서 중국 직원을 뽑았다. 중국어는 물론이고 한국어에 영어까지 가능한 인재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구과장의 성향을 받아내기에는 내공이 부족했다. 그도 적지 않은 내상을 입고 한국 취업을 포기하고 고향인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들어온 것이 나였다고 한다. 다들 과거 있었던 사실을 나에게 철저히 비밀로 하라는 지시가 있어 아무도 나에게 얘기를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야! 비밀이다 내가 얘기했단 말 어디 가서 하면 안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뭔지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그동안 스스로를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그에게 질책인지 갈굼인지 모를 언행을 마주하고 나면 나 자신이 미워졌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 속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서 혼자만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힌 듯한 기분 속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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