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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15. 2020

쉬쉬할 수 없는 일

제2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창작공연 스토리 공모전

그녀는 완벽했다.

  

   달걀형의 하얀 얼굴,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한 눈에 봐도 미인이다.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을 다시 믿게 되었다.


“I like you”

“I like you too”


   그녀가 그윽한 눈빛으로 나에게 고백한다. 나도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시선을 놓을 수가 없다. 그녀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우리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서로를 응시한다.

 

“Can I go to toilet for a while?”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그녀가 화장실로 향한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응시한다. 그녀가 화장실로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주변의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챘다. 카페 안 다수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Lady boy!” (레이디 보이!)

 

  누군가가 소리친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녀가 자리로 돌아왔고 주변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필리핀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온 몸을 감싼다. 그녀와의 첫 만남 후 숙소로 돌아온 나는 카페에서 들었던 단어를 검색하고 충격에 빠진다. 설마 하는 예감에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Why you didn’t tell me you’re a man?” (왜 당신이 남자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I’m not a man, I’m woman” (난 남자가 아녜요, 난 여자예요)

“Liar!” (거짓말쟁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나의 눈빛에 차마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여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남자를 사랑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 밀려온다. 사실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지만 모르고 사는 것 뿐이다. 당시 ‘동성애’는 나의 삶 어디에도 없었다. 어학연수를 온 짧은 기간 동안 성 관념에 커다란 변화가 불어닥치고 있었다.


“难道你不知道? 他是女的” (몰랐어? 그는 여자야)

“你别开玩笑啊” (농담하지마!)

“是真的!” (정말이야)


   대만에서 온 룸메이트가 던진 말은 또 한 번의 충격을 안겨줬다. 어학원에서 어울리던 대만 친구들 중에 유독 나랑 친한 친구가 있었다. 털털한 성격에 주변에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그 모습이 멋있었다. 다소 왜소한 체구와 유난히도 곱고 하얀 피부가 어색했지만 여자일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는 레즈비언이었다. 그 해(2019)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 했고 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동성애는 일상 속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기는 듯 했고 오히려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배척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필리핀 어학원 내의 현지 선생들 중에는 적지 않은 게이들이 있었다. 대놓고 드러내는 유별난 게이부터 여성스런 게이(레이디 보이), 남성적인 게이등등, 아시아의 곳곳에는 동성애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며 일반인들과 뒤섞여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LGBT, 우리도 이제 더 이상 쉬쉬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공모전 포스터


- 공모전 상세요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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