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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18. 2020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팔공 남자 시즌 2-40

"야~ 씨X! 좆같아서 못해먹겠다. 때려치우고 나오든지 해야지"

 

  C는 소주가 나오자 마다 뚜껑을 따고 잔에 따르기 무섭게 들이켜기 시작한다. 술은 아직 취하지도 않았는데 얼굴은 이미 붉게 상기되어 있다. 술기운이 오르기도 전에 이미 화기운이 잔뜩 올라 있다.


"와? 뭔 일인데?"

"아놔! 그 썅년이 완전 나를 무슨 개 잡부로 본다 아이가"

"누구? 그 이사장 딸이라는 여자?"

"아! 씨X! 아직도 손에서 냄새가 나네"


   C는 소주잔을 내려놓고 손을 코로 가져다 대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그는 얼마 전에 다니고 있던 대안 학교의 수학교사 자리에서 행정실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이유인즉은 원래 수학 담당 있던 교사가 1년간의 육아 휴직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온 것이다. 그 여교사는 정교사였고 계약 임시직인 그는 그녀에게 선생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학교에서는 그에게 행정실 말단 계원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도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행정실로 옮겼다.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행정실의 최고 우두머리는 다름 아닌 학교 이사장의 딸이었고 그녀는 우리와 같은 팔공년생의 동갑이었다. 그녀는 C에게 학교의 온갖 잡일들을 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도 학교 화장실의 깨진 변기를 수리하는 일을 하다가 깨진 변기 사이로 터져 나온 오물을 뒤집어썼고 그걸 지켜보던 행정실장은 그를 위로하기는커녕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리며 녀석에게 "어째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아~ 정말 답 없는 인간이네"라는 말을 내뱉었다.


"으으으윽! 내 그 년을 잡아 죽이든가 해야지 씨X!"


   C는 안주도 나오기 전에 이미 소주 한 병을 다 비울 기세다. 그도 그동안 참아왔던 스트레스가 폭발한 듯 보인다. 그럴 땐 그냥 옆에서 술잔이나 채워주며 들어주는 것이 친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이다.


"혹시 니가 뭐 잘못한 게 있는 거 아냐? 왜 너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그 여자는?"

"내가 뭐 잘못할 게 있겠냐? 그 년 완전 똘아이라니까. 행정실 사람들 다 싫어한다. 생긴 것도 돼지같이 생겨가지고... 아... 혹시... 그것 때문인가?" 


  C가 처음 행정실 왔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고 한다. 행정실장인 그녀는 동갑인 녀석에게 상냥하게 대해 줬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든 40~50대의 아저씨와 아주머니 직원들 속에서 또래의 남자가 들어와서 적잖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는 키도 크고 나름 여자들한테는 먹히는 비주얼과 입담이 있어서 그녀도 그에게 적지 않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행정실 직원들과 가진 첫 회식 때 일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대리기사 왔네요~ 오늘 즐거웠습니다. 그럼 다들 조심히 들어가시고"

"C씨 집이 어디 쪽이에요? 경대 쪽입니다."

"같은 방향이네요, 같이 타고 가요 가는 길에 내려줄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타요! 어서!"


  그녀는 C의 팔을 끌어당겨 그녀의 빨간 벤츠의 뒷좌석으로 밀어 넣는다. 그녀의 손에서 덩치에 걸맞은 상당한 완력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녀도 뒷좌석으로 들어와 앉고 문을 닫고는 직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다. 차 안에서 둘 사이에 어색한 적막이 잠시 흘렀다.


"C 씨 학교생활 어때?"

"예?! 뭐 괜찮습니다."

"편하게 얘기해 둘이 있을 땐... 우리 동갑이잖아"

"아...니 그래도.."

"여자 친구 있어?"

"아니... 요"

"그래? 아~ 오늘 좀 많이 마셨더니 취하네"


  그녀는 슬며시 C에게 몸을 기댄다. 그녀의 육중한 몸에 밀려 C는 반대편 손으로 차 시트를 받치며 그녀를 지탱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시트 위에 그를 덮고 누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손이 슬며시 그의 허벅지 위로 올라온다. 순간 움찔한 C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고 벌어졌던 다리를 쨉 싸게 오므린다. 


"운동하나 봐?"

"잠깐 마.. 만 이.. 러"

"우리 집에 갈래?"

"아... 나 나 여기서 내릴게요"

"뭐야? 아직 멀었는데"

"아.. 아저씨 여기 좀 세워줘요!"


   C는 차가 정차하자마자 문을 열고 나가버렸고 뒤도 보지 않고 집으로 왔다고 한다. 그는 생각해 보니 그 날 이후 그녀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다고 한다. 


  그는 동병상련의 정 때문인지 행정실의 있던 20대의 젊은 계약직 여직원과 유독 사이좋게 지냈고 그녀는 그런 둘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학교는 그전까지 계속 연장해 오던 그 여직원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그녀를 쫓아내 버렸다. 그녀의 맡고 있던 업무는 고스란히 C에게 돌아왔다. 그 뒤로 학교 내의 온갖 잡일들을 그에게 시키기 시작했다. 교실의 책상 수리부터 페인트칠, 화장실 보수공사 등등 수학 교사로 왔던 그는 학교 공무로 변해가고 있었다. 더 황당한 건 행정실의 다른 직원들이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와 친하게 지냈던 여직원이 쫓겨나는 모습을 본 뒤로 다른 직원들은 C와 말도 섞지 않으려 했다. 그는 학교에서 철저히 왕따가 되어가고 있었다.


"희택아~ 세상이 원래 이래 좆같냐?"

"으이구~ 그래 좀 적당히 눈치 좀 보고 행동하지 그랬냐?"

"좆도~ 돈 없고 빽 없으니 개무시만 당하는구나"


  이제 세상에 갓 나온 C가 당한 괄시와 수모는 그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이제 녀석도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인간은 피폐해진다. 아름답게 포장된 미디어 속 세상과 휘황 찬란한 도시의 화려함은 사람들의 피폐함을 먹고 자라나는 듯 보인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게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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