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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20. 2020

성모 마리아의 미소

팔공 남자 시즌 2-41

   "오늘은 안 에스더 목녀님의 간증을 들어보려 합니다. 다들 박수로 맞아주세요"


  계속되는 토요일 근무로 부산에 내려가지 않은지 몇 달이 된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요일 오후 교회 예배당으로 향한다.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그냥 예배당에서 사람들 속에 묻혀 라이브 반주에 목소리를 높여 찬양을 따라 부르다 보면 전날 마신 술도 깨고 기분도 좋아지는 걸 느낀다. 갑갑한 노래방보다는 탁 트인 공간에서 소리 지르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그녀가 단상에 올라간다. 청중을 한 번 둘러보고 크게 한 번 숨을 들이키고 천천히 말문을 연다.


"전 어린 시절 어머니를 하나님 곁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 아버지 손에 자랐습니다. 그는 어머니나 하나님처럼 저를 사랑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그는 저를 성적 노리개로 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전 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폭력 속에서 지우기 힘든 상처를 받았습니다. 현재 저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습니다. 며칠 전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를 용서했습니다."


   예배당의 사람들은 그녀의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간증에 다들 숨죽여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나 또한 그녀에게서 눈과 귀를 뗄 수 없다. 예배당에 잠시 적막이 흐르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전 지금 사회복지사로 성폭력 방지 센터에서 심리상담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시련과 상처를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받아주지 않으시더군요. 절 쓰실 곳이 있었나 봐요. 사실 제가 겪은 상처는 타인의 상처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감싸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저로 하여금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을 감싸안는 일을 시키시려고 하신 모양이예요."   


   그녀의 차분하고 임팩트 있는 말은 청중을 집중시킨다. 둘러본 예배당 안에는 같이 눈물 흘리며 그녀의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과 충격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사람 두 부류로 나뉜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왜 감추고 싶은 과거를 굳이 들춰내어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절대로 개인적인 아픔이나 상처를 직장동료들과 공유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누가 얘기했던가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된다'라고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아픔을 나누면 더 큰 아픔을 가져다주고 기쁨은 나누면 타인의 시기 질투를 낳을 뿐이다.


   인간은 본디 겉과 속이 다른 동물이다. 그렇게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삶은 전쟁과 같다고 했던가? 동양 최고의 고전 <손자병법>에서도 어떻게 상대를 기만하고 나를 위장할지에 대해 강조하며 그것이 승리로 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얘기한다. 그만큼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다들 놀라셨죠?"

"언니~ 괜찮아요?"

"응 괜찮아 고마워"


  예배가 끝나고 목장 멤버들이 교회 식당에 모여 앉았다. 띠아오챤은 안 에스더에게 손수건을 건넨다. 그녀도 울었는지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貂蝉!你都听懂了?”(띠아오챤! 너 다 알아들은 거야?)

“差不多啊”(대부분요)

“哇! 这小孩子!韩语听力还不错嘛”(와~ 쪼마난게 한국어 리스닝 수준이 대단한데)

"大叔! 你别小看我!”(아저씨! 저 너무 얕보지 마요)

"别!别! 吃饭吧!” (그만! 그만! 밥 먹어!)


  띠아오챤과 나의 말타툼에 조선족 최 씨 아주머니가 끼어들며 상황을 종료시킨다. 안 에스더는 좀 전까지 슬프던 표정은 온 데 간데 없이 비 갠 뒤 화창해진 날씨처럼 활짝 웃으며 우리들을 바라본다. 그녀의 간증이 화제는 화제인 듯 보인다. 식당 안에는 우리 쪽을 힐끔거리며 숙덕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녀의 남자인 요한은 옆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등을 다독인다. 그는 그녀의 아픔을 나눠가진 유일한 사람인 듯 보인다.


"뭘 그렇게 봐요~ 희택 형제!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하하하"

"아... 아니에요"


  그녀를 한참을 쳐다보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뭔지 모르지만 그녀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껴진다. 그것이 호기심인지 동정심인지 아니면 그 다른 무엇인지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된다.


“大叔! 干嘛你盯着看人家的脸, 吃饭!”(아저씨! 왜 사람 얼굴을 그리 뚫어지게 쳐다봐요 밥 먹어요 밥!)

“你别说大叔, 好不好!"(너 아저씨 소리 좀 하지 말지)

“向大叔叫大叔有什么问题吗?”(아저씨를 아저씨라 부르는데 뭐가 문제예요?)

“大叔是已婚的男人,我不是已婚的呀”(아저씨는 유부남이고 난 총각이야)

"我不管!” (상관없어요!)

"아놔! 요즘 애들은 참..."

"하하하 둘이 왜 그래요? 싸우지 마요"

   

  띠아오챤과 나의 말다툼에 안 에스더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인자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달래듯이 말한다. 그녀의 표정은 어디서 많이 본듯한 느낌이다. 그 표정이 문득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간다.


  무엇이 그녀에게 저런 평안한 미소를 가져다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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