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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21. 2020

세상을 밝히는 일

팔공 남자 시즌 2-42

"아! 짜증 나! 팔리지도 않는 *AFLS(Adaptive Front Lighting System) 왜 만드나 몰라, 일만 졸라 많아지는구먼, 도대체 한 차종에 램프 사양이 몇 개야"

"그니까요 갈수록 사양이 많아지는 거 같아요, *HID(High Intensity  Discharge)에 LED 사양까지 얼마 전에 국내에는 LED Full AFLS 사양도 적용된 거 같던데요. 갈수록 많아지네요"

"이제 불만 켜지는 램프 시대는 끝난겨"

"봉래 씨는 좋겠다. 인도는 고급 사양이 없어서..."

"인도는 불만 켜지면 돼요 하하하, 백미러도 옵션이라니까요, 하하하 저번에 출장 갔다가 택시에 백미러 없는 거 보고 이상하다 했는데... 운전기사가 필요할 때마다 막대기에 달린 거울을 꺼내 밖으로 비춰보는 거 보고 기겁했잖아요"

"푸하하 진짜?"

"무슨 거긴 석기 시대가? 큭큭큭"


  팀 막내인 봉래 씨와 오전 휴게시간에 회사 내 산책로를 돌면서 머리를 식히고 있다. 본사 건물 뒤의 잔디가 깔린 축구장 주변으로 가든처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여러 가지 수목들과 조경석들로 잘 가꾸어져 있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단풍이 지는 걸 볼 수 있어 회사 안에서도 계절이 변하는 걸 느낄 수 있다. 들리는 소문에 회장의 부인이 조경사업을 한다고 한다. 휴게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많은 직원들이 이곳에서 산책을 하며 사담을 나눈다.


  자동차 램프 업계에도 많은 변화가 불어닥치고 있었다. 과거 불만 잘 켜지는 되는 줄 알았던 램프는 이제 최첨단 과학기술의 집합체로 변해가고 있다. 수십 년간 자동차의 불을 밝히던 필라멘트 전구(Halogen) 램프의 시대가 조금씩 저물어 가고 있다. 자동차 램프는 이제 온갖 전자 장치들이 결합된 복합 전장품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복잡해진 제품처럼 제품 견적도 만들기 힘들어졌다는 말이다. 원가 영업을 하는 담당자 입장에서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램프에 장착되는 여러 가지 전장품들의 원가를 산출하고 기술적인 부분들도 학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원하는 가격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신제품의 기능과 그에 상응하는 원가에 대한 지식을 숙지해야 한다. 그냥 달라는 데로 돈을 줄 고객이 아니다. 


"전대리! 오늘까지 AFLS 기술자료 중문으로 번역해서 북경 구매팀 청위한테 보내줘! 그리고 전화해서 상세히 잘 설명해주고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아놔~ 견적 자료가 갈수록 많아지는구만... 옵션율 5%(차종 전체 생산량의)로도 안되는데 투자비는 건질 수 있을랑가 멀라? 전대리 받아올 수 있겠지?"

"에... 예"

"SMC차종 네고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또 페이스리프트네, 그것도 슬슬 준비해야지 전대리!"

"에... 예"


  2만여 개가 넘는 자동차 부품 중에서도 자동차의 외관 디자인에 해당하는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은 다른 협력사들보다 더 바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동계열이나 내장 부품 쪽과는 달리 신차(풀 체인지 모델)가 출시되고 2~3년이 지나면 외관만 변경해서 부분변경 모델을 출시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봤을 땐 외관이 바뀌어 새로운 모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성능면에서의 개선은 크게 없다. 오히려 신차 출시 때보다 원가절감  소재나 부품을 적용해서 자동차 원가는 더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에게는 별다른 가격적 변화가 없지만 협력사들에게는 신차 출시 이후 해마다 요구되는 원가절감(CR:Cost Reduce) 압박으로 부품 납품 가격을 낮춰줘야 하는 것이 업계의 관행처럼 되어 있었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업체는 이 바닥에서 아웃되는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자동차의 눈에 해당하는 램프(Lamp)는 외관부품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기 때문에 페이스리프트(FACE LIFE : 부분변경) 모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체인지 부품이다. 그래서 램프 협력사는 정말 쉴 틈이 없다. 설계 담당자들은 신차 설계가 끝나기 무섭게 바로 또 페이스리프트 모델 설계에 착수한다. 물론 빨리빨리 바꾸는 것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1~2년이면 금방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때 즈음 확 바뀐 새로운 디자인으로 다시 소비자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한 번의 부품 개발로 5~6년을 우려먹는 외관에 가려진 부품들과는 달리 쉴 새 없는 제품 개발과 생산설비 변경 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세상을 밝히는 일이 쉽지 않아 그렇지?"


  과거 밤에 사무실에 남아 신제품 견적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최부장이 나의 어깨를 다독이며 했던 말이 기억난다. 어둠을 밝히는 자들은 어둠 속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양지가 밝다는 것은 음지가 짙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의 눈부신 램프 불빛 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램프의 불빛이 밝아지고 화려해질수록 그 뒤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이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것이다.


 세상이 밝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AFLS(Adaptive Front Lighting System, 지능형 전조등 시스템) : 차량 운행 중,  곡선로 운전 시야 확보 등 여러 가지 운전 상황의(도로 상태, 주행 상태) 변화에 대해 최적의 헤드램프(Head Lamp) 조명 상태를 제공하는 시스템


*HID(High Intensity  Discharge, 고강도 방전등) : 아크 방전식 전구의 일종으로서, (반)투명 융해 수정이나 알루미늄 튜브에 쌓인 텅스텐 전극과 아크 등으로 발광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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