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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09. 2020

행복은 어디에도 있지만 찾지 못할 뿐이다

팔공 남자 시즌 2-36

"ㅅㅅ 소설!"

"음... 섹스! 큭큭"

"아놔~ 난 왜 빨리 생각이 안나지"

"사슴, 순수, 상사, 수술 얼마나 많은데 넌 머리가 나쁜 거냐 순발력이 없는 거냐?"

"마셔라 ♪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C는 만상을 찌푸리며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토요일 저녁 C와 나 그리고 미숙이 동갑내기 셋이 경대 근처 어느 막창집에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다.


"야~ 씨X 나 안 해!"


  C는 짜증 섞인 말투로 GG를 선언한다. 녀석은 딸꾹질을 하며 자리에 일어서더니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한다.


"쟤 얼굴이 완전 홍당무가 됐는데, 안 따라 가봐도 되겠나?"

"괘안타 저 녀석 좀 토하고 나면 색깔 좀 돌아온다, 안 나오면 그때 가보지 뭐"


  미숙이와 C는 비공식적인 연인이 되었다. 그녀는 녀석의 힘든 타지 생활에 적지 않은 위안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원룸을 제집 드나들 듯 했다. 나도 모르는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었다. 주말 밤이면 가끔씩 우리 셋은 녀석의 비좁은 원룸에 모여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며 화투도 치고 영화도 보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둘은 원룸 침대에서 뒤엉켜 영화를 보는 모습이 오래된 부부같은 느낌이다.


  얼마 전 그가 내가 있는 원룸으로 찾아와 밤을 새우며 했던 취중진담이 떠오른다.




"나 미숙이가 좋은데... 근데... 싫다"

"그게 뭔 소리고?"

"좋긴 한데 싫다고!"

"미숙이랑 잤냐?"

"잤지~ 많~이 잤지"

"그럼 뭐 이제 둘이 사귀는 거야?"

"걔! 애 있더라"

"뭐!?"


   미숙은 미혼모였다. 이미 유치원을 다니는 딸이 있다는 것이다. 미숙을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날(팔공남자 시즌 2-27) C는 그녀의 집으로 갔다고 한다. 자정이 훌쩍 넘은 새벽 그녀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연립주택 3층까지 만취한 그를 부축해 올라가느라 진땀을 뺐다. 현관문을 열고 불 꺼진 적막한 집안으로 들어섰다. 미숙은 그를 현관 바로 옆방의 침대 위에 눕히고 돌아서려 할 때였다. C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아 침대로 끌어당겼고 그녀의 입술을 훔치고 그녀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술이 취하긴 했어도 성욕이 끓어오를 데로 오른 녀석은 그녀의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서로의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질 때였다.


"엄마?! 왔어?"


   C는 순간 움찔 하며 움직이던 손을 멈췄고 그녀는 검지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갖다 대며 녀석에게 침묵의 신호를 보냈다. 그는 술기운이 달아나고 정신이 뻐쩍 들었다.


"어~ 아직 안 잤어?"


 그녀는 방문을 살짝 열고 거실로 나가 아이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녀석은 숨죽여 빈방에서 밤을 지새우고 돌아왔다고 한다. 다음날 저녁 미숙은 녀석의 원룸으로 찾아왔고 그날 밤 못 이룬 질퍽한 정사를 치렀다고 한다. 녀석은 그날 밤 그녀와의 잠자리가 잊히질 않는다고 한다. 여태껏 만나본적 없는 여자였다. 그녀의 몸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둘은 서로의 살 냄새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는 녀석을 남성뿐 아니라 남자, 더 나아가 아빠의 역할까지 기대했던 모양이다. 아이와의 나들이에 를 등장시켰고 그는 내키지 않은 삼촌 역할을 해야 했다. 아이들은 자기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직감적으로 안다고들 하지 않던가? C는 아이에게 측은함은 느꼈지만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감정까지는 생기지 않았다. 아이도 그런 그를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상황을 힘들어했다. 그녀는 그와 같이 있길 원했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C는 둘 모녀 사이에서 그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 그만 만날까?"

"... 그래 그게 낫겠지? 서로를 위해서"


  둘은 세상이 원하는 바람직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둘은 입으로 헤어짐을 얘기했지만 밤이 찾아들면 몸은 서로를 갈망했다. 둘은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몸을 섞었고 미완성된 그림으로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헉헉! 이 녀석 완전히 골로 갔구만"

"자! 고생했다. 힘들지? 물 마셔"


  결국 시체가 되어버린 C를 둘러업고 그의 원룸까지 올라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버렸다. 미숙이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건넨다. 건네받은 물 한 통을 다 마셔버린다. C는 침대에 대자로 뻗어 방이 떠나갈 듯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아댄다.


"한 잔 더 할래?"

"여기서?"

"응"

"그... 그래 그럼 나 먼저 좀 씻을게"

"그럼 난 술상을 준비하께"


  샤워를 끝내고 나오니 작은 밥상 위에 놓인 프라이팬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콘치즈와 땅콩과 오징어가 캔맥주와 함께 놓여있다.


"야~ 때 미냐? 뭔 남자가 그리 오래 씻냐? 빨리 앉아"

"어... 언제 또 콘치즈를 만들었데?"

"너 샤워할 동안 사골국도 끓이겠다 이 자식아~"

"치이 이익 탁!"

"쨘!"

  

  그녀와 나는 좁은 원룸 방에 앉아 코골이 써라운드 음향 속에서 맥주캔 딴다. 한동안 좁은 방안에 술 넘기는 소리와 녀석의 코 고는 소리 그리고 가끔씩 음식을 씹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너 애 있다며?"


  내가 침묵을 깨뜨렸다. 콘치즈를 휘젓던 그녀의 젓가락이 멈췄다.


"어 그런데?"


  다음엔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 다시 침묵이 흐른다. 이번엔 그녀가 침묵을 깨뜨린다.


"놀랐나? 내가 미혼모라서?"

"음... 어..."

"왜 내가 불쌍해 보이나?"

"아... 아니"

"난 행복해 내 딸이 있어서"

   

  그녀는 나의 눈을 바라보며 입가에 얕은 미소를 띠며 말한다. 그 모습이 여태껏 보아왔던 여자와는 다른 평안함이 느껴진다.


"너도 너의 행복을 찾아! 저 녀석처럼 헤매지 말고"

"어?!..."

"자! 짠! 행복을 위해!"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침대 위에 뻗어 있는 C를 한번 바라보고는 맥주캔을 들어 올린다.

행복은 어디에도 있지만 찾지 못할 뿐이다. 그녀는 그 행복이 어디 있는지 찾은 듯 보인다.


 밤이 깊어간다.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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