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Sep 17. 2020

떡볶이와 러깐미엔(熱乾麪)

팔공 남자 시즌 2-58

"좀 먹어요 안 에스더"

"给我吧,我来给她吃吧” (줘봐요, 내가 언니한테 먹일게요)

"미안해요 모두들"

 

  퇴근길에 죽을 사서 안 에스더의 집에 왔다. 띠아오찬의 연락을 받았다. 안 에스더가 몸져누웠다고 한다. 마음의 병이 결국 몸에 병을 가져온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이 몸까지 병들게 한다. 죽은 자가 산자를 데려가려는 걸까? 오랜 시간 함께한 동반자의 빈자리는 어떻게도 채워질 수 없나 보다.


'임자 나도 곧 따라갈게'


   과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장례가 끝나고 장지(葬地)로 가기 전 이었다. 온 가족이 큰아버지가 두 손으로 받쳐 든 할머니의 커다란 영정사진 뒤를 따라 살아생전 생활하던 시골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곁으로 왔을 때 할아버지는 말없이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드려다 보셨다. 천천히 손을 들어 평안하게 미소 짓는 할머니의 얼굴을 더듬었고 입은 열었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 말을 할머니에게 하는 듯 보였다. 그땐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했을까 궁금했는데... 아마 할머니 곁으로 가려고 했던 말이 아니었나 싶다.

  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할머니 곁으로 떠났다. 반백년이 넘는 세월을 같이 한 동반자가 사라지자 견디기 힘든 슬픔과 허전함이 멀쩡하던 몸에 병을 가져온 것이다.  


  사람 인(人)은 두 사람이 기댄 선 모습에서 왔다고 한다. 인간은 기대설 누군가가 필요하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타인의 도움 없이 홀로 서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인생의 동반자를 찾아 헤맨다. 싫든 좋은 그 동반자에게 한 번 길들여지면 그곳에서 헤어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같이 했던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의 말과 행동은 뇌리 속에 깊이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기만 할 뿐이다.


"이렇게 나약해서 어떻게 목자를 한다는 겁니까? 자신도 제대로 못 추스르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를 하나님께 인도한다는 거예요?, 왜! 요한 따라 하나님한테 가려고요?"

"..."

"干嘛!大叔你说啥呀?”(아니!? 뭐라는 거예요 아저씨!)


  띠아오챤은 아픈 사람에게 도리어 화를 내듯 말하는 나를 당황한 표정으로 만류한다. 안 에스더는 나의 말을 듣고 나더니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숟가락을 들어 죽을 입안에 떠 넣는다.


”你为什么这样对待她呀?”(언니한테 왜 그런 거예요?)

“她不是需要我们的安慰和照顾,她需要刺激, 过去是过去回不去的,活者该活着不能跟死者在一起,她忘了她该做什么所以我就提醒她”(그녀는 위로가 필요한 게 아냐, 자극이 필요한 거지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되돌릴 수 없어, 산자는 살아야 해, 죽은 자와 같이 있을 수 없는 거야 그녀는 자신이 뭘 해야는지 잊어버린 듯해서 일깨워준 것뿐야)


  띠아오챤은 걷다 말고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선다. 몇 발 앞서 나간 나를 팔짱을 끼고 고개갸웃거리며 바라본다.


"干嘛?看什么?”(왜? 뭘봐?)

"大叔! 你什么像个孔子似的”(아저씨! 무슨 공자 같아)

"꼬르륵"

"饿了”(배고프네)

”我们吃点儿炒年糕和鱼饼怎样?”(우리 떡볶이랑 어묵 먹으러 갈까?)

“哇!快点儿去吧"(와우! 빨리 가요!)


  그녀는 신이 난 듯 펄쩍 뛰며 앞장선다. 대학가 분식집 앞에 서서 떡볶이와 어묵으로 허기를 달랜다. 그녀가 한국에 와서 한국 친구들을 따라간 분식집에서 처음 만난 떡볶이는 입에 넣자마자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매운맛에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연신 물을 들이키며 이렇게 매운걸 어떻게 먹냐며 한국 친구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랬던 그녀가 한국생활 1년 만에 한국의 달고 매운 떡볶이 마니아가 됐다. 떡볶이 생각만 하면 입에 침이 고여 참을 수가 없다며 포크에 떡볶이를 두세 개씩 꽂아 입안으로 쑤셔 넣고 있다. 입가는 이미 떡볶이 양념으로 벌겋게 코팅이 되었고 이마에선 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我最喜欢的韩国的小吃就是떡볶이!"(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떡볶이예요)

"我喜欢吃武汉的热干面”(난 우한 러깐미엔 좋아하는데)

“哇!真的?”(와! 정말요?)


    대학교 4학년 마지막 1년을 중국 우한에서 보냈다. 아침 등굣길에 곳곳에서 파는 빠오즈(包子), 씨판(稀饭), 또우장(豆浆), 요우티아오(油条) 그리고 차예딴(茶叶蛋)등은 이미 눈에 익다. 못 보던 음식이 보인다. 중국의 여러 곳을 다녔지만 아직 본 적이 없는 음식이다. 면은 면인데 알 수 없는 누런 소스와 잘게 썰린 파가 얹혀 있다. 그것을 젓가락으로 자장면 비비듯이 비벼서 먹는 우한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면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는 당장 그 맛을 확인해야 했다.

중국 아침식사 (상상-빠오즈, 좌상-시판, 좌하-짠지 , 중앙-또우장, 우상-요우티아오, 우하-차예딴)  

"老板! 这是什么菜?"(사장님 이거 무슨 음식입니까?)

"你是哪里人难道热干面都不知道?"(어디서 왔길래 러깐미엔도 몰라요?)

"热干面?我也来一碗"(러깐미엔? 저도 한 그릇 주세요)


  난 옆 사람이 비비는 모습을 보고 자장면 비비듯이 비비고는 입안으로 한 입 집어넣었다.


"우웩! 이게 뭐야! 퉤 퉤 퉤!"

  

  난 그 자리에서 입에 넣었던 러깐미엔을 모두 뱉어내었다. 자장면보다는 색깔은 연한 소스였지만 뭐 자장면 비슷한 맛이겠지 하고 생각하고 입에 넣었던 그것은 나에게 충격적인 맛을 선사했다. 사람은 기존에 먹던 음식들의 맛에 근거하여 다른 음식의 맛을 유추한다. 그 범주에 들지 않는 맛은 이상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 위에 얹힌 소스는 참깨소스였다. 걸쭉하고 텁텁한 소스가 덕지덕지 면이랑 섞여 입안에 달라붙는 느낌이 거북스럽다. 한자 그대로 덥고 건조한 면이란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이름이다. 입안에 잠시 사막을 가져다 놓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나는 몰랐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다는 사실을...


  러깐미엔은 참깨소스와 면이 섞여 입안으로 들어간 뒤 입안을 돌아다니며 침샘을 자극하면 흘러나온 침과 함께 뒤섞여 참깨장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건조했던 면발의 느낌은 어느새 촉촉하게 녹아든 소스와 함께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 속에 무짠지를 몇 개 넣어 새콤함을 더한다. 그 맛을 알고 난 후부터 매일 아침 일어나면 찾게 되는 음식이 되었다. 나중에는 등굣길에 중국 학생들처럼 자전거를 타고 가며 러깐미엔을 먹는 신공을 터득하기에 이르렀다.


"哇  你完全变成武汉人了 哈哈哈, 我也好想念吃热干面"(와! 완전 우한 사람 됐네요 하하하, 나도 러깐미엔이 그립네요)

"明年春节回家吃就行嘛"(내년 설날 집에 가서 먹으면 되지)

"我不能回去"(갈 수가 없어요)

”为什么?”(왜?)

“我如今没有地方可回了”(나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요)


 떡볶이와 고향 얘기로 웃음꽃이 피었던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종이컵에 담긴 어묵 국물을 들이키며 입안을 씻어 넘긴다. 그리고 옆에 놓여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두세 번 돌려 뜯어내어 양념으로 코팅되었던 입술을 닦아낸다. 닦아낸 입술은 매운 떡볶이 양념에 화가 난 듯 닦아도 붉은 기운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녀는 등을 돌려 인도로 걸어 나간다. 어두워진 표정과 축 쳐진 뒷모습이 그녀에게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을 예상케 한다.


 "谢~大叔,我吃饱了 下次我请!再见!”(고마워요 아저씨 배부르게 잘 먹었어요. 다음엔 제가 살게요 )


  누구에게나 향수를 불러오는 음식이 있다. 그녀는 떡볶이로 러깐미엔의 향수를 견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리더(Leader)와 보스(Bos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