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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25. 2020

구하는 자

팔공 남자 시즌 2-59

"쾅쾅쾅!"


   원룸 현관문을 강하게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머리맡에 핸드폰을 더듬어 확인한 시간은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다. 


"아놔 ~ 씨X! 또 어떤 자식이 또 술 처먹고 남의 집 문을 두드리고 난리야!"


    대학가 근처 원룸에는 가끔씩 술에 취한 대학생이 집을 잘못 찾아 남의 집 잠금 도어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거나 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특히 3월의 대학교 개강 시즌이 되면 그런 꽐라 된 대학생들의 주사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한 번은 새벽에 한 청년이 집 앞의 고분 위에 올라가 확성기를 들고 헤어진 애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노래를 부르는 심야 라이브 쇼를 하는 통에 주변 주민들이 밤잠을 설친 적이 있다. 경찰이 와서 그를 끌어내리려 하자 바지를 내리고 고분 위로 올라오려는 경찰들을 향해 오줌을 갈기는 모습에 한바탕 폭소를 자아냈다. 그 청년은 내가 서있는 베란다 쪽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며 소리치는 통에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알고 보니 그 청년의 여자 친구가 바로 나의 옆집에 사는 여자였던 것이다. 그의 전 여자 친구는 방에 불을 끄고 끝내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고 그 사건이 창피했는지 얼마 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야! 송혜교! 얼굴값만 하는 줄 알았더니 몸 값까지 하냐!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무슨 일을 하는지 옆집 여자는 항상 늦은 새벽시간에 귀가하는 듯 보였고 한 번도 얼굴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이사를 하는 옆집 여성과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그가 소리 질렀던 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뭐 어쨌든 또 어느 취객의 알콜성 치매로 단잠을 깨어 기분이 좋지 않다. 나가봐야 좋을 게 없다. 그냥 조용히 사라지길 바라며 이불을 덮어썼다. 


"쾅쾅쾅, 大叔! 是我貂蝉开门啊!” (아저씨! 나예요 띠아오챤! 문 좀 열어줘요)

"헉! 이 시간에 띠아오챤이?"


  들리는 목소리는 띠아오챤이 분명해 보인다. 뭔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다소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온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성큼 다가간다.


"띠아오챤?"

"是! 大叔! 你快点儿开门,好不好?”(예 아저씨 빨리 문 좀 열어요)


   나는 잠긴 문을 열었고 그녀는 가죽 미니스커트에 쇄골이 다 드러나 보이는 달라붙은 니트를 입고 얼굴엔 짙은 화장이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기에 범벅이 되어 얼룩져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니트는 누군가가 심하게 잡아당겼는지 한쪽으로 늘어나 그녀의 브레이지어 한쪽이 드러나 보일 정도이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현관으로 뛰어들어오고는 문을 닫아버린다. 그리고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문고리를 잡은 채 현관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有什么事?你鞋子呢?” (무슨 일이야? 신발은?)


  그녀는 대답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거친 숨을 내쉬며 숨을 고른다. 그녀는 맨발로 뛰어왔는지 스타킹을 입은 발바닥은 흙이 잔뜩 묻어있다. 


"大叔! 你帮我拿点水好吗?” (아저씨! 물 좀 줄래요?)


 나는 얼른 냉장고로 가서 생수를 컵에 따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한 번에 물을 다 들이켜고는 현관 문고리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서 방안으로 발을 옮긴다. 


"미안 아저씨! 느즈은 시가네..."

"무슨 일이야? 도대체?"

"今晚我睡在你家可以吗?”(오늘 밤 아저씨 집에서 자도 돼요?)

“你先说一说,到底什么事? 又是上次那些私人放贷家伙们?” (우선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 설마 또 접때 그 사채업자들이야?)

“不是”(아녜요)

“那么...”(그럼...)

“我先洗一洗,好不好?"(우선 좀 씻으면 안 될까요?)

  

  그녀는 욕실로 향한다.  발바닥을 다쳤는지 한 쪽 발을 바닥에 제대로 닿지 못하며 절뚝거리며 욕실로 들어간다. 그녀가 욕실로 들어가고 샤워기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난 이 상황이 과거의 기억을 다시 상기시키며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오늘 잠은 다 잤구만, 내일 출근해야는데... 아하~'


  한참을 있다 물소리가 멈추고 욕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그녀가 문틈 사이로 고개만 내민다 젖은 젖은 머리를 잡은 손 아래로 물기가 흘러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大叔 给我简单的衣服好吗?”(아저씨 간단히 입을 옷 좀 없어요?)


  나는 옷장 서랍에서 흰 티셔츠와 반바지를 꺼내 그녀가 욕실 문 사이로 내민 손에 쥐어준다. 그녀는 잠시 뒤 머리엔 수건을 두른 채 욕실에서 나와 몇 걸음 절뚝거리더니 방바닥에 주저앉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발바닥을 매만진다.


"我脚掌好像被划伤了吧”(나 아무래도 발바닥을 다친 것 같아요)


  나도 방바닥에 앉아 그녀의 발바닥을 살핀다. 그녀는 맨발로 뛰어오다 무언가 깊고 날카로운 것에 베어 살과 살이 벌어져 붉은 속살에서 핏물이 세어 나오고 있다. 난 소독약과 연고를 바르고 밴드로 벌어진 살을 붙여준다. 그녀는 적지 않는 통증에도 내가 그 일을 끝낼 때까지 조용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现在怎么样?"(이제 어때?)

"还好 谢谢!”(괜찮아요 고마워요)


  그녀는 내가 붙인 밴드를 만지며 나와 상처 부위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연다.


"大叔! 你能帮我吗?”(아저씨!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그녀는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표정과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응시하며 말한다. 그녀의 그 한마디는 그녀가 여태껏 그 누구에게도 꺼내보지 못했던 말인 것 같아 보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나는 대답 대신 다시 물음을 먼저 던질 뻔했지만 다행히 말이 터져 나오기 전에 멈칫하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 시편 70:5 -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어렵다. 그 어려움을 알기에 거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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