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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26. 2020

프로 직장러가 되는 길

팔공 남자 시즌 2-60

"어이! 전대리! 뭐하냐?"

"에... 예?"

"이제 대놓고 멍 때리나? 아놔! 아침에 내가 얘기했던 헤드램프(Head Lamp) *방담(Anti-fog) 삭제 원가절감 효과금액 자료 정리 다 했나?"

"아.. 아뇨, 아직..."

"아쒸! 그거 부사장님이 지시한 거라 내가 급하다고 얘기했잖아? 와~ 나 미치겠네 오전 내내 앉아서 뭐 한 거야?"

"죄... 죄송합니다. 빨리 해서 드릴게요"

"며칠 조용했드만 또 약발이 떨어졌나? 꼭 욕을 처먹어야 손발이 움직이나? 아메바에서 이제 좀 세포분열 좀 하는가 싶었더니... 됐고 시간 없으니까 일단 자료 넘겨! 내가 할라니까"

"아닙니다. 제가..."

"됐다니까! 참 낼 자동차 본사 가는데 출입 신청했나?"

"아! 아직... 바로 하겠습니다."

"아놔! 어휴~ 좀 있다 보자!"


  구 과장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쉰다. 그는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는 걸 알기에 컴퓨터 화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는 방담 관련 자료를 그에게 메일로 전달한다.


"전대리!"

"예?!"

"우리 팀 비품 수요 조사 자료 정리 다 됐어?"

"아... 아직..."

"뭐 하는 거야? 총무팀에서 빨리 보내라고 그러는데, 별 것도 아닌 거 좀 빨리 해줘라!"

"네..."


  뒤에 앉은 주차장 아니 주 팀장은 고개만 뒤로 돌려 나에게 묻는다. 나는 힘없이 대답하고 잠시 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척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구 과장은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전날 밤 일 때문에 아침부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길게 빨아들이고 뿌연 연기를 하늘 위로 내뱉는다. 연기 속에 띠아오챤이 맨발로 골목길을 뛰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게 다 사실이야?"

"..."


  띠아오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떨군 고개 아래로 눈물이 떨어진다.


   몇 개월 전부터 집에서 보내오던 생활비가 끊기고 부모와의 연락이 닿지 않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받아온 한도 무제한의 국제 신용카드도 사용 중지되었다. 돈 걱정이라고는 태어나서 해본 적 없는 그녀는 씀씀이가 쉽게 바뀌지 않았고 별 일 아닐 거라 생각하고 일단 사채를 빌려 썼던 것이다. 금방 생활비가 다시 들어올 줄 알았지만 소식이 없었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채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결국 살던 최고급 오피스텔과 포르쉐 그리고 명품백들을 모두 뺏기고 유흥업소 일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그녀는 부모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보모의 손에서 자란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 짜여진 육아 플랜과 엘리트 커리큘럼에 맞춰 자라온 그녀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부모와 그 시스템에 가장 격하게 반항했다고 한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유럽과 미국의 명문대로 유학을 갔지만 자신은 한국을 선택했고 그것도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인 대구로 온건 순전히 부모에 대한 반항심이었다고 한다. 대구를 선택한 건 그녀가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이 송혜교였는데 그녀의 고향이 대구라는 다소 황당한 이유에서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우한시 당위원회 당서기로 후베이 지역의 최고위 공무원이었다. 그는 중국 중부 내륙 지역 유지(有志)로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있었다. 당시 중국 정치관료들의 부정부패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것에 연관되지 않은 공무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만연해 있었다. 먼지 털어서 안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었다. 중요한 건 털리느냐 안 털리느냐이다.  

  

   새로 집권한 중국의 새 국가주석이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당시 공청단 출신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태자당의 현 집권세력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특히 중국 내륙지방의 실권을 쥐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를 중앙정부에서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새 정권은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치경쟁 세력들을 축출해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도 그 중 하나로 희생되었고 어머니도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얼마 전 외삼촌으로부터 어렵게 연락이 닿아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도 곤경에 처한 상황이라며 해외로 도피해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는 그녀에게도 신변의 안전을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중앙정부에서 관련 인물들을 모두 색출해 잡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날 밤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명의 중국 괴한들에게 미행을 당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또 사채업자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녀는 이어폰을 낀 채 음악을 듣는 척 흥얼거리며 골목길을 걷고 있었지만 곧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음악을 정지시키고 뒤쪽으로 귀를 기울였고 그들이 중국말을 주고받는 걸 들었다. 그들은 그녀의 뒤를 밟으며 거리를 좁혀왔고 둘 중 하나가 그녀의 니트를 잡았을 때 그녀는 평소 사채업자들이 오면 쓰려고 준비한 고추냉이 스프레이를 그들의 얼굴에 뿌렸고 하이힐을 벗어 머리를 후려치고 맨발로 뛰어왔다고 한다.


  그녀는 그녀의 집이 이미 노출됐을 거 같아 도저히 집으로 갈 수가 없어서 나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헉! 벌써 7시가 다되어 가네"

"꼬르륵!"

"배고픈가 보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밤을 새워버렸다. 그녀는 소리가 나는 배를 만지작 거린다. 나는 시리얼과 우유를 가져와 간단히 아침 밥상을 만든다.


"一大早吃这么冷的东西对肠胃不好”(아침부터 그렇게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위장에 안 좋아요)

“我没关系已经习惯了,中国人不习惯吃冷的吧,那我把牛奶热一热给你?”(난 익숙해서 상관없어, 중국인은 차가운 거 먹는 습관이 없지, 우유 데워 줄까?)

“算了吧”(됐어요)

“那我也就去习惯吧,反正我也已不能再回中国” (나도 습관 들여야죠, 어차피 이제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그녀는 시리얼이 담긴 그릇에 우유를 붓고는 숟가락으로 허겁지겁 퍼먹는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우고는 침대로 가서 대자로 눕는다.


"와~ 好饱~ 好困啊~ 大叔!我可以谁在这里吗?" (배부르다~ 아 졸려~ 아저씨 나 여기 자도 되죠?)

“可...可以, 我得上班了你休息吧我下班回来再说吧” (그... 그래, 난 출근해야 돼서 퇴근하고 오면 다시 얘기하자 쉬어!)

"好吧! 那我就睡了” (알았어요! 난 자요!)


  나는 그녀가 눈을 감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의 머리맡 쪽 방구석으로 가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는다.


"큭큭큭"

"야! 你不要看了” (보지 마!)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의 고함에 그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더 크게 웃는다. 더 이상 지체했다간 지각이다. 아침부터 또 험한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 현관문을 열고 뛰어나간다.



 

다행히 지각은 하지 않았지만 간밤에 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결국 이곳 저곳에서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다. 몸은 회사에 있지만 뇌는 아직 어젯밤 나의 방에 머물러 있다.


  눈 앞 모니터에 띄워진 여러 개의 엑셀(Excel) 파일과 윈도 창처럼 나의 머리는 아직 공과 사을 구분해서 멀티태스킹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밀려드는 온갖 사이드 잡(Job)과 개인적인 상념들로 잠시도 무언가에 집중을 할 수 없다. 컴퓨터의 CPU가 듀얼코어에서 쿼드코어로 발전해 가듯이 직장인의 머리도 따라가야 한다.


  프로직장러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방담(Anti-Fog) : 자동차 램프의 렌즈 안쪽면에 별도의 코팅을 함으로써 램프 안과 밖의 온도 차이로 인한 이슬과 습기가 렌즈에 맺히는 것을 방지하는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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