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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06. 2020

타인을 위한 기도

팔공 남자 시즌 2-64


"어이! 전대리! 너 도대체 고객사 회의 가서 무슨 얘기를 하고 온 거냐?"

"예?! 무슨 일이라도?"

"아놔! 개념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원가절감 회의에 가서 가격 인상 얘기를 하는 놈이 어딨냐? 그리고 니가 협력사 직원들 선동했다며?" 


  이틀간의 원가절감 TFT 활동이 끝나고 완성차 전장구매팀에서 DG오토모티브는 차후 원가절감 회의에 참석하지 말라는 통보가 떨어졌다. 회의에서의 나의 행동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나로 인하여 원가절감 활동이 협력사의 애로사항 접수 회의로 바뀌어 버렸다. 


  잠시 뒤 영업본부장인 부사장의 호출이 이어졌다. 


"전대리, 내가 왜 자네를 불렀는지 알고 있나?"

"예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물의를 일으켜서"

"무슨 물의를 일으켰지?"

"고객사 회의에서 소란을 일으킨 것 때문 아닌가요?"

"그게 소란인가?"

".... 그럼?"

"잘했네!" 

"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와서 나의 어깨를 다독이며 나를 올려다본다.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대가 한 것 같네"

"예?!" 


  직장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속에서 갇혀 안일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모한 도전은 않게 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오늘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말과 행동을 미룬 체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에 인기척이 없다.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헉! 이게 다 뭐야! 띠아오챤!?"


  순간 머릿속에 불안한 예감이 엄습한다. 그녀의 핸드폰은 꺼져있다. 쑨샹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녀도 띠아오챤의 행적을 알지 못한다.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벨을 눌러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안 에스더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정말요? 띠아오챤이 없어졌다고요?"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띠아오챤의 집 앞으로 나타났다. 황급히 뛰어온 모양이다. 그녀의 이마엔 땀이 맺혀있고 가쁜 숨을 헐떡인다. 그녀도 띠아오챤의 이름을 외치면 집 문을 두드려본다.


"아놔! 또 지랄들이네, 야! 조용히 좀 살자 제발! 아놔 어째 저년 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냐?"

"아저씨! 혹시 이 집 아이 들어오는 거 보시지 않으셨어요?"

"저기 아저씨! 그게 무슨 말이죠?"

"그만 씨부리고 좀 꺼져줄래? 그 새끼들은 모르겠지만 니들 정도는 내가 간단히 주물러 줄 수 있거든!"

"예? 그 새끼들이란 게 누구죠?"


   누군가가 띠아오챤의 집을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띠아오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리가 없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몸을 의지하러 왔다. 그리고 나의 방이 아수라장이 된 건 다른 외부인이 침입했다는 증거다. 그녀는 그 침입자들에게 납치를 당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옆 집 남자는 귀찮은 듯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난 현관문을 잡는다. 그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난 뒷주머니를 더듬거리다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지폐를 3장 꺼내 그에게 건네며 띠아오챤의 집에 찾아왔다는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물어본다. 그는 눈을 깔고 턱을 들어 올리며 나의 지갑 속을 쳐다보며 남은 만원 지폐 두장마저 쏙 빼내간다. 


"항상 들락거리는 떡대 좋은 놈들이 있지, 나도 왕년엔 잘 나갔었는데... 딱 보면 알지 뭐하는 놈들인지 알지, 사채 돌리고 간도 쓸개도 빼내가는 놈들이지 뭐 보나 마나"  

"어이~ 형씨! 내 얘기하는 거요? 쓰읍! 저 양반이 덜 맞았구만"

"헉! 쿵!"


  계단 밑에서 떡대 좋은 사내 둘이 올라온다. 그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문을 걸어 잠가버린다. 


"니들 뭐야? 뭔데 이 짱개 년 집 앞에서 얼쩡거려? 그 년 어따 숨겼어?"

"짱개 년이라뇨? 말이면 다인 줄 알아요!"

"쿵!"


  떡대들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다. 한 녀석은 팔에 깁스를 또 다른 녀석은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다. 둘의 얼굴은 거즈와 밴드로 곳곳이 도배되어 있고 그나마 보이는 부분도 피멍이 들어있다. 그 떡대 중 팔 깁스를 한 녀석이 다른 쪽 팔로 안 에스더의 어깨를 밀친다. 그녀는 벽에 부딪쳐 바닥에 쓰러진다. 


"상황 파악 못하네 이년이! 우리 짱개 년 때문에 지금 스팀이 많이 올라 있거든... 그년이 사람까지 풀어서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거든... 내가 그 짱개 년은 어떻게든 잡아 족치고 만다."

"야! 뭐하는 짓이야!"

"퍽!"


  그 모습을 본 나는 그 녀석을 덮칠 듯 다가섰고 떡대는 몸을 틀어 주먹으로 나의 턱을 날린다. 순간 턱이 돌아가며 나의 몸은 나무토막처럼 바닥으로 떨어진다. 턱에서 전달되는 진동이 뇌까지 전달되며 뇌의 전원을 꺼뜨려버린다. 


"희택 씨!"

"아놔! 이 좆만 한 새끼까지 덤비네 이제, 내가 지금 상태가 이래도 너 같은..."


  머릿속 화면이 사라지고 귀속으로 들려오던 떡대의 음성마저도 끝까지 들리지 않고 꺼져버린다.  

  



"희택 형제! 정신이 좀 들어요?"

"여기가...?"

"병원이에요 괜찮아요?"

"아~ 머리가..."


  눈을 뜨는 순간 머리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무언가가 목 전체를 꽉 잡고 있다. 눈동자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안 에스더의 얼굴 보인다. 그녀는 볼은 피멍이 들어 있고 입술은 터져있고 마른 핏자국이 보인다. 


"뇌진탕이래요! 쓰러질 때 머리를 바닥에 세게 부딪쳤어요. 다행히 경미한 수준이라 좀 쉬면 회복될 거래요"

"그 녀석들은?"

"도망갔죠, 내가 어떻게 해보려 달려들었다가 보시다시피 나도 나가떨어졌어요 하하"

"그랬군요..."

"도대체 띠아오챤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


  그녀의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진실을 얘기해야 하는 순간이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빛을 바라볼 때면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된다. 마치 하나님 앞에 속죄하는 죄인 같은 기분이랄까?


"이제 힘든 일이 생기면 같이 해요, 알겠죠? 제가 힘들 때도 같이 했잖아요"


   그녀는 나의 얘기를 듣고는 나지막이 말을 꺼낸다. 그리고 나의 손을 잡는다. 


"우리 띠아오챤을 위해 기도 할까요?"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위한 기도밖에 없다. 우리는 삶 속에 많은 일들을 겪지만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땐 기도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되어버런다. 

   

  자신을 위한 기도에만 익숙했던 나는 이제 다른 누군가를 위한 기도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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