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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07. 2020

빈자리는 채워지고 기댄 자는 홀로 선다

팔공 남자 시즌 2-65

"냐아옹!"


  나와 안 에스더는 경찰에 그녀의 실종신고를 냈고 한 달이 다되도록 그녀의 행방은 묘연했다.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 띠아오챤의 집 문을 따고 들어갔다. 집주인은 몇 달 동안 밀린 집세 때문에 더 이상 이대로는 놔둘 수 없다며 엄포를 놓았고 결국 안 에스더와 나는 그녀의 집을 정리했다. 


  방안으로 들어서니 푸른 눈의 회색털의 러시안 블루 고양이가 뼈 가죽만 남은 채 앙상한 모습으로 힘겹게 다가와 나와 안 에스더의 발등을 비비고는 그 자리에 힘없이 털썩 주저앉는다. 며칠을 굶은 모양이다. 안 에스더는 녀석의 사료를 찾아 그릇에 담아 녀석에게 가져다주었고 녀석은 힘겹게 일어나 사료에 입을 댄다.


"불쌍한 녀석~ 도대체 며칠을 굶은 거니? 넌 이름이 뭐니?"

"먼지래요"

"먼지?!"

 

  안 에스더는 힘겹게 사료를 먹는 녀석의 야윈 몸을 쓰다듬어 준다. 먼지는 공기처럼 어디에도 존재한다.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환영받지 못하는 먼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적지 않다. 띠아오챤 또한 먼지처럼 나타났다 먼지처럼 사라졌다. 먼지만 남겨둔 채...


"这个世界太可怕,姐姐很温暖,大叔很神秘”(세상은 무섭고, 언니는 따뜻하고, 아저씨는 신비롭다)


  그녀의 방을 정리하다 책상 위에 펼쳐진 다이어리에 적혀있는 글귀는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먹먹함이 찾아든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그녀에게 나와 안 에스더가 유일한 안식처이자 기댈 곳이었던 모양이다.


"근데 저 고양이는 어쩌죠?"

"안 에스더가 데려가요"

"제가요?"

"냐아옹!"

"쟤도 에스더가 좋은 모양인데요 하하"


  고양이도 그녀를 새로운 집사로 선택했는지 그녀에게 다가와 몸을 비비고는 그녀를 올려다본다. 그녀도 웅크리고 앉아 녀석을 바라본다. 녀석은 초승달 모양으로 감긴 눈을 한 채 그녀의 뺨을 핥는다.

 

"그럼 띠아오챤이 돌아올 때까지 쟤가 돌볼게요"

"그래요,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그녀는 '먼지'를 쓰다듬다 나를 올려다보며 말없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인다. 죽은 연인의 빈자리를 먼지가 대신하려 한다. 먼지도 집사의 빈자리를 그녀에게 허락한 듯 보인다. 그렇게 서로는 서로의 빈 옆자리를 채워주는 존재가 되었다.




"나 다음 주에 떠난다."

"진짜? 어딜 가려고?"


  모처럼 C가 나를 찾았다. 그는 결국 대구를 떠나기로 결심한 듯 보였다. 그의 첫 사회생활은 그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상처만 남긴 채 끝나는 듯 보인다. 타지 생활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던 친구가 떠나가려 한다.


"이제 뭐하려고?"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일하면서 임용 준비하려고"

"이미 맘먹은 듯 하니 내가 더 이상 뭐 해줄 말이 없네, 갈 곳은 정했고?"

"응... 부산 집에 내려가긴 좀 그렇고, 일하면서 좀 모아둔 돈으로 경기도로 가려고 전에 학교 근처에서 일하면서 임용 스터디하려고"

"그래..."


  힘들고 지칠 때 떠날 수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현재의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내려놓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이 떠도는 것인지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변화를 두려워한다. 변화하지 않기에 고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현재까지 쌓아온 자신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환경과 관계 속에서 자신을 다시 쌓아가는 것이 두렵다. 나 또한 그렇기에 지금의 현실을 부여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쌓아온 경력과 연봉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기대하는 시선들 속에서 나를 잃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세상의 시스템은 저항이 거세어지려 하면 안정의 달콤함을 하나씩 던져주며 현실에 안주하도록 만든다.


"야! 니도 그렇게 힘들어하지 말고 떠나라! 세상에 먹고살 데가 어디 거기밖에 없겠나?"

"음..."


'야! 남자가 그렇게 약해서 어디에 쓰냐? 세상이 그리 만만하냐? 어딜 가나 다 똑같다!'


  옛날 같았으면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지친 걸까? 그런 말이 쉽게 튀어나오지 않는다. 나 또한 안정과 변화의 가운데서 고민하고 있다. 세상이 말하는 안정 속에서는 내적(內的) 고통이 찾아들고 변화 속으로 뛰어들려하면 외적(外的) 고통이 기다린다는 것을 안다.  


"미숙이는 어쩌고?"

"난 연애에는 소질이 있어도 애 아빠에는 소질이 없어서 하하하"


   둘은 이미 헤어짐을 예감하고 만났을지도 모른다. 결말을 알면서도 같이 할 수 있다는 건 잠시라도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가 절실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둘은 그 외로움이 미련과 집착이 되기 전에 끊어내려는 듯 보인다. 결국 바로 서지 못한 서로는 잠시 서로에게 기대어 서 있었는지 모른다. 기댄 자는 다른 이가 떠나면 쓰러지기 마련이다. 이제 다시 바로 서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바로 서지 못하기에 홀로 선자는 기댈자를 찾고 기댄 자는 홀로 서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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