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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17. 2020

아저씨! 고마워!

팔공 남자 시즌 2-70

"找个地方再喝一趟吧!”(다른 데 가서 한 잔더 하시죠!)

“我不要了,我喝够了”(아뇨! 전 이미 많이 마셨어요)

“哎呀!男子汉嘛!喝酒喝到底, 不醉不归!”(아이고! 싸나이가 한 번 마시면 끝장을 봐야죠, 취할 때까지 마십시다) 

“我不行!我要回家!”(전 더 이상 안 되겠어요! 집에 갑니다)

 

  베이징 왕푸징의 화려한 밤거리, 고층 빌딩들과 각종 네온사인들이 화려한 불빛을 내뿜고 있다. 그 불빛들이 윤곽을 잃고 내 눈 안으로 들어온다. 고개를 흔들어 보지만 불빛과 사물의 윤곽은 잠시 선명해지는 듯하더니 다시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지고 진동하며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청위와 나는 거나하게 취해서 밤거리로 나왔다. 집에 가려는 그를 붙잡으려 손은 뻗어 옷깃을 잡으려 하지만 허공만 움켜쥔다. 강력한 중국 빠이주는 나의 공간 감각마저 상실케 만들었다. 청위는 길가에 서서 택시를 잡아타고 창문을 열더니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사라진다. 난 멍하니 서서 멀어지는 택시를 바라본다.


"아놔! 저 자...쉭! 빨리도 도망가네! 빼도 박도 못하게 보내버렸어야 하는데... 우.. 우욱"


  속이 좋지 않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가로등을 붙잡고 속을 비워낸다. 위 속의 그것들이 중력을 거스르고 역류할 때면 수명이 줄어드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정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은 더 이상 음식도 똥도 아닌 애매한 존재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많은 인간들은 그런 애매한 존재로 변해가는 듯하다. 물론 나 또한 그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어! 띠아오챤?!"


  눈앞에 그녀가 들어왔다. 술기운 때문에 눈에 헛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건가 하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본다. 차도 반대편 바닥에 웅크린 채 앉아있는 소녀는 다시 보아도 그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비틀거리며 도로를 가로질러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다.


“빵빵빵! 빵빵!”

"빵빵! 他妈的! 你疯了!你找死啊?”(씨 X! 미쳤어? 죽고 싶어 환장했어?)


  횡단보도가 아닌 대로를 가로지르다 아찔한 순간을 모면한다. 그렇게 도로를 넘어 반대편 인도에 닿았다. 이상한 건 그녀는 내가 다가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인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그녀가 맞다는 확신도 커져간다. 그녀는 때가 시커멓게 탄 흰 점퍼를 입고 종이박스 위에 앉아있다. 그녀의 앞에 그녀처럼 웅크리고 앉았다. 그녀의 눈은 나를 바라보지만 눈에 초점이 없다.


"貂蝉!”(띠아오챤!)


  그녀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당황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고개를 휘젓는다.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는 괴성을 지르며 도망가려 한다. 그녀는 얼마 가지 못해 인도의 보도블록 턱에 걸려 넘어진다. 그녀는 넘어지며 벗겨진 신발을 찾으려 두 손으로 주변 바닥을 더듬는다.


"没事吗? 你到底发生了什么事?” (괜찮아? 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녀는 나의 물음에 대답을 않고 목에서 괴상한 소리만 내뿜는다. 다시 바라본 그녀의 눈동자는 희뿌연 안개로 덮여있다. 나는 그녀의 신발을 집어 그녀에게 건넨다. 그녀는 신발을 품에 안고 다시 도망가려 할 찰나, 나는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는다. 목안에서 울리는 괴성과 함께 몸부림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나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한겨울 베이징 번화가 인도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몸을 움츠린 채 발걸음을 재촉하며 길바닥에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우리 둘을 무심한 표정으로 스쳐 지나간다.


"퍽!"

"허억!"


 복부에 가해지는 강한 충격에 순간 숨을 쉴 수가 없다.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엎어진다. 갑자기 등장한 한 무리의 패거리 중에 체격이 좋은 한 녀석이 페널티킥을 차듯 나의 배를 걷어찬 것이다. 


"你是什么东西呀?”(넌 뭐하는 놈이냐?)

“滚开!你别再靠近她要不然你会见到上帝呀,知道吗?”(꺼져! 너 다시 또 얘한테 얼쩡거리면 하나님 만나러 간다, 알겠냐?)

“이 개새끼들! 니들 도대체 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这家伙在说什么啊?”(이 자식 뭐라는 거야?)

"야아 아악! 그녀에게서 손떼!"

"퍽!"


  나를 걷어찻던 덩치가 띠아오챤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끌고 가려는 것을 보고는 소리치며 녀석을 향해 몸을 날린다. 안타깝지만 옆에 있던 다른 놈이 눈치를 채고는 손에 들고 있던 각목으로 나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다. 다른 무리들이 쓰러진 나를 짓밟는다. 머리에 맞은 충격으로 몸의 신경들이 마비되었는지 발길질의 충격으로 몸은 이리저리 요동치지만 통증도 없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조금씩 흐려지는 시야 속에 띠아오챤이 울부짖으며 나를 향해 양 손을 휘저으며 덩치에게 끌려가고 있다. 


  거리의 행인들은 이제 구경꾼이 되어 몰려들지만 누구 하나 선뜻 도와주려는 이가 없다. 멀리서 어렴풋이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희미한 시야 속에는 사뿐히 콧등에 내려앉는 눈송이가 보인다. 화면은 꺼지고 어둠이 내린다.


  어둠 속에 하얀 눈이 내린다.  그 속에 띠아오챤이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소리친다.


"大叔!谢了!” (아저씨!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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