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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15. 2020

사람을 얻어야 돈이 따라온다

팔공 남자 시즌 2-69

"하~아! 희택 씨 이러지 말아요!"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제 감정을 속이는 것이..."


  안 에스더의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녀는 나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쳐 보지만 나의 완력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몇 번의 시도 끝에 경직된 몸이 이완되기 시작한다. 나는 그녀의 목덜미를 입술로 깨문다. 그녀의 목이 뒤로 젖혀지며 깊은 신음이 터져 나온다. 그녀의 목을 타고 올라간 나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에 포개어지려는 순간 그녀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나는 다시 그 입술을 쫓아간다. 그녀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입술을 내어준다. 나는 그녀의 몸을 감고 있던 팔의 힘을 풀고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포시 감싸듯 쓰다듬는다. 나의 입술은 다시 그녀의 목선을 따라 내려오며 그녀의 쇄골에 닿는다. 그녀의 살 냄새에 콧 속으로 스며들며 서서히 취해간다. 얼굴을 쓰다듬던 손은 어느새 쇄골에 걸쳐있는 하얀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한다. 호흡이 빨라지는 듯 그녀의 앙가슴이 부풀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한다. 그녀의 한쪽 눈가엔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빠빠빠빠 빠빠라 빠빠 빠빠빠!"

"헉! 뭐야~ 꿈인 거야? 너무 생생한데... 헉~ 이게 뭐야?"


 기상나팔 알람 소리에 벌떡 잠에서 깨어난다. 이불속 아래쪽에 불쾌한 축축함 느낌이 전해온다. 들춰본 그곳은 축축하게 젖어있다. 


 "아놔! 어이가 없네... 나이 서른이 넘어서 몽정을 다하네. 희택아! 참 너도 참... 아니다 내가 미안하다. 쩝... 근데 왜 하고많은 여자 중에 하필 안 에스더냐?  참... "


 오랜 기간 배출되지 못한 나의 유전자들이 주인의 무방비를 틈타 탈출에 성공했다. 나는 불편한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한다. 샤워를 하고 속옷을 빨았다.


"아~ 이러다 비행기 시간 늦겠는데..."


  침대 시트는 일단 세탁기 속에 구겨 넣어버린다. 오늘 아침 첫 비행기로 중국 출장을 가야 한다. 양산차종 가격 네고부터 헨리 사의 지분 매각 건으로 중국 현지에서 대응할 일들이 적지 않다. 주 팀장은 일단 나를 현지로 보내고 구 과장이 국내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른 아침 공항은 비즈니스를 위한 출장자와 여행객들로 분주하다. 아침의 일로 기분이 찝찝하다.


"띠리리리링"

"헉! 안 에스더 목자네?"


  지은 죄도 없는데 죄지은 사람처럼 한참을 망설이다 통화버튼을 터치한다.


"여.,. 여보세요?"

"희택 형제! 미안해요 아침부터 연락해서..."

"아.. 아녜요, 근데 무슨 일이세요?"

"사실 좀 전에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어요! 띠아오챤이 중국으로 출국을 했다고 하는데요?"

"예?!"

"헐! 그게 말이 돼요? 다른 내용은 없고요?"

"제가 어제 어디로 누구랑 출국했는지 물어봐도 가족이 아니라 알려줄 수 없다는 얘기만 하는데요"

"예..!?"


   아침의 사건보다 더 찝찝한 기분이다.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찝찝한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고 사람이 사라졌는데... 그 사람은 말도 없이 귀국을 했다니...


"Good morning! passengers. This is the pre-boarding announcement for flight KE144 to Beijing...." (안녕하십니까 승객 여러분. KE144 베이징행 항공편의 사전 탑승 안내드립니다...) 


  탑승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제 사적인 상념들을 접고 공적인 프로세스를 돌려야 할 시간이다. 출장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노트북을 열고 양산 차종의 최종 견적서를 점검한다. 


"程昱!的确是没问题吧? CFC车种的前大灯构造太复杂组立时间没法缩短”

(청위! 틀린 게 없죠? CFC차종의 헤드램프 구조가 너무 복잡해서 조립시간을 단축하기가 힘들어요)

喜宅!我看组立人员布置的不太恰当还有他们还没熟练的样子,是否刚招的人不?

(희택 씨 내가 보니 조립 인원의 배치가 적절하지 않은 듯한데요 그리고 그들은 아직 작업이 숙련되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신입직원들 인가요?)


  베이징 한국 자동차의 구매담당인 정욱이 베이징 DG오토모티브의 공장 실사를 왔다. 사전에 준비된 실사 계획대로 그를 해당 차종의 양산라인으로 안내한다. 그는 내가 제출한 견적서 상의 각 공정 가공비(노무비+경비)를 확인한다. 그는 손에 든 스마트폰의 타임워치 기능을 이용해서 사출 및 조립 라인의 C/T(Cycle time)을 집중적으로 확인한다. 


  베이징 한국 자동차는 국내에서 적용되는 원가 표준이 없다. 한국 자동차의 부품 원가 표준은 오랜 기간 축적된 내부 기술자료이다. 국내에서는 1차 협력사와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항으로 원가 표준을 견적 산출의 기본 자료로 적용하지만 중국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 자동차의 내부 기술자료를 베이징 자동차와 공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중국 관리자들도 한국 자동차의 원가 표준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대외적은 물론 대내적으로도 표준 적용을 거론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 표준은 한국의 산업구조 및 현실이 반영되어 중국 현지와는 적잖은 괴리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베이징 한국 자동차는 양산차종 부품 단가를 결정할 때 대부분 과거 차종의 부품단가를 기준으로 그 이외에 변동 사항은 공정 실사와 검증 자료를 통해 결정한다. 그 말은 구매담당자의 재량이 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국내는 원가 표준이 타이트하기 때문에 구매단가 결정 유동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구매원가보다 양산 전 결정된 설계원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来来!喝酒吧!”(자자! 마셔요!)

"不喝不喝,你喝吧!我喝茶代酒,行吗?” (아니 아니, 희택 씨 마시세요. 전 대신 차를 마실게요 괜찮죠?)

“哎呀!小程,上次你不是说过我们俩当作朋友的吗?”(아이고, 청위, 저번에 나에게 우리 친구 하자고 하지 않았어요?)

“所以呢?”(그래서요?)

“有句话说,酒逢知己千杯少嘛!”(중국에 그런 말이 있다죠, 술이 친한 친구를 만나면 천 잔도 부족하다!)

“哈哈哈! 厉害厉害”(하하하! 역시 대단하시네요)

”给我点儿面子 好不好?”(내 입장도 좀 알아주셨음 해요 어때요?)

“好吧! 那我喝点儿吧” (좋아요! 그럼 조금만 마시죠)


  공정 실사가 끝나고 구매담당 청위를 저녁식사 자리로 초대했다. 최초 총경리와 공장장도 같이 자리하는 연회를 준비했으나 청위의 계속되는 거절로 인해 결국 나와의 초촐한 저녁식사로 대체되었다. 


  영업 담당자는 어떻게든 구매담당자를 구워삶아야 한다. 제품의 기술력과 품질이 그 가치를 매기는 중요한 척도이긴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어필하느냐는 결국 영업 담당자에게 달렸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품질을 가졌어도 물건의 사주는 사람의 마음을 잡지 못한다면 결국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산업자본주의 시장의 현실이다. 


  사람의 얻어야 돈이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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