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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19. 2020

인간 위의 인간 그 위의 신

팔공 남자 시즌 2-71

"헉! 깨어났네? 喂! 护士! 快过来!他醒了 어... 어~이! 정신이 좀 드냐? " (저기! 간호사! 빨리 이리로 좀 와봐요 그가 깨어났어요)

"아... 아... 구과장님?! 어떻게..."

"야! 괜... 괜찮냐? 날 바로 알아보는 거 보니 정신이 나가진 않은 거 같네"

"여기가...?"


  뒤통수에 깨질듯한 통증과 함께 눈에 들어온 건 구과장이었다. 실망스럽다. 다시 눈을 감고 싶다. 얼마 동안 누워있었던 것일까? 등짝이 뻣뻣하게 굳은 느낌이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병원이지!"

"야~ 너 삼일 동안 의식 없이 동안 누워있었어! 우린 니 식물인간 된 줄 알았다"

"정말요? 참! CFC 네고는...?"

"나 원참! 니가 그거 얘기할 때냐? 신경 꺼! 내가 다 마무리했으니까"

"죄... 죄송합니다"

"야! 좀만 일찍 일어나지!"

"예?!"

"너희 부모님한테도 알려버렸는데... 지금쯤 비행기 타셨겠네..."


  잠시 뒤,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온다. 의사는 놀란 표정으로 나의 눈알을 까뒤집으며 여러 번 확인하고도 의심스러운지 병상 옆에 있는 알 수 없는 기계의 화면을 이리저리 체크한다.


"真不可思议啊!"(정말 불가사의하네!)

“医生! 他没事吧?我看他记得我是谁,这就是他脑袋没有问题,是吧?”(의사 선생님! 얘 괜찮은 거죠? 제가 보기엔 나를 기억하는 걸로 봐 선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맞죠?)

“可...可以这么说吧”(음... 그런 거 같네요)

”하여튼 중국 의사들 돌팔이가 한 둘이 아니라니까?"

"예?!"

"아니 이 인간 니가 다시 깨어나기 힘들 거라고 호언장담하듯 말하더니 이제 말 바꾸네"


  내가 얻어맞은 각목에 못이 박혀있었다고 한다. 그 못이 두개골을 뚫고 대뇌까지 파고들었다고 한다. 당시 나의 상태는 심각했고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의식불명 상태로 깨어나기 힘들 거라 했고 만약 깨어나는 기적이 생길지라도 대뇌 손상으로 기억이나 사고판단에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술 후 3일 동안 의식 없이 누워있었다. 다들 식물인간이 된 것으로 단정 지었다. 이상한 건 3일의 시간이 나에게 왜 그렇게 오랜 시간처럼 느껴지는 걸까? 마치 30년을 넘게 지나온 듯한 기분이다. 더 이상한 건 그 오랜 시간 중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기억나는 것이라고 그 시작의 순간만 다시 떠오를 뿐이다.


"아! 띠아오챤!"

"뭐!?"

"띠아오챤 어딨어요?"

"다짜고짜 뭐라는 거야?"


  나는 병상에서 몸을 일으킨다. 온몸을 감싸고 있던 말라붙은 석고가 갈라지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엄습한다. 그 느낌은 마치 아직 다 아물지 않은 상처부위에 올라온 딱지를 억지로 떼어내는 듯 통증을 수반한다. 통증으로 긴 신음 섞인 탄성이 터져 나온다. 침상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찾아 신고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간다. 느린 걸음걸이는 조금씩 빨라지더니 이내 뛰어내려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구 과장은 그런 나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师傅!去王府井吧!”(기사 아저씨! 왕푸징으로 가주세요!)


  나는 택시를 타고 3일 전 그 사건의 현장으로 간다. 혹시 모를 띠아오챤의 행적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실락같은 기대를 안고 택시에 올랐다. 택시기사는 환자복에 머리엔 하얀 붕대를 감고 있는 나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초저녁 왕푸징에는 수많은 인파들이 오고 간다. 거리에는 성탄을 알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진다. 그때서야 비로소 오늘이 성탄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어떤 종교도 인정하진 않는 공산주의 세상에도 성탄의 분위기는 찾아온다. 다만 빨간 날이 아닐 뿐이다. 인파를 비집고 찾아간 그날 밤 그 자리에 그녀는 없다. 그녀가 웅크리고 앉아있던 박스 조각만 두툼한 하얀 눈 솜에 덮여있다. 그것으로 봐서 그녀는 그 날 이후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걸 예감케 한다.


"으흐흐~ 얼어 죽겠네"


  너무 춥다. 베이징의 한 겨울 살을 파고드는 추위에 환자복을 입고 두툼한 인파 속에 홀로 서있다. 나는 근처 카페를 찾아들어간다. 띠아오챤이 앉았던 그 박스가 잘 보이는 카페의 창가에 앉아 뜨거운 모카라테 한잔에 얼어붙은 몸을 녹인다. 크리스마스 저녁 카페 안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 속에 하얀 환자복을 입은 나는 그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나는 아랑곳 않고 그날의 그곳을 응시하며 혹시 나타날지 모를 그녀를 기다려 본다.


'그녀는 어떻게 됐을까?'


 혹시 나 때문에 더 큰 변을 당하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내 몸 하나 지키지 못하는 나약한 내가 그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괜한 객기를 부려 그녀를 더 아프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통스럽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 잠언 22:7 - 


 이 거대한 인간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저항할 수 없는 인간의 힘이 작용한다. 그 힘의 원천은 돈과 권력으로부터 나온다. 그 힘 앞에서 겉으론 초연한 척 하지만 실상은 결국 그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 힘을 추종하고 굴복하기에 다수의 대중들에 의해 그렇지 않은 자들까지도 결국 그렇게 되고 만다.


 궁지로 몰린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인간의 힘을 초월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신을 추종한다. 인간 위의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신밖에 없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힘이 없는 자는 신을 숭배하여 믿으며 힘이 있는 자들은 신을 두려워하며 믿는다.


  오늘 그 수많은 인간들이 신이 보낸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가족과 연인 그리고 친구들과 모여 그 축복을 받고자 한다. 신은 인간을 모으고 하나 되게 한다. 그것이 신의 힘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신도 나를 버리진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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