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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12. 2020

눈을 치켜뜨다

팔공 남자 시즌 2-73

"전대리! 진짜 살아 돌아왔네!"

"뭐 완전 멀쩡한데... 다시 살아 돌아온 기분이 어때?"

"사고 소식 듣고 다들 전대리님이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정말 다행입니다."

"야~ 전대리! 정말 불사신이야, 머리에 쇠못이 박혀도 살아나고..." 

"어이! 전대리 이제 일 좀 해야지, 새 생명을 얻었으니 이제 좀 달라진 모습으로 일 좀 잘해보자!"


  나의 복귀에 해외영업팀 식구들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나를 맞이한다. 그 와중에도 항상 찬물을 끼얹는 건 역시나 구과장이다. 근처 타 부서 직원들도 나의 소문을 들었는지 나의 자리를 기웃거리거나 멀리서 바라보면 수군거린다. 이런 대중의 관심이 낯설다.


  자고로 사람들의 관심을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고를 치는 것이다. 일을 잘해서 혹은 선행을 많이 해서 세간의 관심을 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믿기 힘든 사고나 충격적인 악행은 단시간에 세상의 관심을 독차지하기 마련이다. 


"전대리, 정말 괜찮은 건가?"

"예, 괜찮습니다. 부사장님!"


  영업 본부장의 호출에 찾아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더니 가볍게 나를 안고 등을 다독여주는 것으로 나를 맞이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구만 정말 하늘이 도우신 듯 하구만, 나도 한 때 간암으로 저세상 갈 뻔했었지 뭣도 모르고 나 잘난 척 날뛰다가 사형선고를 받았지... 불행은 정말 예측할 수 없이 순간에 찾아오는 것 같더군. 다행히 지금은 이렇게 완쾌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그 불행이 없었더라면 난 아마 아직도 옛날 개망나니 모습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을 걸세 허허허"

"아... 부사장님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자네에게도 분명 이번 일이 삶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 어쨌든 이렇게 다시 살아 돌아온 걸 환영하네, 다시 열심히 해봄세!

"예 말씀 감사합니다."

"참! 인사팀에서 찾는 거 같은데 한번 가보게!"

"예"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에 다가서면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헛되이 살아온 것을 후회하며 자책한다. 하지만 이미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삶 속에서 쌓아온 그 모든 것들이 의미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과거 사소하게 여겼던 누군가와의 짧은 시간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다른 것에 밀려 잊혀진 것들은 지금 쌓여있는 무언가를 위한 당연한 희생이었지만,  그 희생은 지금 쌓아놓은 것들로는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에 후회한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 속에서 무엇이 선택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대부분 그 선택의 판단 기준이 물질적 풍요에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머리와 몸은 따라가지 않는다. 최적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다른 것들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죽음에 다가갔던 자들은 종종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곤 한다. 죽음의 목전에서 떠올렸던 후회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신념 같은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셨어요? 전대리님,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시원한 이마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여자는 처음이다. 그 매끈하고 하얀 이마 양쪽으로 흘러내린 짙은 갈색 생머리가 이마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보통 수컷이 암컷을 향한 시선은 얼굴을 제외하곤 대부분 성적 호감을 자극하는 부위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물론 상대방이 거북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동하지만 오래 머물거나 자주 찾는 곳은 정해져 있다.  나 또한 보통의 수컷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상하게도 그녀를 볼 때면 그녀의 이마에서 시선이 멈춰있곤 했다. 그러면 그녀는 눈을 순간 치켜뜨며 손을 이마 쪽으로 가져다 댄다. 그러면 나는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쯤이었다. 

  밤새 눈이 엄청 쌓였다. 기숙사 아파트 문을 열고 나와 내려다본 세상이 온통 하얀 솜을 덮은 듯하다. 


"아쒸! 이건 뭐 차가 눈 속에 파묻혔구만!"


  논두렁 옆에 주차해놓은 차는 하얀 솜이불에 덮혀 잠자고 있다. 도로로 나가는 논두렁 길이 눈으로 덮여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도저히 자차로 출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럴 때 차를 끌고 나갔다간 일이 터지기 마련이다. 차를 포기하고 아파트 뒤쪽으로 걸어 나간다. 그곳에는 회사 통근 버스가 정차한다. 마침 통근 버스가 올 시간이었다. 서두르면 충분히 탈 수 있는 시간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집고 걸어간다. 아파트 뒷문을 통과해 나지막한 내리막 길을 5분여 걸어가면 또 다른 논두렁길이 나온다. 그곳에 통근버스가 정차한다. 기숙사에 사는 생산직 직원이나 아직 자차가 없는 신입사원들이 주로 이용한다. 나같이 경력 있는 사무직 직원들은 사실 통근버스를 탈 일이 거의 없다. 출근이야 통근 버스를 이용한다지만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사무직에게는 귀가할 차가 없다. 


   아파트 뒷문 쪽에는 아침 햇살에 눈이 녹아 앞서 지나간 사람들의 발걸음에 눈과 흙이 믹싱 되어 마치 초코쉐이크처럼 변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쉽지 않다. 멀리 앞 쪽에 아이보리색 코트를 입은 한 여자가 그 길을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나는 그녀와의 거리를 좁혀간다. 그녀는 아파트 내리막길과 또 다른 논두렁 길이 만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정류장 팻말이 세워져 있는 곳에 멈춰 섰다. 머지않아 나도 그녀의 옆에 멈춰 섰다. 그녀는 고개를 내밀어 버스가 오는 방향을 바라본다. 


  그때 그녀의 얼굴이 눈 안에 들어왔다. 아니 그녀의 하얀 이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이마를 응시하고 있는 나를 눈치챈 그녀는 눈을 치켜뜨며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댄다. 순간 나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런 나를 언짢은 눈으로 흘겨본다. 그녀는 어그부츠를 들었다 놨다 하며 덕지덕지 들러붙은 진흙을 떼어내려 애를 쓰고 있다. 나는 길가에 떨어진 나무 꼬챙이를 주워 구두에 묻은 진흙을 긁어낸다. 그리고 그녀에게 꼬챙이를 건넨다. 어그부츠를 바라보던 시야에 들어온 꼬챙이에 고개를 들어 나를 다시 쳐다본다. 언짢던 눈은 의아한 눈으로 바뀌었다. 


"고... 고맙습니다."

"길이 엉망이죠? 아스팔트라도 좀 깔아주던지 하면 좋을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DG 신입사원인가 봐요? 전 해외영업팀 전희택 대리입니다."

"아! 대리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전 인사팀 신입 배유진입니다."

"같은 신입이네요"

"예?!"

"경력 신입! 하하하"

"아?! 네 하하하"


  그녀와의 첫 만남은 하얀 눈밭과 하얀 이마 리고 눈을 치켜뜨던 모습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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