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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28. 2020

윈(Win) 앤 루즈(Lose)

팔공 남자 시즌 2-80

[대리님 정말 다 칠하셨데요]

[칠한다고 했잖아요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다리는 좀 어때요?]

[예, 걷는 게 좀 힘들 뿐이죠 덕분에 엘리베이터 타고 다녀요 하하하]

[헉! 진짜요? 완전 부럽네요]


   월요일 아침 그녀가 사내 메신저로 말을 걸어온다. 그녀가 일하는 인사팀은 가장 위층인 5층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는 기획팀부터 재무팀 등 회사의 회사의 경영관리 관련 핵심 부서들이 모여있고 회장실과 사장실이 같이 위치해 있다. 회사 본관에는 엘리베이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회장 전용이다. 일반 직원들은 이용할 수 없으며 특별한 귀빈이나 물건 운반 등의 특별한 사유로만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3~5층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항상 계단으로 오르내리느라 불만이 많다. 


  그녀의 다리 부상을 목격한 사장의 배려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쳐다보는 수많은 직원들의 시선에 때문에 이용하기가 부담스럽다고 얘기한다. 보통 직원들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회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부분 엘리베이터 앞을 지날 때 문이 열리면 자동 반사적으로 목례를 한다. 그런데 회장이 아닌 목발진 그녀가 등장하니 서로가 당황스럽다.


"어이! 전대리 누구랑 채팅하길래 그래 실실거리노?"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니가 이래 쪼개고 있을 때가? 고객사에서 중국 로컬업체도 입찰에 참여시키겠다고 하는데..."

"..."

"중국 업체들 단가 맞추려면 이제 공장 이익률은 우짤껀데?"

"차라리 그냥 중국 업체한테 신규 차종 수주 넘겨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말이가 방구가? 너 머리에 물들어 갔냐? 말을 그냥 생각없이 막 하네 이제"

"예 그게..."

"야! 됐고 신규 차종 날아가면 어째 되는지 모르나?"


  신규 차종 수주는 중요하다. 공장의 매출과 공장 가동률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업체와 가격경쟁으로 기존의 단가 수준을 대폭 낮춰서 입찰을 따낸다는 것은 기존에 자사의 램프 납품 단가가 과다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꼴이 되며 그러면 기존 다른 차종의 램프 단가에 대한 의구심을 고객에게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중국 로컬 램프 업체들의 품질 수준이나 관리 대응 능력은 아직 미숙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한국의 협력사들은 이미 국내에서부터 이런 시스템에 잘 트레이닝되어 있지만 현지 중국 업체들은 그렇지 않다. 기존 중국 완성차의 시스템과 비용을 생각하고 들어왔다가 심각한 품질 및 관리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다분하다. 더욱이 한국 기업의 협업관리 시스템도 그들이 맞춰갈리 만무하다. 완성차 내부 관리직 한국 직원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럼 자사의 품질 및 관리 능력이 우수성을 반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기다려 주지 않는 법이다. 올해 사업계획에 맞는 매출과 이익을 달성해야 한다. 거기에 영업본부장과 해외영업팀장 그리고 중국 담당인 구 과장의 인사고과가 걸려있다. 확률이 정확하지 않은 곳에 배팅하며 자신의 앞길에 재를 뿌릴 사람은 없다. 당장의 실적만이 중요할 뿐이다. 장기적인 회사의 미래는 다른 이가 책임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고객사의 품질 조건이 까다로워져서 최종 완성품에 대한 납품 램프 앗세이의 반품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다. 램프의 품질 조건이라는 것이 점등이나 수밀, 내열 등을 기능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외관에 대한 문제이다. 사실 기능적인 불량은 안전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에 설계단계에서 철저히 관리되어 양산 단계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불량이 외관의 사소한 스크래치나 표면처리의 사소한 잡티(탄화, 이물 등)를 트집 잡아 전체 앗세이를 반품 처리한다. 최근 입고 불량 수치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었다. 거기서 발생하는 비용이 상당하다. 공장의 이익률도 눈에 띄게 줄어든 상황이다. 그렇기에 매출이라도 더 보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품질에서 돈 좀 찔러 넣고 해야는데... 돈을 안 쓰니 어디 사람을 움직일 수가 있나"


  구 과장의 뼈 있는 혼잣말이 안타까운 현실을 얘기한다. 중국 직원들의 월급은 한국의 1/3 수준이다. 중국 직원들은 회사 월급으로만 먹고살려면 하루살이 삶 밖에 유지하지 못한다. 중국 회사원의 급여 수준과 집값의 괴리는 한국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회사 봉급으로는 평생을 벌어도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없을 정도이다. 다른 주머니가 없다면 평생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중국 직원들은 딴 주머니를 찬다. 회사에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회사 돌아가는 걸 아는 직원들은 딴마음을 먹기 마련이다. 회사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한다. 회사에 새는 돈이 한 두 푼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고객사 담당자를 달래야 하는 경우가 관례적이다. 다 보고 배우는 것이다. 회사에 야망을 품은 중국 직원은 회사의 급여를 올리기 위해 고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내 다른 캐시 파이프(Cash pipe)를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에 혼심을 다한다. 그것이 직장인으로서 부를 축적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인간이 로봇이 아닌 이상 감정을 가지고 일을 하기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말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협력사에게는 없던 배려과 관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들의 호주머니를 두둑이 채워주면 품질 불량 수치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상납해야만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과거 회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서 불량 비용을 줄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었다. 


"이제부터 회사에서 일체의 로비 비용을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얼마 전 북경 총경리의 선포로 고객사에 공식적으로 배정한 접대 및 로비 예산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들 사이에 원성이 터져 나왔다. 고객사 담당자들의 비공식 불만이 협력사에게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접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라는 곳은 수많은 인간들의 이해관계가 엮여있다. 누군가가 이익을 보려면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한다.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직장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고 그 길에 익숙해져 벗어나지 못한다. 재수가 좋아 문제가 불거져 터지기 전에 탈출하면 다행이다. 그럼 또 누군가는 희생당한다. 

  

  겉으로는 고객과 협력사의 상생과 윈윈(Winwin)을 들먹이지만 윈(Win) 앤 루주(Lose)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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