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 남자 시즌 2-84
"대리님 저기 들어가 봐요"
"아!? 저긴 좀..."
그녀는 나의 팔목을 잡으며 [불가마]라고 적힌 방으로 끌고 간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노약자, 임산부 및 심신미약자는 출입을 삼가해달라는 문구가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숨이 턱 막혀온다. 불가마 방 안쪽 벽은 황토로 덮혀있다. 방 모양이 마치 키세스 초콜릿 속 같다. 바닥에는 볏짚으로 엮인 돗자리가 깔려있다.
"아... 너무 뜨근하고 좋다 그쵸 대리님?"
"헤에... 어휴... 그건 뭐 찜통인데... 후~"
그녀는 평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혀 불가마 방안의 열기를 즐기는 모습이다.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커질 대로 커진 땀방울이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상기된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 아래로 그녀의 하얀 목선이 나의 눈 안으로 들어온다. 흘러내린 땀으로 찜질방 옷의 목주변이 젖어간다. 그녀는 미동도 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부처가 되려나보다. 내 몸 속은 열기로 달아올라 곧 폭발할 것 같다.
"아~ 도저히 안 되겠어요 유진 씨 저 먼저 나가볼게요"
"앗! 그럼 같이 나가요"
불가마를 나와서도 몸 속에 스며든 열기로 호흡이 답답하다. 나는 곧 바로 얼음방으로 향한다. 얼음방 안은 남극의 이글루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다. 곳곳에 설치된 냉각 파이프 아래로 고드름이 얼어있다. 나는 고드름을 손에 잡고 손바닥으로 나의 몸속 열을 밖으로 빼낸다. 동시에 입을 벌리고 방안의 냉기를 가슴 깊이 빨아들인다.
"대리님, 손 시리지 않아요?
"아뇨 찹찹한 게 너무 좋은데요"
"하하하 더운 거 정말 못 참으시나 봐요"
"예~ 몸에 열이 많아서..."
"난 추운 거 잘 못 참는데... 너무 부럽네요 전 겨울만 되면 손발이 너무 차요. 아~ 추워!"
"추워요? 난 너무 시원한데"
"저랑 완전 반대네요"
"그러네요 하하하"
"하하하"
남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모습에 관심을 느낀다. 물론 비슷한 모습에 더 큰 호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비슷함은 시간이 지나면 지루함으로 변해버리기 쉽다. 서로 다른 모습과 성향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나의 장점이 상대방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나의 단점은 상대방이 보완해주는 그런 이상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이 가지지 않은 장점에는 호감을 보이지만 가지고 싶지 않은 이질적 성향은 없애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상대방을 통해 필요를 충족하려고만 하지 불필요도 수용해야 하는 불편은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혹자는 불필요를 수용하지 않으려 필요를 포기하기도 한다.
사랑의 감정이 싹틀 때는 필요한 호감 먼저 발견되고 그것만 크게 부각되어 다가온다. 이후 사랑이 실현되고 익숙해지면 불필요가 부각된다. 이젠 상대방이 가진 고유의 성질을 바꾸려 한다. 사실 자신의 성질을 바꾸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랑은 상대방의 변화를 꿈꾸다 조금씩 식어간다.
"아! 너무 맛있어요. 역시 땀 흘리고 먹는 식혜랑 계란이 최고죠"
"그렇죠 많이 먹어요~"
"자 대리님!"
그녀는 삶은 달걀의 껍질을 다 벗기고 윤기 있는 탱탱한 속살을 드러낸 계란을 소금에 찍어 나에게 건넨다. 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색한 표정으로 계란을 건네받는다. 주변에는 커플로 보이는 남녀들이 쌍쌍이 앉아 다정하게 식혜와 달걀을 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한 입 베어 문 계란 속 노른자가 입안 곳곳을 뒤덮으며 목이 메이기 시작한다. 손을 내밀어 쟁반에 놓인 식혜가 담긴 플라스틱 물통을 잡으려는 순간 그녀와 손이 닿는다.
"앗! 대리님 먼저 드세요"
"아 근데 어느 게 내 빨대였더라?"
"아하~ 그러네요 빨대가 똑같네요, 전 상관없어요"
"음... 난 상관있는데... 자 이게 내 거예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대리님 보기와는 다르게 깔끔하시네요"
식혜가 담긴 물통에 주둥이에는 두 개의 빨대가 꽂혀있다. 나는 식혜를 길게 한 모금 빨고 마시고는 빨대 주둥이를 구부려 놓는다.
"저 미국 있을 때 겨울 방학 때마다 한국 오면 꼭 이 찜질방에 오곤 했어요"
"... 예?!"
"이상하죠?"
그녀는 손에 든 계란을 바라보며 무슨 상념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아까 물어보셨죠 왜 미국의 좋은 대학 나와 한국에 그것도 이곳 대구까지 왔냐고요?"
"..."
"대학은 길러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간 것뿐이에요"
"그게 무슨..."
그녀는 두 부모를 가졌다. 낳아준 부모와 길러준 부모. 그녀가 4살 되던 해 아버지가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돌아가셨다. 그날은 그녀의 4번째 생일이었다. 그녀는 동물이 나오는 동화책을 즐겨봤다고 한다. 그리고 목이 긴 기린을 유독 좋아했고 가난한 형편에 그녀를 동물원에 자주 데려가 줄 수는 없었고 생일날 아버지는 그녀를 위해 기린 인형을 샀다고 한다. 인형 선물을 일하는 동안 공사 현장의 한구석 가방 속에 놓아두었던 모양이다. 깜빡하고 가방을 두고 온 아버지는 집에 와서 그 사실을 알고 울고 있는 자신을 위해 늦은 밤 다시 공사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어둠 속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가방을 찾아 나오다 그만 실족으로 30m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과 이후 출입이 금지된 현장을 무단으로 들어간 이유로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세상 떠나버렸고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 함께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가세가 기울고 방세도 제대로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 어머니와 한 동안 찜질방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어머니가 처음으로 자신을 동물원으로 데려가 기린을 보여 줬다고 한다. 한 손에는 하얀 솜사탕을 들고 기린 우리 앞에서 서서 넋을 놓고 기린을 바라보며 웃음 짓고 있던 그녀는 엄마가 사라진 것도 몰랐다고 한다.
그녀는 고아원에서 1년간을 생활하고 미국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한국계 미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그동안 받지 못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냈다. 한국계 어머니 덕분에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유독 책을 좋아한 그녀는 양부모가 고아원에서 왔을 때 책장 앞에서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며 혼자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에 양부모는 그녀를 데려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양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오로지 공부에 시간을 쏟아부었다.
"공부 열심히 한 대가로 방학 때는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죠. 뭐 일종의 양부모와 나와의 딜(Deal)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래서 방학 때마다 한국에 왔어요 그리고 내가 태어난 곳 이곳 대구에서 방학을 보냈죠. 어린 시절 어머니랑 찜질방을 돌아다닌 기억만 생생하네요 그때 엄마가 까주던 계란과 식혜가 어찌나 생각나던지..."
"아... 그런 거였군요"
"대리님한테 처음 얘기하네요"
"그런데 왜 저한테 이런 얘기까지..."
"음... 글쎄요 뭐 분위기랑 타이밍이 절묘했다고나 할까요? 하하하"
"..."
그녀는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며 손에 들고 있던 계란을 입안으로 집어넣고는 오물오물 씹어먹는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슬픈 사연을 듣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사연에 위로와 동정의 감정을 느끼며 심각한 표정이 된 나의 모습과는 다르게 환하게 웃으며 계란을 먹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그녀의 옆모습이 클로우즈업되며 눈 안으로 가득차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