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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Dec 12. 2020

같은 노동 다른 계급

팔공 남자 시즌 2-85

[전대리 오늘 일과 마치고 7시까지 시지에 XX포차로 와! 구 과장한테는 적당히 다른 핑계 대고 나와]


 주 팀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냥 말로 하면 될 것을 굳이 쪽지를 보낸다. 그는 참 비밀스럽다. 무슨 일을 하든 혼자서만 비밀스럽고 뭔가를 감추는 듯한 태도는 팀원들로 하여금 신뢰가 가지 않게 만든다. 자신이 팀장이면 팀원에게 당당히 얘기하면 되는데 굳이 다른 팀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하는 행동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6시쯤 되니 주 팀장은 사무실을 조용히 빠져나간다. 그는 퇴근하거나 외근을 나갈 때도 말없이 사라진다. 팀원들은 그래서 항상 그의 위치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급한 결재 건이 있거나 할 때 낭패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구과장님, 오늘 먼저 좀 퇴근해 보겠습니다"

"어이! 전대리 왠 일?!"

"저녁에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서요"

"오! 이제 연애 시작하는 거가? 그래 결혼은 해야지 가봐"

"예 그럼 수고하세요"


   퇴근시간이라 차가 붐빈다. 늦은 시간 한적한 시골 밤길만 달리다가 이른 퇴근에 어색하다.

술을 마셔야 할 거라는 걸 알기에 영대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지하철을 타고 시지로 나간다. 

그가 말한 XX포차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팀장님"

"아냐! 괜찮아 앉아, 참! 구과장한테는 뭐라고 나왔어?"

"그냥 뭐 약속 있다고 하고 나왔는데요"

"그래? 그냥 순순히 보내주디?"

"예"

"그 녀석은 참 속을 알 수 없단 말이야"


'전 당신 속도 잘 모르겠는데요'


"참 내가 갑자기 불러서 놀랐지? 그러고 보니 전대리랑 따로 이렇게 술 마시는 건 처음이네"

"네 그러네요"

"자! 한 잔 받아"


  그는 소주잔을 나에게 건네며 소주병을 든다. 그가 소주병을 놓자 나는 잽싸게 병을 집어 그의 빈 잔을 채워 넣는다. 그는 나와 잔을 부딪치고는 소주를 목구멍으로 한 번에 털어 넣는다. 나는 그가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걸 보고 몸을 반쯤 틀어 소주를 들이켠다. 마침 안주가 나온다. 커다란 접시에 새빨간 육회 꽃이 피었다. 그는 젓가락을 들어 육회를 한 점 집어 참기름에 찍어 입안으로 넣는다.


"먹어봐 이 집 육회가 좋아"

"예, 잘 먹겠습니다"

"보직 변경 신청했다던데..."

"아!? 팀장님이 어떻게..."

"전대리! 회사에 비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 건 윗선에서 팀장까지 알게 모르게 다 내려와 뭐 회사에서는 개인 비밀 유지 보장이라면서 자율적으로 애로사항이나 순환보직 신청하라고 하지, 그거 다 뻥이야! 그런 거 하면 다 알아 그리고 결국 당사자에게만 불이익이야. 회사가 뭐 그리 호락호락하냐? 조직생활 적응 못하는 거 티 내는 직원 누가 좋아할 거 같아?

"..."

"난 전대리가 그래도 좀 생각이 있는 줄 알았는데... 뭐 구과장 때문에 힘든 건 알지만 뭐 회사 생활 안 힘들게 하는 사람이 어딨냐?"

"뭐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뭐? 그럼 뭔데?"

"그냥 제가 생각하던 해외영업이 아닌 것 같아서요, 업무 성격도 저와는 안 맞다는 생각을 그전부터 해왔습니다."

"아~ 참..."


  그는 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조용히 잔에 소주를 채우고 혼자 들이킨다. 그리고 이번엔 육회 여러 점을 한 번에 집어 입안으로 구겨 넣고 우걱우걱 씹어먹는다. 나는 조용히 잔을 들어 1/3쯤 남은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전대리 이제 직장생활 몇 년차지?"

"전 직장까지 하면 5년 차입니다."

"음... 근데 아직 직장생활에 적성을 따지고 있어?"

"예?!"

"이제 니 적성을 업무에 맞춰야 되는 거 아냐?"


  세상에 대부분의 직장인은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아다니지만 결국 직장에 맞는 적성으로 바꾸어간다. 직장이 대부분 거기서 거기인 세상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인간으로 변해간다. 마치 공장에서 찍혀 나온 기성 제품처럼...


  여러 가지 고유한 성질을 지닌 원재료들이 모이고 섞여 하나의 동일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제조 공장처럼 기업은 고유의 성질을 가진 다양한 인간들을 모으고 모아서 결국 한 종류의 인간으로 만들어간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살아가던 그때가 세상 모르고 철없던 시절이었다고 얘기한다.


  나는 기업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하나의 불량품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품질은 회사의 생명이다 우수하고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이 제조기업의 사명이다. 그 사명에 누를 끼치는 인간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일지도 모른다. 제품의 규격화는 규격화된 인간들을 만들어 낸다. 그 말은 반대로 인간이 규격화되지 않으면 규격화된 제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산으로 보내달라고?"

"예"

"사무 관리직이 생산으로 가는 게 말이 되냐?"


  생산 라인에서 제품이나 만드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기계의 속도에 발맞춰 나의 몸이 기계화되긴 하지만 정신세계의 변형은 덜하다. 시간이 되면 퇴근하고 정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만약 생계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기업 생산 노조처럼 고임금에 쾌적한 근로 환경까지는 불가능하지만 정신적인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같은 노동이라도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 박봉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고임금에 갖은 복리후생을 누리며 여유로운 노동을 하는 자들이 있다. 노동의 난이도와 강도는 전자가 강하다. 그 차이의 근원은 명판이다. 대기업, 명문대의 간판 없이는 삶의 질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결국 별반 다를 게 없는 직장인이지만 명판이 있고 없고에 따라 직장인도 계급이 나눠진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에 나가면서 각자의 계급이 나눠지며 과거 동등했던 가족, 형제, 친구들과 조금씩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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