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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Dec 16. 2020

나쁜 예감

팔공 남자 시즌 2-86

"안녕하세요!"

"희택 형제, 누구?"

"아! 저희 회사 동료예요"

"반갑습니다. 배유진이라고 합니다."

"제가 교회 다닌다고 하니까 자신도 가고 싶다고 해서 저희 목장으로 데려왔어요"

"아... 그러시군요"

"희택 씨 애인 아임미까? 어디서 이런 미인을 데리고 왔데, 재주도 좋아 하하"

"아... 아닙니다. 직장 동료일 뿐이에요"

"희택 아저씨 얼굴 빨개졌다 하하하"

"大叔! 是否心里有鬼? 哈哈哈" (아저씨! 혹시 딴 맘 있는 거 아녜요? 하하하)

"没有!你别想太多!” (아냐! 너 상상 좀 적당히 하지)


  오늘은 교회 목장 모임이 있는 날이다. 금요일 저녁이면 목녀인 안 에스더 집에서 모여 저녁식사를 하며 삶을 나누는 모임을 같는다. 그녀의 연인 요한이 죽기 전에는 그의 집과 그녀의 집을 번갈아가며 모임을 가졌었다. 그가 떠난 후 잠시 멈췄던 목장 모임은 그녀의 신앙심으로 다시 재개되었다. 


  유진도 미국에서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가정교회처럼 교회 안에 별도의 작은 목장 모임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녀도 교회를 찾던 중 내가 가정교회를 다닌다고 하니 자신의 니즈와 궁금증을 충족하기 위해 나를 따라왔다. 


  목장에 모인 식구들은 내가 데려온 새로운 식구에 대한 관심이 나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성인 남녀의 만남은 어딜 가나 이성관계로의 발전을 염두하는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의혹은 둘 중 한 명이 기혼자이거나 아니면 이미 교제상대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짝 없는 암수의 만남은 언제나 이성보다 감성이 우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안 에스더 목녀를 제외한 연변 아주머니와 그의 딸 향미 그리고 쑨샹은 의혹 가득한 모습으로 다들 나를 놀리듯 한 마디씩 투척한다. 그런 모습을 아무렇지 않은 듯 관망하고 있는 유진 씨는 이런 목장 분위기가 맘에 드는 모양이다.


"자! 그럼 일단 기도부터 할까요?"


  안 에스더의 한 마디가 어수선하던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다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은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희택 형제가 저희 목장에 새로운 손님을 데려왔습니다. 새로운 교제의 시간을 갖게 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따뜻한 식사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과 서로의 삶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허락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아~멘!"

"아~ 멘!"

"와!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자! 어서 드세요. 양이 부족하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희택 형제, 담부턴 손님 데리고 오시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테이블 위의 냄비 안에는 빨간 양념에 졸인 닭볶음탕이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을 고이게 만든다. 안 에스더는 국자로 닭볶음탕을 그릇에 담아 목원들에게 나눠준다. 그녀의 음식 솜씨는 이미 교회에서도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일품이다. 교회의 행사가 있으면 그녀는 항상 메인 셰프가 되어 교회의 음식 준비를 총괄할 정도이다. 교회에 호텔 식당에 일하는 교인이 그녀의 음식 솜씨를 보고 그녀에게 요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할 정도이다. 


  그런 그녀의 음식 솜씨 때문인지 우리 목장은 목원들은 금요일 저녁 목장 모임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예수의 말씀보다 그녀의 손맛이 사람들을 모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오죽하면 교회의 다른 목장에서도 그녀의 목장으로 오고 싶어 할 정도이다. 그녀는 매주 그렇게 정성 들여 목원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  테레사 수녀의 [먼저 먹이라]를 몸소 실천하는 인물이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정말 수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그럼 개신교가 아니 천주교로의 개종인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우~와! 첨 먹어봐요 이런 맛 정말 맛있는데요!"

"감사해요! 많이 드세요"

"그렇죠? 저희 목녀님의 음식 솜씨가 좀 훌륭하죠"


  유진 씨는 붉은 양념을 머금은 닭다리를 한 입에 배어 물고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안 에스더는 그녀의 칭찬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대답한다. 다들 음식 맛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냄비 속 닭볶음탕은 바닥을 드러낸다. 다들 조금 아쉬운 모양이다. 식사를 마친 안 에스더는 주방으로 가더니 과일과 차를 준비한다. 목원들은 자기가 먹은 그릇을 들고 싱크대가 가져다 놓는다. 각자는 자신이 맡은 역할이 있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나와 연변 아주머니는 같이 설거지를 하고 쑨샹은 안 에스더를 도와 디저트를 준비한다. 연변 아주머니 딸인 향미는 테이블을 닦는다. 유진 씨는 미안한 마음에 뭔가 도우려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른 체 서서 우리를 지켜본다. 


"유진 자매님 미국에서 오셨다고요? 그럼 우리 새로 오신 유진 자매님 얘기 좀 들어볼까요?"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가 준비된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려 한다. 안 에스더는 유진 씨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그녀는 안 에스더의 물음에 앞에 놓인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검지 손가락으로 찻잔의 표면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나와의 첫 만남부터 여기 대구까지 오게 된 사연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다들 그녀의 진지한 답변에 숨죽여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음... 유진 씨에게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언니 힘내세요, 친 어머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기도할게요"

"그게, 엄니 만날 수 있을 끼라요 너무 기케 걱정 마시라요"

"다들 감사해요, 전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


  유진 씨는 다들 위로와 격려의 말에 눈시울을 붉히더니 고개를 돌려 이내 밝은 표정으로 바꾸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어 보인다. 

  

"음... 그럼 우리 다 같이 유진 씨를 위해 기도할까요? 하나님 아버지 여기 오랜 세월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보냈을 유진 자매에게 어머니를 용서하고 다시 재회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시옵고..."

"아~악!"


   순간 동공이 확장된다.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귀 속을 뚫고 지나간다. 동공이 확장되고 깨질듯한 두통이 나의 머릿속을 엄습한다. 마치 바늘 같은 물체로 귀 속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반복적으로 찾아온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방바닥을 뒹군다.


"대리님! 왜 그러세요?"

"아저씨! 괜찮아요?"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고?"


  그 통증은 과거 안 에스더와 띠아오챤을 위해 기도할 때 느꼈던 그것과 비슷하다. 통증이 차츰 사그라든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통증으로 찡그렸던 얼굴 근육이 조금씩 이완되며 눈을 뜬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두 여자의 얼굴이 동시에 눈 안으로 들어온다.


  예감이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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