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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Dec 17. 2020

시련은 행복을 동반한다

팔공 남자 시즌 2-87

"목장 사람들 다들 너무 좋아 보여요"

"그렇죠? 다들 좋은 분들이에요, 저도 여기 와서 힘들 때 많은 힘이 되어 주셨어요"

"그렇셨구나? 저도 목장 모임 계속 나와도 돼요?"

"물론이죠"

"너무 좋네요 식구가 생긴 것 같아서... 참! 대리님 머리는 괜찮으세요?"

"예 괜찮아요 걱정마요"


  목장 모임이 끝이 나고 늦은 밤 시간 유진 씨를 회사 기숙사로 데려다 주려 나의 차에 태워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녀는 좀 전 나의 모습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내가 운전을 하는 동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응시한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이미 회사 동료 간의 관계가 아닌 다른 감정들이 섞여 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미묘한 감정이 생겨나면 나의 말과 행동이 나도 모르게 부자연스러워짐을 느낀다.


"유진 씨, 타지에서 혼자 있는데 항상 조심해요, 알겠죠?"

"하하하 갑자기 웬 딸 걱정하는 아빠 같은 발언이에요?"

"하하하 요... 요즘 세상이 흉흉하잖아요, 유진 씨는 더군다나 여기 혼자잖아요"

"든든한 대리님이 옆에 계시잖아요 하하하"

"예?!"

"대리님 머리나 걱정하세요, 근데 병원 한 번 가보셔야는 거 아녜요, 아까 보니까 통증이 심한 거 같던데..."

"잠깐 그러고 나면 괜찮아져요"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나는 도로를 응시한다. 그녀의 시선이 길어질 때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아~ 더워! 히터를 너무 강하게 튼 거 아녜요?"

  

  그녀는 창문을 내리고 밖으로 손을 뻗는다. 고개를 창밖으로 젖히고 바람을 맞는다. 머리끈에 묶이지 못한 이마 위의 잔머리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그녀는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낀다.


"안 추워요? 유진 씨? 아직은 바람이 차요"

"시원한데요 헤헤! 어!? 별똥별이다!"

"예 진짜요?"

"와! 처음 봐요 별똥별!"

"소원 빌었어요?"

"아~참! 지금 빌어야지"


  그녀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무언가를 기도한다. 뭔지 알 수 없지만 사뭇 진지한 모습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귀여워 보인다. 나도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봤던 별똥별이 떠오른다.(Episode 2-17)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던 그때 아스팔트 바닥에 드러누워 바라본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별똥별을 보며 내가 빌었던 소원을 떠올려 본다.

 

"무슨 소원 빌었어요?"

"비밀이에요 큭큭"


  그녀는 뭐가 재밌는지 혼자 키득거리며 웃는다. 사실 나는 그녀가 친어머니를 찾아달라는 소원을 빌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의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짐작컨대 그건 아닌 것 같아 보인다. 그럼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더욱 궁금해진다.


"친어머니 소식은 들은 거 없어요?"

"음... 사실 친어머니 봤어요"

"정말요? 어디서 어떻게요? 근데 왜 말 안 했어요?"

"하하하 대리님 물어본 적이 없잖아요?"

"아... 그랬나?"


  그러고 보니 그녀의 아픈 곳을 상기시키고 싶지 않아 속으로 궁금함을 억누르며 그녀의 친어머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느닷없이 친어머니를 봤다는 얘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나와는 달리 태연한 그녀의 모습이 더 놀랍다.


"어머니는 잘 고 계시더라고요.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행복하게..."

"그... 그래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 행복을 제가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냥 모른 체 돌아왔어요"

"그럼 어머니를 보고 그냥 왔다는 거예요?"

"예..."

"그래도 그건 아니죠. 인사를 드려야죠. 어머니도 유진 씨를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을 거예요"

"가슴 깊이 묻어둔 아픔을 다시 꺼내는 게 맞는 걸까요? 저는 그게 아픔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게는 그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녀의 표정이 굳어진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아픔에 대해 뭐라고 얘기할 수 없다. 그녀는 아마 어머니의 불행을 걱정하며 그녀를 찾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죄책감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어머니를 그 아픔 속에서 구제해 주려고 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직접 본 어머니의 삶은 그녀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기우였을 뿐이었다.


  차는 양쪽으로 넓게 뻗은 논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내달리며 불빛이 환한 도심에서 점점 멀어진다. 그녀의 회사 기숙사인 분지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파트 입구 앞 가로등 불빛 아래 차를 멈췄다.


"대리님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진씨, 여기 기숙사 사는 거 안 불편해요? 시내랑도 많이 떨어져 있고 주변은 다 논밭에다 교통편도 애매하고 난 너무 불편하던데..."

"하하하"

"왜 웃어요?"

"시내랑 떨어져 있어서 짙은 어둠과 고요함이 있고 주변이 논밭이라 탁 트인 경치를 보여주고 밤이면 풀벌레 소리를 들려주고, 가끔씩 오는 버스는 정류장에 앉아 기다림 속에 책도 보고 사색도 즐길 수 있게 해 주잖아요"

"..."

  

  그녀는 환한 미소로 함께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답변을 한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같은 환경 속에서도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의 시련과 고통에만 집중한다. 그 시련과 고통을 없애거나 줄여나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시련과 고통을 없애면 또 다른 고통과 시련이 찾아온다. 그럼 또 다시 그것을 없애려 고군분투하며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 얘기한다.


  사실 시련과 고통은 항상 행복과 기쁨을 동반한다. 우리는 다만 부정적인 것에 집중한 나머지 긍정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것뿐이다. 항상 존재하는 행복은 보지 못하고 금방 사라질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을 더욱더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


  우리는 왜 삶이 힘들다고만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녀는 행복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가로등 불빛을 지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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