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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an 30. 2021

로봇은 로봇을 만들 뿐이다

팔공 남자 시즌 2-93

"어이! 전대리, 중국 경쟁 차종 *티어다운(Tear-down) 비교 원가계산서 다 됐어?"

"...."

"전대리! 뭐해?"

"아! 네 죄송합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하~아 나, 어이가 없네, 귓구멍에 X 박아 놨나?"

"죄... 죄송합니다"

"중국 공장에서 요청한 티어다운 계산서 어쨌냐고?"

"아... 네 그거 아직 몇 가지 부품의 자료가 부족해서..."

"그거 어제까지 중국 공장에 제출하라고 내가 말했던 것 같은데... 이거 멍하니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갔구만, 어이! 이제 막 나가자는 거지? 일도 하기 싫다 이거야?"

"아... 아닙니다."


   오전 내내 나는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모니터 화면 속에 띄어놓은 엑셀(MS Excel) 원가계산서 셀 안에서 껌뻑이는 커서가 마치 나에게 최면이라도 걸고 있는 것 같다. 


  구 과장이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유진 씨가 자취를 감춘 지 사흘이 지났다. 머릿속은 온통 그녀 생각뿐이다. 누군가를 이토록 걱정한다는 건 그만큼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 과장의 잔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사무실을 나간다. 구 과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발길이 향한 곳은 인사팀 사무실이다.


"저기 유진 씨 출근 안 했나요?"

"예, 그러게요 유진 씨가 오늘도 결근이네요. 연락도 안되고 참, 전대리님은 혹시 모르세요 유진 씨 어디 갔는지? 큭큭"


   인사팀의 여직원은 유진 씨와 나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도리어 나에게 유진 씨의 행방을 묻고 있다. 인사팀 사무실의 직원들은 하나둘씩 의심 섞인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다. 


"전희택 씨 맞으시죠?"

"예 그런데요? 누구시죠?"

"대구 동부 경찰서에서 왔습니다."

"예? 무슨 일로?"

"배유진 씨 아시죠?"

"예, 그런데요?"

"잠시 얘기 좀 나눌까요?"


    떡대만 한 거구와 작고 왜소한 남자 둘이 나를 포위하듯 서서 말을 건네 온다. 그 둘은 마치 톰과 제리를 연상시킨다. 둘은 나를 소몰듯이 조용한 회의실로 몰아간다. 그 모습을 인사팀 직원들이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배유진 씨와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시죠?"

"아니 대체 그걸 왜 물어보시는 거죠?"

"아... 네 실종 신고가 접수되어서요"

"예?! 실종신고요?"

"네 누가 신고를 했죠?"

"아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실종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로 보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찰복을 입지도 않은 사복 차림의 형사가 실종신고 조사를 나온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유진 씨의 관계에 대해 뭔가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직접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최근에 배유진 씨를 만난 게 언제죠?"

"예? 그게 얼마 전... 근데 왜 제가 그런 걸 왜 얘기해야 되죠 원래 실종자 조사를 이렇게 하는 건가요?"

"16일 날 배유진 씨와 같이 등산을 갔었나요?"

"예?! 그... 그걸 어떻게 아시죠?"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그날 이후 배유진 씨의 종적이 묘연해졌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래서요? 제가 유진 씨의 실종과 관련 있다는 얘기인가요?"
"뭐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가장 관련이 많아 보이네요"


  그들은 이미 나와 유진 씨의 행적을 다 알고 온 듯한 모습이다. 알면서 나에게 재차 물어보는 것은 나를 이미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들은 실종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를 심문하는 듯한 모습이다. 문득 죄가 없어도 죄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왜 실종자를 찾을 생각은 않고 엄한 사람을 잡으려고 하시는 거죠?"

"아~ 진정하시고요, 저희는 그런 의도가 아니고 듣기로 전희택 씨가 사내에서 배유진 씨와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얘기를 듣고 조사에 좀 도움을 얻고자 한 것뿐이니 너무 개의치는 마시고요"

"저도 유진 씨와 연락이 안된 지 사흘이나 돼서 계속 걱정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둘은 무슨 관계이죠?, 연인관계인가요?"

"아... 아뇨 그냥 사내 동료인데요"

"아 그래요? 그런데 사내 동료끼리 단 둘이 등산이라... 음... 그렇군요"

"에이~ 김형사 왜 그래? 적당히 해. 요즘은 뭐 사내에서 비밀스럽게 썸도 타고 그런 거지, 남녀관계가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대놓고 사귈 수 있나, 밥벌이는 계속해야지 또 그런 게 더 스릴 있잖아"

"아... 그렇군요 최형사님 하하"

"두 분 무슨 말이세요?"

 

  두 형사는 마치 장단이라도 맞추듯이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띠며 나 들으란 듯이 말을 주고받는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이런 불쾌한 조사를 내가 굳이 받고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그건 뭐죠?"

"아~ 네 참 미리 말씀드렸어야는데... 죄송해요, 참고인 조사 내용은 저희가 녹취가 필요해서요"

"그러게 김형사 그런 걸 깜빡하고 그래? 죄송합니다 사전에 말씀을 드리고 했어야는데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전 업무가 바빠서 이제 그만"

"잠깐 한 가지만!"

"예?!"

"그 날 배유진 씨와 헤어진 시간이 몇 시쯤이죠?"

"밤 10시쯤인가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어디서 헤어지셨죠?"

"그녀 기숙사 아파트에서요"

"아 그러셨구나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일 보세요"

"협조 감사합니다."


   나는 회의실을 나온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인사팀 직원들의 빠른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들은 회의실 문 앞 근처에서 몰려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듯한 모습니다. 파티션 너머로 빼꼼히 나를 훔쳐보는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때 인사팀 옆에 붙어있는 사장실의 문이 열리고 사장이 말끔한 검정 슈트를 입고 걸어 나온다. 그 뒤를 여비서가 서류가방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그를 따른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그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나를 한 번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정면을 응시 바라보며 인사팀 사무실을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인사팀 직원들을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일어나 사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그가 사무실을 벗어나자 다시 자리에 앉는다. 나도 그가 내 옆을 지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인 채 그의 반짝이지도 그렇다고 둔탁하지도 않은 빛을 받는 부분만 은은하게 광이 나는 명품 구두가 눈 앞을 지나간다. 시선을 옮긴 곳에는 발가락이 접히는 부분이 갈라진 윤기없는 또 다른 싸구려 구두가 눈에 들어온다. 그의 구두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어 사무실을 벗어난다.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충성을 보장받는 사람이 있다. 부모가 이뤄놓은 터전과 수많은 인맥 그리고 수많은 충성을 이어받는다. 그들은 선대가 이뤄놓은 업적과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철저한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물론 그 과정도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받는 교육은 아마도 사람의 마음과 존경을 얻는 그런 인덕을 쌓는 교육이 아닌 사람을 어떻게 복종시키고 세뇌시키는지를 더 많이 공부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사장이 나올 때마다 너나 할 것 없이 표정 없이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그가 사무실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동시에 착석을 할 수 있겠는가? 이건 마치 프로그래밍된 로봇과 같아 보인다. 직장 생활을 5년 차에 접어들면서 어느새 나 또한 자동반사적으로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천변 일률적으로 작동하는 로봇들 사이에서 그렇지 않은 것은 불량으로 폐기될지도 모른다.


   그들은 말한다. 더러워도 참고 견디고 올라가야 한다. 왜냐하면 내 자식은 로봇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고...  안타깝지만 로봇은 로봇을 만들 뿐이다. 



*티어 다운(Tear-down) : 완제품을 개별 부품으로 해체하는 작업, 제조업에서는 경쟁사 제품들을 수집 분해해서 경쟁사 제품을 분석하고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많다. 분해된 부품의 개별 원가 분석을 통해 대략적인 완제품의 생산원가를 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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