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 남자 시즌 2-9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한복음 8:34]
"성도님들! 죄임을 알면서도 죄를 저지르는 것을 멈추십시오. 이번 한번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그렇게 시작됩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습니다. 그래서 죄를 저지르면 죄의 종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예배당 위의 목사의 설교가 끝나자 옆에 앉은 안 에스더는 두 손을 모아 쥔다.
"하나님 아버지 부디 저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흑흑흑"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시 지켜본다. 그녀의 기도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기도에 뭔가 알 수 없는 간절함이 섞여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거"
"아! 고마워요 희택 형제"
나는 그녀의 기도가 끝나자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넨다. 어찌나 울었는지 눈가가 붉게 충혈되었다.
"에스더 목녀는 무슨 기도를 그렇게 신들린 듯이 합니까?"
"기도할 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네요"
"난 참~ 이해가 안 되네요 그냥 마음속으로 기도하면 되지 왜들 그렇게 울부짖으며 기도를 하는 건지... 뭐 하나님이 귀가 안 좋은가? 속으로 해도 다 들으실 텐데 하하하"
교회 예배당에서 사람들은 울음과 음성을 토해내며 기도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들은 뭔가 한이라도 맺힌 듯이 기도한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익숙하지만 과거엔 그런 모습들이 거북하고 무섭기까지 했다. 하나님은 내 안에 있는데 왜들 저리 밖으로 외쳐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밖에 있는 존재인 것인가? 하나님이 하늘 위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기에 그들은 더욱 저리 울부짖으며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호통이 무서워서? 만약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항상 나와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의 평소 말과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삶에 어긋남이 없지 않을까?
"에스더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매번 그리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 모두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다 우리들이 죄를 용서받게 하기 위함이죠"
"휴~~ 또 시작이군요? 됐어요 쩝..."
그녀는 그런 식으로 나의 대화 의도를 피해 간다. 성경학 원론을 듣고자 물어본 물음이 아닌 걸 알면서 항상 같은 식으로 반응하는 그녀가 답답하기까지 하다.
"희택 씨는 무슨 기도 했어요"
"유진 씨가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했어요"
"아... 그렇죠... 유진 씨가 실종된 지 얼마나 됐죠?"
"이제 열흘 됐죠"
"정말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희택 형제 우리 집에 가서 밥 먹고 가요"
"아녜요 저 볼일이 좀 있어서"
"무슨 일요? 집에 청국장을 끓였는데 먹고 가요"
"유진 씨 기숙사에 좀 가보려고요"
"거기 왜요?"
"룸메이트 좀 만나보려고요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아... 그래요"
나는 유진 씨의 기숙사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 입구 논두렁길 위에는 얼마 전 내린 폭우로 가로등이 파손되어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주변이 논밭이라 불빛이 없어 가로등이 꺼지면 정말 칠흑 같은 암흑으로 변해버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녀의 집 앞으로 걸어간다. 또 그 배불뚝이 아저씨와 마주친다. 그는 여전히 사각팬티에 슬리퍼를 신고 담배를 꼬나물고 있다. 달라진 점이라면 날씨가 서늘해져서인지 군용 깔깔이(내피)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오~ 형씨 또 보네!"
"아... 네.."
"으따~ 순정파여 주구장창 오는거이, 근디 그쪽만 레알 러브 아닌가 몰러? 그 아가씨 남자가 그쪽만 있는 건 아닌 듯 헌디... 큭큭큭"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자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 있는 남자한테 가게 돼 있는 법이지라 큭큭, 세상은 사랑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뭐... 좀 거시기 허잖어!"
"도대체 무슨 말씀이에요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으신 거 같은데 얘기해주세요"
"내가 뭘 좀 봤지, 마세라티 기블리였지 아마, 그런 차 이런데서 참 보기 힘든데 말이야! 내가 고급 손세차를 오래 해서 웬만한 고급차들 후미등만 봐도 딱 감이 오걸랑, 그 차는 참 보기 힘든 차라 긴가민가 했지, 비도 억수같이 쏟아지고 또 가로등도 다 꺼져서 뭐 후미등이랑 전조등 불빛만 희미하게 보이니 근데 그 차에서 그 아가씨가 내리더라고"
"정말이에요? 그렇게 비도 오고 불빛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내가 아침에 그 아가씨 나갈 때 마주쳤었거든, 그때 입은 노란색 원피스가 기억이 났거든 뭐 내가 바나나 같네라고 혼잣말했더니 고것이 들었는지 내 바나나를 걷어차기 전에 바지나 입으라며 뭐라 커데... 알고 보니 무서운 년이드라고 그년이, 뭐 여튼 그 원피스가 분명했어"
"그래서 같이 있는 사람도 봤어요?"
"아니~ 그 아가씨가 문을 열고 나와서는 비를 쳐 맞으면서 운전석을 쳐다보더니 좀 있더니 다시 타더라고..."
"그리고는요?"
"그리고? 그게 다야 뭐 한참 동안 차 안에서 뭐 떡을 치는지 나오지도 가지도 않고 있더라고 아따 거, 비만 안 왔음 내려가서 구경이라도 하는 건데 큭큭큭"
"..."
"어이 형씨! 아따 얼굴이 썩어부렀네 쩝... 힘내! 뭐 세상에 여자가 거뿐이여"
그녀는 내가 찾아오기 전에 누군가를 만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녀가 만난 누군가는 그녀가 사라진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 마세라티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그녀는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많은 것 같다.
사랑을 하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공유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때론 그것들을 공유하면 그 사랑이 깨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그래서 사랑은 때론 상대방의 과거와 상처를 가려주어야 한다. 현재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랑과 기억들을 덮어주어야 한다. 과거가 계속 현재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