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말고 오해부터

한 지붕 아래 서로 다른 세계

by 글짓는 목수


가까이 있다고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가까이 있을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이 사람 사이이다.


한 지붕 아래 살지만 각자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다른 환경과 다른 생각은 또 다른 환경과 또 다른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적잖은 시간과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 시간과 과정을 감수하기 싫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나랑 다른 사람이다.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론 그 다름이 나의 신체와 정신에 고통을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이후엔 그 사람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지만 실망 또한 찾아오지 않는다. 인간미는 없지만 관계 속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싫다. 잃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 그것이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서 그나마 심플하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오늘 한 지붕 아래 사는 셰어생들과 모처럼 저녁을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가 필요한 건 상대방의 이해를 구한다기보다 상대방에게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 우선이다. 각자가 살아왔던 삶의 시공간이 다르고 벌어진 시공간의 간격만큼 그것을 어찌 좁힐 수는 있겠지만 모두 이해한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해 혹은 이해관계의 득과 실을 따져서 이해하는 척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를 순수한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건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이에겐 비경제적이고 소모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오래간만에 모인 자리에서 이해까진 아니더라도 오해는 풀었다. 우리는 항상 책에서 혹은 TV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오해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해가 감정을 상하게 하고 쌓인 감정이 미움을 만들고 미움이 세상과 문 닫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다.


"알 수 없잖아요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그래서 그랬어요 오해는 마세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흉악한 세상이다. 사람 간에 사라진 신뢰는 제삼자 혹은 공권력으로 향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도 자식을 죽이는 요지경 세상이다. 어떻게 해코지당할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불쾌함과 불편함을 바로 얘기하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상대방이 기본적인 인성을 지녔는지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사실 돌고 돌아서 들어온 말은 진위여부를 알 수 없을뿐더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도 더 나쁜 것이 사실이다. 만약 그 사람이 내가 신뢰하거나 호감이 있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일단 상대방이 나와 마주치기 싫을 정도라는 것과 문제의 해결에만 관심이 있을 뿐 나와의 관계 개선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나와의 관계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선 관계가 개선되기 힘들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최소한의 오해를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그만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껄끄러움에 입을 닫고 눈을 피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간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이타주의를 밀어낸 세상이다. 그러고 보니 '이타주의'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봤는지 기억도 가물하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은 서로가 용기 내어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이렇게 털어놓으면 한결 편안해질 것을 왜 이리 끌었을까? 오늘 서로 대화의 통해 오해를 풀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심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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