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집 밖을 나서는 게 쉽지 않다. 해도 짧아져 6시면 아직 캄캄한 어둠이 깔려있다. 찌푸둥한 몸을 일으켜 이불 밖으로 나오는 그 1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이 왜 그리도 길고 고통스러운지 모르겠다.
일단 이불 밖으로 몸을 빼면 반쯤 성공한 것이다. 이제 침대 위에서 내려와야 한다. 며칠 간 계속 내리는 비에 집안 공기도 눅눅하다. 마룻바닥에 발바닥이 닿는 게 싫다. 따뜻한 침대의 온기가 계속 유혹한다. 만약 여기서 내가 다시 이불속의 온기 속으로 다시 발을 집어넣으면 난 지게 되는 것이다.
다행이다. 발바닥이 마룻바닥에 닿았다. 차가운 바닥의 기운이 발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올라온다. 잠기운이 조금씩 몸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이제 옷만 갈아입으면 된다. 옷을 갈아입는 짧은 순간 살에 닿는 차가운 공기가 싫어 후다닥 바꿔입는다. 집 밖을 나선다. 집 앞에 주차해놓은 차로 뛰어간다. 그새 옷이 젖었다. 짜증이 밀려온다. 이젠 짜증을 잠재우기 위해서라고 가야만 한다.
수영장에 도착했다.
"Good Morning Darling~ Injoy!"
리셉션의 호호 할머니의 미소 가득한 아침인사가 비에 젖어 곤두섰던 나의 신경을 잠재 준다. 이제 수영복을 갈아입고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수영복만 입고 야외 수영장으로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세포와 신경들은 최고조의 긴장상태에 이른다.
이때 빨리 스트레칭을 몇 번 하고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어야 한다. 시간이 지체되면 긴장한 세포와 신경들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풍덩! 우 와우!"
이제 세포들과 신경들은 자포자기 상태로 들어간다. 차가운 물에 긴장이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상태가 되어버린다. 온몸의 세포들이 수축되고 머리가 쭈뼛쭈뼛 선다. 이제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고 잠영으로 온몸에 냉기를 몸속으로 흡수하고 몸과 물의 온도가 평형이 이룬다. 이제 체온을 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체온으로 감기에 걸릴지도... 팔을 젓고 발을 차며 속도를 올린다. 몸에서 조금씩 열량을 태우며 열을 내기 시작한다. 머리가 뜨거워진다. 몸에서 발생한 열은 물속으로 전도되어 빠져나가지만 머리로 올라온 열은 실리콘 수모에 막혀 따뜻해진다. 머리에 온기가 남아 있으면 몸이 차가워져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
이제 몸의 긴장이 풀리고 물과 한 몸이 된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수영하는 기분은 어디가 물속이고 어디가 물 밖이지 헷갈리는 경험을 하게 한다. 폭우라도 쏟아지는 날은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배영을 하며 얼굴 위로 떨어지는 비를 맞는 묘한 기분이 좋다.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어 입안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맛본다.
몸을 돌려 물속으로 잠수한다. 수면을 바라보면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수중 카메라에서나 본 듯한 장면을 두 눈으로 경험하게 된다. 쉴 새 없이 수면을 때리는 빗방울들로 수면은 요동친다. 수면 위는 그 물과 물이 부딪치는 소음으로 정신없지만 물속은 완전 반대의 세계이다. 고요하다.
마치 폭풍우가 치는 날 두꺼운 통 유리를 가운데 두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창밖의 비바람이 강하면 강할수록 창안은 한층 더 아늑함을 자아낸다. 난 그 비바람과 아늑함을 수시로 드나들며 긴장과 고요의 순간을 번갈아 가며 즐긴다. 그것이 비 오는 날 야외 수영의 가장 큰 묘미 중 하나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야외 수영의 묘미를 느끼기 힘들었다.
이 묘미를 알게 된 건 바다 수영을 시작하면서 였다. 야외 수영장을 찾아보기 힘든 한국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수영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다나 강에서 수영을 하는 것이다. 우연히 수영장 지인을 통해 찾은 바다수영 동호회에서 바다수영의 묘미를 알았다.
늦가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울을 코앞에 두고 추위가 엄습했던 날이었다. 지인이 하나도 무서울 게 없다고 수영장에서 수도 없이 나를 설득했던 터라 그만 믿고 찾았던 새벽의 해운대 바닷가였다. 주말 새벽부터 바닷가로 모여든 사람이 적지 않다. 다들 미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자동차 밖의 바닷가 공기는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차가웠다. 다들 전신 스윔 슈트로 갈아입는다. 난 그 추위에 도저히 못하겠다고 지인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다니까! 물에 들어가면 의외로 따뜻해. 전신 슈트가 물에도 잘 떠서 걱정 없다니깐 안전 부이(형광색 튜브)도 있어서 위험할 거 없어. 그리고 **씨는 수영 오래해서 문제없어"
해운대에서 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슈트로 갈아입고 해변으로 향했다. 동호회 사람들은 신입인 나를 열렬히 환영했고 수건 돌리기 하듯 둘러서서 준비 체조를 한다. 바닷바람에 이가 떨릴 정도로 춥다. 체조가 끝나기 무섭게 다들 바다로 비명을 지르며 뛰어든다. 난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난 조심히 한발 한발 물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발끝에 바닷물이 닿자 찌릿한 기분이 온몸으로 퍼진다. 다들 물속에서 빨리 들어오라며 손짓한다.
"에라 모르겠다!"
물속으로 몸을 던지며 깊숙이 들어간다. 슈트가 바닷물을 흡수하며 바닷물이 서서히 속 살을 감싸도는 느낌이 온다. 왠지 모를 공포감이 찾아든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슈트 속으로 스며든 물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걸 느낀다. 바닷물도 미지근한 데다 슈트 안으로 들어온 바닷물이 체온으로 데워지고 데워진 물은 슈트 때문에 열이 밖으로 잘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때야 비로소 안도감이 찾아들며 수영을 즐기게 된다.
"겨울엔 물 안이 더 따뜻해요, 좀 있음 밖으로 나가기 싫어질걸! 하하하"
바다수영이 익숙해지고 바다 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멀리 수면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아! 이런 맛으로 바다 수영을 하는구나"
바다수영 하지만 비 오는 날은 바다 수영을 하기 어렵다. 뭐 어찌할 수는 있겠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풍랑에 휩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넓디넓은 50m 야외 수영장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하늘을 떠가는 구름과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때론 따가운 태양볕을 맞으며 때론 비에 젖어 수영할 수 있다. 이 모든게 감사하다.
수영을 하며 건강을 되찾고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내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준 수영은 앞으로도 평생을 같이 할 것 같다.
오늘도 빗 속에서 물속으로 뛰어든다.
In the p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