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 머무는 사람들

붉은 여명과 노을을 바라보며

by 글짓는 목수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밝아오는 붉은 여명을 바라보고 넘어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본다. 고층 건물이 많지 않은 이곳은 운전하면서 보는 여명과 노을이 하루의 시작과 끝을 고단함을 달래주는 듯하다.


오늘은 그 여명과 노을을 새로운 사람과 함께하며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한다.


같이 출근하는 데모도 동생의 안타까운 사연에 그 충격과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의 사연을 얘기할 수는 없지만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충격적이고 불행한 그의 가정사와 과거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가 왜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놨을까? 그것이 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그는 내가 상상하기 힘든 상처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점은 그가 세상에 대한 분노나 절망보다 체념과 순응하는 모습이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냥 세상이 자신에게 준 불행을 그냥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같아 보였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그는 미래의 희망이나 꿈보다는 현재의 이곳에서 버티기 위한 생활비(주거와 학비)를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낮에는 뙤약볕 아래에서 땀 흘리고 밤에는 식당에서 쉬지 않고 일을 한다.


그는 일하는 가운데 필 수 있는 한 개비 담배에, 내가 건네주는 삶은 계란 하나에, 출퇴근길 고단함에 내 옆자리에서 잠시 쪽잠을 잘 수 있는 그 순간의 행복에만 집중한다.


과거와 미래가 그를 현재의 지금 순간에 머물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과거를 상처이고 미래는 불안하기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과거와 미래를 지워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모른다. 아니 행복이라기보다는 불행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미래의 기대와 과거의 추억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두려움과 상처로 가득 찬 미래와 과거를 가진 사람들은 현재의 순간에 더 오래 머물지도 모른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서평참조)처럼 현재의 순간에 더 오래머무는 자들이 존재(신)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은 아닐까?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태복음 19:23~24]


부자나라의 행복도가 높은 것은 아니듯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세상의 가난과 불행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듯 보인다. 그만큼 더 쉽게 행복해지고 고통과 부당함에는 무뎌져 간다. 더 힘든 삶의 굴레 속으로 빠져들어가지만 그 속에서도 또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아간다. 부의 경중은 따질 수 있겠지만 행복의 경중은 따질 수 없다는 게 다행이다. 얼마나 더 빈번하게 느끼느냐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세상은 그들을 불행하다고 함부로 얘기하겠지만 사실 그들이 더 쉽게 행복해진다.


감사하다. 새로운 동행을 통해 현재의 나에게 더 큰 감사를 느끼게 하심에...

그가 찍어준 여명과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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