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동심으로

골드코스트를 다녀와서

by 글짓는 목수

여행으로 다시 글을 쓰려한다.


글을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한참을 고민한다. 한 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다. 글 쓰는 근육은 점점 약해지고 일(육체노동)과 운동으로 몸에 근육만 단련되고 있다. 두 가지 근육을 동시에 단련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현실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는 생각과 상상의 바닷속에서만 살아갈 수 없다. 어쩌면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은 읽고 쓰며 자신을 알아가고 타인을 이해하는 시간을 벌고 쓰는 시간과 바꾼 대가일지도 모른다.


과거 여행을 되뇌며...


어떻게 글을 써 내려가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 과거 멜버른 로드트립을 계기로 쓴 글 [인생은 여행이다]을 읽어보았다. 과거의 글 속에서 당시 여행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떠오르며 이번 골드코스트 여행의 글쓰기의 물꼬를 찾아내어본다. 멜버른 여행이 벌써 일 년 반 전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때도 호주는 재난상황이었다. 극심한 가뭄 속에 곳곳에 산불이 번지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강행했던 멜버른 로드트립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잊지 못할 추억들을 남겨주었다. 여행은 마음먹었을 때 떠나야 하는 법이다. 과거 한국에서 일과 일상에 밀려 여행을 접어야 했던 수많은 상황들이 떠오른다. 결국 일상의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다. 누군가 돈은 쓸 시간이 없어 모으게 된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결국 돈은 물질과 바꾸는데 쓸 수밖에 없었고 물질은 일시적인 만족은 가져다주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추억과 바꾸었다면 아직도 내 뇌리 속에 남아 또 다른 글감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여행도 코로나19의 팬데믹 속에 의도치 않은 계기로 시작되었다. 연초에 계획했던 브리즈번 여행이 NSW지역의 코로나 재확산으로 수포로 돌아가고 다시 일과 일상 속에서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뜻하지 않은 친구의 동행 제안으로 골드코스트 여행이 계획되었다. 친구네 가족여행에 끼어가게 된 것이다.


가족 여행에 친구가 끼어 간다는 것이 어찌 보면 불편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마 서로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좀 더 좋은 숙소와 여유를 즐기면서도 개별 여행 비용 부담은 줄일 수 있고 각자의 장점이 여행의 좋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서로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여행 일정을 세우고 친구의 아내는 음식 준비 나는 촬영 담당으로 서로의 역할이 잘 분담되었다. 친구네 가족은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탓에 변변한 가족사진이 많이 없다. 게다가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찍는 사진을 보면 안 찍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사진 찍는 감각도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나야 하는가 보다. 반면 그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다. 덕분에 가성비가 최고인 숙소와 여행 코스를 누릴 수 있었다. 친구 아내는 매일 다른 요리로 우리의 입을 호강시켰다. 어찌 보면 내가 가장 편한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틈틈이 친구네 아이와 놀아주고 설거지를 하고 친구네 가족을 카메라에 담는데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었다. 여행 후 내 카메라에는 친구네 가족사진과 풍경 사진만 수백 장이었다. 내 사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왜 다들 골코 골코 하는지...


호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골드코스트(이하 골코) 여행이다. 호주의 아이들 사이에서는 골드코스트를 다녀온 아이와 다녀오지 않은 아이로 나눠진다고 한다. 골코를 갔다 온 아이는 웬만한 놀이동산이나 유원지는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될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골코에는 아이들의 놀거리가 지천이다. 물론 놀거리도 많지만 골코의 바다는 호주에서 내가 만나본 다른 해변과는 느낌이 달랐다. 처음에는 뭐 바다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다. 달랐다.


처음 골코의 해변에 도착했을 때의 감흥을 기억한다. 그 순간을 적어놓은 당일 일기 내용의 일부로 그 감흥을 대신해 본다.


Sufers Paradise Beach

2021. 6. 18 티 없이 맑음


이윽고 해변이 눈에 들어온다.


눈이 부시다. 수면에 부서지는 태양이 눈을 간지럽힌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은 바다와 하늘을 한치에 티끌도 없이 갈라놓았다. 시선을 돌려 바라본 해변 또한 끝이 없이 펼쳐진다. 왜 다들 골코(Gold Coast)의 바다를 외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이 아름다운 광경들을 눈과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바다에 발을 담가보려 모래사장을 지나 바닷물이 닿는 곳으로 다가간다. 발바닥에 닿는 모래의 느낌은 여태껏 내가 밟아본 백사장의 감촉과는 사뭇 다르다.

마치 눈밭에 곱게 쌓인 눈을 처음 밟을 때 뽀드득하는 그 느낌과 흡사하다. 그 감촉이 너무 좋아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백사장을 걸으며 발바닥에서 온 몸으로 전해지는 그 느낌을 온전히 느껴본다. 눈을 떴을 때 눈 안에 들어온 바닷물은 마치 깊은 산속에서나 볼 듯한 개울물 같이 맑다. 파도가 밀려올 때 거품과 모래가 해변에 닿고 잠시 멈추는 순간 거품이 사라지고 모래가 가라앉으며 맑고 투명해진다. 바닷물 속에 내 발등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끝없이 펼쳐진 해변을 거닐며 황홀한 자연을 만끽한다. 친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이도 신이 난 모습이다. 나는 그들의 환희에 찬 모습을 카메라 속에 고스란히 담아본다. 나도 이 황홀한 그림 속 주인공이 되어 보려 타이머를 맞추고 미니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한 채 나를 사진 속에 담아 본다. 어디서 찍어도 작품 사진이 될 수 있는 건 배경의 역할이 크다. 오히려 피사체가 배경의 화려함을 해치는 느낌이다.


아침부터 해변에는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배경으로 산책과 운동을 즐긴다. 그들에게는 일상인 이곳이 누군가에겐 잊히지 않을 추억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다소 한적해진 해변 곳곳에는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는 사람들과 바다를 바라보며 그윽한 미소로 서로를 끌어안는 연인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감사하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에...

Gold Coast

그렇게 내 인생에 최애 바다는 다시 바뀌었다. 골코의 바다가 인상적인 이유는 맑고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태평양의 끝없는 수평선과 골코의 끝없는 해안선이 평행을 이루며 이어지는 모습이 다른 바다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때문 아닐까?


마치 평생을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쫓으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닮아있어서 일까? 세상에는 여러 부유의 사람들이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모두가 끝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부를 쫓고 누군가는 올리고 올려도 만족할 수 없는 힘을 쫓고 누군가는 찾아도 찾아도 찾아지지 않는 진리를 쫓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끝없는 욕망의 평행선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 마치 이곳 수평선과 해안선 같이...


이곳까지 왔으니 골코의 해변의 일출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정말 행운인 것은 내가 일출을 보려 나온 날 바다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여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행 일정 내내 새벽에 구름이 끼어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었던 날은 내가 해변으로 나간 그날 하루뿐이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행운은 주심에 감사하다.


골코 해변에서 바라본 일출은 잊히질 않는다. 그날의 감상을 적은 일기의 일부를 남겨본다.



2021. 6. 19 계속 맑음


도착한 해변에는 곳곳에 일출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차갑지만 상쾌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감싸듯 스쳐간다. 바다 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다. 잔잔한 수평선 위로 붉은 기운이 퍼져나가며 어둠 속에 갇혀있던 하늘의 푸르름을 들춰내기 시작한다. 태양이 나오려는 지점의 수면이 붉게 이글거린다. 수면에서 시작된 붉은 여명의 아우라는 조금씩 위로 퍼져나가며 노란색에서 하늘색 푸른색으로 이어진다.


이윽고 물과 하늘의 경계를 유일하게 넘나드는 태양이 강렬한 빛과 함께 눈부시게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를 들어 찍기 시작한다. 눈으로 느껴지는 이 감격의 순간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보려 애쓰지만 그 모든 것을 눈에 담긴 것과 같이 사진 속에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태양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수면 위에 기다란 빛줄기를 만들어 낸다. 그 빛은 나를 환하게 비춘다. 카메라에 찍힌 그 빛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형상으로 담긴다. 강한 빛은 조금씩 열을 내기 시작하며 바닷바람에 차가워진 나의 얼굴을 녹인다. 그렇게 한 동안을 따사로운 일출의 빛을 맞으며 해변을 산책한다. 끝없이 펼쳐진 골드코스트의 해변 곳곳에는 일출을 배경으로 조깅과 산책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그들처럼 해변을 따라 걸어본다. 한참을 걷다 햇살이 뜨거워질 때쯤 해변을 벗어난다. 호주의 태양은 정말 강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일출의 연약한 빛은 아름다운 감동이었지만 중천에 뜬 땡볕은 자외선과 열기로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시작은 항상 기대와 열정으로 가득 차 오르는 벅찬 기분이지만 나중은 항상 매너리즘에 빠져 초심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Gold Coast




동심으로 돌아가다


골코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각종 유원지 관람이다. 애초에 관광지로 계획되어 만들어진 도시이니 만큼 놀거리가 풍부하다. 가히 아이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호주의 부모라면 일생에 한 번은 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오지 않을 수 없다. 친구네가 이곳 여행을 계획한 것도 아이에게 제공할 수 있는 수많은 옵션들 때문이기도 하다.


현지 여행사를 통해 3일 패스를 145불(약 13만 원)에 구매했다. Sea world, Wet & Wild, Movie world 다른 여러 가지 옵션들도 있지만 나름 가성비가 가장 좋다는 패키지로 선택했다. 나와 친구의 입담에 일본인 여행사 여직원은 149불짜리 티켓을 4불 할인해줬다.


Sea world는 각종 바다 생물들을 볼 수 있는 공원이다. 물개쇼부터 돌고래 쇼에 각종 놀이기구와 수족관까지 바다에 관련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신기한 바다생물들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Wet & wild는 골코 최대의 워터파크이다. 겨울(골코는 한낮에는 20도 정도로 따뜻한 편)이고 코로나 여파로 모든 놀이기구를 다 가동하진 않아 아쉬웠지만 추위에 떨며 탔던 놀이기구는 더욱 인상에 남는다. 사람이 많이 없어 대기시간이 거의 없이 놀이기구를 바로 탈 수 있어 좋다.

Movie world는 마치 할리우드와 라스베이거스를 연상케 꾸며놓은 놀이동산이다. 각종 히어로 캐릭터들이 수시로 거리 퍼레이드를 진행한다. 놀이기구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많다. 인상적인 건 각종 영화 속 장면처럼 건물들을 꾸며놓아 사진을 찍기 좋다는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골코에서 가장 많은 놀이기구를 탔다.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어든 탓에 긴 대기시간 없이 계속 놀이기구를 탔다. 이곳은 입장만 하면 모든 놀이기구가 줄만 서면 무료 탑승이다. 비명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마치 어린 시절의 아이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Wet &Wild
Movie World

어른이 되면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잃어버린 동심을 어린 자녀를 통해서 다시 찾을 기회를 얻게 되니까 말이다. 아이를 통해 자신의 유년기를 되뇌게 된다. 물론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자녀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부모는 더 철저히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동심은 부모라는 바람막이 안에서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부모와 아이가 동심을 가진 세상이 온다면 그렇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5박 6일간의 여행이 짧게만 느껴진다. 골코에서는 추억도 추억이지만 왕복 22시간이 넘는 로드트립 중에 펼쳐진 호주 해안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들과 오고 가는 차 안에서 아이와 함께 노래하며 놀았던 기억들도 인상에 남는다. 아이와 놀 때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아이가 되어야 한다. 때론 아이보다 더 아이처럼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동심을 이해하게 된다.


이번 여행에서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우리가 시드니를 떠나올 때 시드니에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 주경계가 봉쇄되었지만 다행히 우리가 퀸즐랜드로 넘어오고 나서였다는 것이다. 하루만 늦게 출발했어도 여행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머문 6일 동안 모두 맑은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마지막 날 오후가 되어서야 우리가 떠나는 것이 아쉬웠던지 그제야 먹구름이 밀려오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드니에 확진자가 늘어나 2주간의 락다운(Lock Down) 상태로 접어들었다. 또다시 우울한 격리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 마음을 알았던 걸까? 나에게 마지막 여행의 기회를 선사하심에 감사하다. 언제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여행하는 인간은 바이러스에 발이 묶여버렸다.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해 말이 많지만 세상의 대부분의 바이러스와 재앙은 모두 인간에 의해 자초된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람들이 천혜의 자연 속에서 태초의 동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지금의 상황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자연에서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 준 이번 여행에 감사하다.


또 다시 여행할 그날을 기대하며...

Apex park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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