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이 커져갈 때

니부어의 평온 기도를 떠올리며

by 글짓는 목수

오랜만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싹트고 있다.


호감으로 시작했던 감정은 비호감으로 바뀌고 이제는 혐오감으로 변해버렸다. 그의 행동과 말투가 나의 마음의 요동치게 만든다. 호감에서 요동치던 감정이 지금은 분노의 감정으로 요동친다.


사람을 쳐다보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간의 기본적인 대화법 조차 무시한다. 사람을 등지고 말을 한다.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해야하는 걸까? 무엇이 문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서평 참조)에서 관계 개선은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처음 내민 관심은 왜 지금의 이런 어색하고 혐오하는 관계로 변질된 것일까? 이전 같으면 분명 상대방의 잘못만을 들춰냈을 것이다. 관계의 악화는 두 사람의 문제이다.


내가 내민 관심과 배려가 순수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라고 하지만 그에 대한 보답이나 호응을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나와는 이질적인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 거북하다. 이전에 내가 세상에 가졌던 피해의식이 그에게서 느껴진다. 처음에는 나의 관심과 배려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섞여있었던 모양이다. 계속되는 관심과 배려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모습에 조금씩 실망이 커져간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거북함을 감추기가 쉽지 않다. 내 의견이나 생각을 묵살하는 말과 행동이 나의 평온한 마음에 돌을 던진다.


"적어도 서로의 생각이 다른 건 인정해야 하지 않나요?"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조차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하는 말이 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의 의견을 폄하하고 묵살하는 건 참기가 쉽지 않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와 같이 대화하는 시간이 정말 나를 시험에 들게 만든다. 만약 과거의 나의 모습을 아직 내가 가지고 있었다면 큰 다툼으로 번졌을 것이다. 과거 그런 말과 행동이 관계 개선에 아무런 도움도 의미도 없다는 걸 알기에 그의 말을 들으며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지만 마음속에서 커져가는 불쾌함은 감추기가 힘들어진다. 결국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그냥 피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에게서 받은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에게 전달된다. 그게 싫다. 난 그것을 치유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난 예수나 부처가 아니다. 난 아직 그를 보듬을 깜냥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무너진다.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하물며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함부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워진다. 나도 잘 모르는데 타인을 어찌 이해하리오. 부처의 마음처럼 사물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 그것에 얽매여 고통받지 않으려면...


아마 나는 과거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려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고 그는 피해의식 속에서 타인에게 다시는 조종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양이다. 나 또한 그와 같았고 그 또한 다른 이에겐 나와 같을 것이다. 서로는 타인에게서 자신을 모습을 보고 있지만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난 저 정도는 아니야" 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자신만의 굴레 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이곳에 온 이후로 과거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과 운동으로 그것에서 벗어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더 변질되는 것을 막고 있을 뿐 부정적인 생각과 기운은 순간순간 연약해진 나를 찾아든다. 인간은 노력하고 스스로를 제어하지 않으면 한없이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혀버린다는 것을 안다. 변화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는 기대는 실망만 가져다 줄 뿐이다. 차라리 내가 변화하는 것이 다른 누군가의 변화 불러올 가능성이 더 크다.


The serenity prayer


oh God, give us

Serenity to accept w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what should be changed,

and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Reinhold Neibuhr]

평온을 비는 기도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레인홀드 니부어]


순간 니부어의 기도가 떠오른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냥 받아들이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련다. 이 또한 내가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미움이 커져갈 때 다시 평온을 찾게 해 주심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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